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

[반짝반짝 문화현장]창조적 상상력 전파의 최전선 '영화 번역가' 이미도

금산금산 2016. 6. 25. 14:46

창조적 상상력 전파의 최전선 '영화 번역가' 이미도





창의적 영화번역의 근원은 창조적 상상력

무엇이든 읽어라, 생각은 저절로 깊어진다 








- 번역에서도, 강연에서도
- 창조적 상상력을 강조하죠
- 이건 뚝 떨어지는게 아닙니다
- 매일 밑줄 그으며 보는 신문과
- 언제나 가까이 하는 책
- 차곡 차곡 쌓인 '읽는 재미'가
- 내 것이 되어 발현되는 것이죠



23년 전 영화 번역가로 출발해 요즘은 창조적 상상력을 전파하느라 바쁜 이미도 씨가 지난 25일 부산 해운대 한 카페에서 그간 펴낸 책을 놓고 창의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



당신이 본 영화가 무엇이건, 대사가 영어였다면

이 남자가 번역한 영화는 반드시 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이미도(李美道)이다.

'슈렉'을 번역할 때 일이다.

'슈렉'의 무대는Far, Far Away Kingdom이다.

그는 이를 머나먼 왕국이 아니라 '겁나먼 왕국'이라 번역했다.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에서는 It's tough to be a bug이라는

문장을 만난다.

 tough와 bug에 담긴 운율과 말맛을 살려야 했다.

그래서 나온 번역은 "곤충의 고충, 너흰 모른다!"

 '제리 맥과이어' 때는 좀 난감했다.

꼬마가 주인공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는 "Fuck you!"라고 내뱉는다.

이건 욕이다.

빈말만 늘어놓는 어른에게 꼬마가 대놓고 쌍욕을 하는 상황.

어떻게 하면 느낌도 살리고 분위기도 전달하지?

평소보다 오래 고민했다.

그렇게 나온 '번역'이 "뽁-큐!"다.

이 번역은 굉장하다.

분명 욕인데 욕 같지가 않다.

어딘지 통쾌한 이 장면의 분위기도 살렸다.

1993년 시작해 지금까지 우리말로 옮긴 영화가

500여 편에 이르니 많기도 많다.

그가 번역한 영화 목록 일부만이라도 살펴보자.

'쿵푸 팬더'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슈렉' 시리즈,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 '글래디에이터' '진주만' '인생은 아름다워'

'굿윌헌팅' '브레이킹 더 웨이브' '토이스토리' '와호장룡'…

끝도 없겠다.

고만하자!





■ 금지어 - It Might Have Been

지난 22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영재교육진흥원(원장 조갑룡) 대강당.

이날 모인 100여 명 '연수생'은 모두 영재교육 일선에서

영재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었다.

이미도 씨는 이 자리에 '창조적 상상력 특강' 강사로 초청돼 강단에 섰다. 무대에 오르면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조금 전까지 영재교육진흥원장실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특강 시작 시간을 기다리던 그 이미도가 지금 강단에 선 저 이미도가 맞나?"

방금까지 원장실에서 조용조용 얘기하면서 주로 듣기만 하던

'영화 번역가 이미도'는 강단에 서는 순간 '창조적 상상력 전파의

최전선 이미도'로 표변했다.

최근 개봉한 '쿵푸 팬더 3'의 주인공 포가 떠올랐다.



"사진 속 저 청년이 보이시죠? 직업은 트럭운전사입니다. 트럭을 몰던 저 젊은이는 어느 날 길 위에서 홀연 깨닫죠. '잠깐, 나는 고교시절에

공상과학 무지 좋아했잖아? 그래서 신화와 SF 쪽 책만큼은 엄청나게

읽었고. 근데, 나 지금 뭐하는 거지?' 청년은 곧장 운전대를 놓고

그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ABC부터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 젊은이가 뒷날 만든 영화가 '아바타'입니다.

관람수입만으로 3조 원(30억 달러)을 번 영화죠.

청년의 이름은 제임스 카메론입니다."



그가 특강을 마무리했다.

"휘티어라는 미국 시인이 말했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It might have been…'이다. '아! 그때 왜 안 해봤을까'라는 뜻입니다."

이날 특강이 끝나자마자 이미도 씨에게 당장 인터뷰를 요청했다.

'It might have been'이 될까 봐 빨리 달려가 말을 건넸다.




■ 저술·강연·기고·번역을 즐겁게

   

지난 25일 오전 부산 해운대 해변 근처 미포오거리의 카페

스타벅스 3층에서 이미도 씨를 다시 만났다.

