[부산의 척화비] 매장·수장· 조롱당한 오욕의 '근대사 증인'들...
▲ 부산진성에 세워졌다가 용두산을 거쳐 부산박물관으로 옮겨진 척화비. 박정화 사진가 제공 |
부산에 남은 척화비는 셋이다.
가덕도 천가초등학교와 기장 대변초등학교, 부산박물관에 있다.
다대포나 영도 등 요지마다 세웠지 싶은데 남은 것은 그게 다다.
전국에 남은 척화비는 33기다.
모두 화강암 재질이며 높이는 1.2m 정도에서 1.8m 정도다.
부산 척화비는 1.5m 안팎이다.
새긴 글자는 모두 같다.
세운 해도 같아 병인년(1866)에 짓고 신미년(1871)에 세웠다.
기장 척화비는 대변초등학교 정문 왼쪽에 있다.
다른 두 척화비에 비해 마모가 심해 글자가 흐릿하다.
마모가 심한 건 기장 바다에 수장되는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
애초 대변항 방파제 안쪽에 세웠던 걸 일제강점기 항만을 내면서 내버렸다.
'1947년경 마을 청년들이 인양하여 대변항 어판장 뒤편 주택가 축대에 옮겼다가
도로개설과 건물 신축으로 2005년 현재 자리로 옮겼다'고 안내판은 적고 있다.
부산박물관 척화비는 좌천동 부산진성에 있었다.
임진왜란 때 정발 장군과 숱한 민관군이 순절한 곳이다.
1924년 용두산으로 옮겼다.
왜관과 일본신사가 있던 용두산으로 옮겨져 척화비는 일본인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저 봐라! 저 봐라!'
대원군을 손가락질하고 대원군 쇄국정책을 손가락질하는 조롱거리가 되어 일제강점기 내내 울분을 삼켰다.
1978년 부산박물관으로 옮겼다.
동길산
'유적지 따라 이야기 따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의 비석]구포 '복설비' (0) | 2016.01.05 |
---|---|
[부산의 비석]'어사암·어사비' (0) | 2015.12.23 |
[부산의 비석]가덕도 '척화비' (0) | 2015.12.14 |
대상·목적 따라 '묘비 종류'도 다양 (0) | 2015.12.09 |
[부산의 비석] 화지공원 '정묘비' (0) | 2015.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