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러 석탄창고 막은 이도재' 그가 없었다면 영도는 '숯검정' 될 뻔

금산금산 2015. 12. 23. 14:56

'러 석탄창고 막은 이도재' 그가 없었다면 영도는 '숯검정' 될 뻔...

 

 

 

 

 

'이도재가 상소를 올려 사직을 청하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35년(1898) 3월 2일 두 번째 기사 제목이다.

연호 제정과 단발령에 반대해 3년 전 상소를 올리고 학부대신 그 좋은 자리를 내던진 이도재가

또 사직하겠다며 상소를 올린 것이다.

당시 이도재 직위는 외부대신.

교를 총괄하는 막강한 자리였다.

화근은 영도 석탄창고 기지였다.

당시 절영도로 불리던 영도는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각국 조계지였다.

조계지는 조계지로만 쓸 뿐 다른 용도로 쓸 수 없었다.

그럼에도 얼지 않는 항구 확보에 목을 매달았던 러시아의 공사가 석탄창고 기지를 짓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서리대신 민종묵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였다.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지 조회하는 공사관 문건 회답이 이 나라 달랐고 저 나라 달랐다.

영국 영사에게는 '떼어 준 각국 조계지는 절대로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해 놓고

러시아 공사가 청한 것은 허가했다.

그러면서 일본 공사관에 서한을 보내어 해당 지역은 원래 각국의 조계지가 아니라고 발뺌했다.


이도재는 발끈했다.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우리나라 고유 권한인데 어떻게 이렇게 서두르기를 두려워하듯 한단 말입니까?' 내처 칭병하며 사직을 청한다.

실제로 병은 깊었던 모양.

고종은 이맛살 찌푸리지만 병이 깊음을 헤아려 사직을 윤허한다.

외부대신 자리를 민종묵이 이어받자 반대 상소가 빗발쳤다.

독립협회까지 나서면서 결국 석탄창고는 없던 일이 됐다.

이도재가 아니었으면 영도는 '숯검정 영도'가 됐을 뻔.

부산으로선 영세불망 이도재다.

 

동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