"요즘은 영화 번역가뿐 아니라 '창조적 상상력' 전파자로 더 바쁘신 것 같다"고 인사를 건넸다.

'언젠가 꼭 인터뷰하리라'고 마음먹고 그가 쓴 책 '똑똑한 식스팩'(2013년 미래창조과학부인증우수과학도서)을 세 번,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를 한 번 읽어둔 터였다.

이 책들은 영어나 영화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창조적 상상력의

힘과 소중함을 이미도만의 방식으로 강조하는 책이다.


"'똑팩'이 4쇄, '나의 영어는…'는 아마 13쇄를 찍었죠. 강연 요청도 꽤 있는 편이어서 기업이나 대학교에서 특강을 자주 하게 됐어요. 부산과학고, 장안고에도 갔고 얼마 전엔 대전 한밭도서관과 울산 현대청운고에 다녀왔네요.

요즘도 재능기부를 포함해 한 달에 두세 번은 특강을 합니다. 즐겁게 달려갑니다.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드와 주제로 삼는 강연이 많은데 저 또한 그게 재밌거든요."

그는 바쁘고 힘들어도 그 일을 즐기는 유형 같았다.

 "'쿵푸 팬더 3'도 번역했는데, 주인공 포도 창조적 상상력과 연결되나요?"

이때부터 이야기가 술술 풀렸다.

 "캐릭터 역발상이죠! 팬더가 쿵푸를 할 수 있다는 역발상. '부적응자'를 중심으로 끌어오는 이 착안을

누군가 하지 않았다면 이 시리즈는 못 나오는 거죠. '쿵푸 팬더 3'에선 여기에 독특한 스토리가 공감을

만들어요. 포가 Who am I?(나는 누구?) What am I?(나는 무엇?) 하고 끝없이 자문하며 길을 떠나는

거죠. 드림웍스의 '터보'라는 애니매이션(물론 그가 번역했다)에선 달팽이가 사람과 카레이싱을 하는 선수로 나와요."




■ 창의력의 식스팩, 어떻게 만드나

   

"어릴 땐 외로움을 탔어요. 책으로 빠져드는 계기였죠. 책이 스승,

연인, 친구, 멘토였는데 1993년부터 영화 번역을 하면서 영화라는

오아시스를 만난 거죠."

마틴 로렌스가 주연한 영화 'Blue Streak'은 실수로 경찰서 안에 숨겨둔

보석을 훔치러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Blue Streak은 미국 경찰관의 푸른색 유니폼을 뜻하는 속어이기도 하다. 한국 관객에겐 이해할 수 없고, 밋밋할 수밖에 없는 이 제목을

어떻게 옮길까.

그때 이미도 씨가 한글 제목을 이렇게 제안했다.

'경찰서를 털어라!' 영화는 이 제목으로 개봉했다.



그렇다면 이런 창의성의 복근(腹筋)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번쩍하고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죠. 저는 어디서든 '읽는 재미로 사는 이미도입니다'라고 소개할 만큼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으려 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노트, 연필을 준비해놓고 일간지 2종을 1면부터

끝까지 밑줄 긋고 메모하며 읽지요."

창조적 상상력은 일종의 깊은 생각(Deep Thinking)인데 요즘 젊은층이

즐기는 '검색'만 갖고는 절대 '딥씽킹'은 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고

숱한 특강의 핵심이다.

얕은 생각(Shallow Thinking)에서 맴돌 뿐이다.

이런 평소의 관심과 준비에 몇 가지 방법을 보탠다.

"저는 제가 쓴 책의 제목은 제가 다 지었어요. 이름짓기(네이밍)를

놀이처럼 좋아하죠."

그가 강조한다.

"창조적 상상력을 기르는 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그 안에 위로 올라가는 긴 계단이 또 나오는 것과 비슷해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 때는 타더라도)그걸 한 발 한 발 밟고 올라서야 하죠. 물론, 영어공부방법도 비슷하고요."




■ 해운대를 사랑하는 남자

"그런데 왜 약속장소를 해운대 카페로 잡으신 거죠?"

두 시간 인터뷰를 끝내며 물었다.

"지금까지 쓴 책 9종을 모두 해운대의 스타벅스나 카페에서 썼어요. 해운대에 와서 글을 쓰면 내 속에

숨은 'Shy Animal'(수줍은 동물·창의적 능력을 상징함)이 잘 나와서 노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美) 길(道)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이 남자는 해운대의 아름다운 바닷길을 사랑한다고 했다.

조봉권 기자 bgj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