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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장 '서양풍 별장' 결국 사라졌다

금산금산 2016. 2. 17. 21:38

온천장 '서양풍 별장' 결국 사라졌다




▲ 부산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부산 동래구 온천동의 일제강점기 서양풍 별장이 결국 헐리고 빈터만 남았다. 근현대 건축물 보존에 대한 관심이 아쉽다. 김병집 기자 bjk@




11일 오전 11시께 부산 동래구 온천동 금강공원 인근 주택가. 굳게 닫힌 검은색 철문 너머 펼쳐진 공터는 황량하고 적막했다. 이곳은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100년 가까이 된 주택이 있던 자리다. 
 
부산에서 유일하게 남은 일제 강점기 서양풍 별장(본보 2015년 10월 11일 등 보도)이 한 세기를 채우지 못하고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강점기 건립 주택
지난해 부동산 업체에 팔려
지난달 초 완전히 철거
 
시 뒤늦게 보존 나섰으나  
예산 부족·대책 미비로 실패
 

11일 부산시에 따르면 동래구 온천동 금강공원 인근 주택가에 있는 옛 서양식 별장이 지난달 초 완전히 철거됐다. ㈜연합철강(현 동국제강) 권철현(2003년 별세) 전 회장 일가 소유였던 해당 건물과 땅(3천667㎡)은 지난해 8월께 한 부동산 개발업체가 건물 신축을 위해 매입했다.

일제 강점기 지금의 금강공원 일대를 동래읍에 기증한 일본인 히가시하라 가지로(東原嘉次郞)의 별장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일본과 서양 스타일이 결합한 독특한 양식을 보였다. 당시 일본인들의 별장지로 개발됐던 온천장 일대에서 '동래별장'과 함께 중요한 근대건축물로 꼽혔다.

지역 학계가 2007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지만, 소유주 권 전 회장 일가의 반대로 무산됐다. 행정기관은 지난해 8월 이 주택이 매매된 사실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부산시가 뒤늦게 해당 건물을 보존하기로 가닥을 잡고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이전 부지 마련과 수십억 원에 달하는 예산 문제에 부딪혔다. 부산시는 결국 건물을 실측해 도면만 남겼고, 건물은 지난달 초 완전히 철거됐다. 

부산은 외침과 개항, 피란 등 굴곡진 역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근대건축 문화자산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존·관리는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수년간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최근 10년 동안 부산지역에서만 보존 가치가 있는 근대건축물 100여 개가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현재 부산시의 근대건축물 보존·관리 체계가 '사후약방문'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근대 건조물 보호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으나, 실제 근대건조물로 지정된 건물은 겨우 6건에 불과하다. 언론을 통해 뒤늦게 철거 위기 소식이 알려진 청자빌딩(구 한성은행 부산지점)은 지난해 부산시가 급히 매입해, 올해 근대건조물로 지정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개발과 소유권 문제 등으로 해체 위기에 처한 근대 건축물에 대해 예산 편성과 대안 마련 등 사전 대응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동아대 건축학과 김기수 교수는 "철거 위기 등 문제가 발생한 뒤 방법을 찾으려고 하면 이미 늦다"면서 "근대건축물에 대한 전체적 관리 계획을 비롯해, 매매나 증·개축 등 근대건축물에 대한 변동사항이 있을 때 행정기관이 사전에 알고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소영 기자 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