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

[반짝반짝 문화현장]가객 '김광석' 품고 돌아온 철학자 김용석 교수

금산금산 2016. 7. 9. 20:36

가객 김광석 품고 돌아온 철학자 김용석 교수





김광석의 음악과 삶, 그 속의 철학을 노래하다








철학자 김용석 교수가 영산대 양산캠퍼스의 연구실에서 새 책 '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





- 가사에 등장하는 바람·편지가
- 내면을 돌아보는 매개체로,
- 삶의 모순을 일깨우는 영감으로
- 철학적 사유를 가능하게 해

- 나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만든
- 김광석의 공덕이 현재에 이른다



대학에 가면 교수 연구실 문에 붙은 작은 알림판을 흔히 볼 수 있다.

사각이나 원형 아크릴판에 칸을 지르고 '

재실 / 강의 / 교내 / 회의 / 출장 / 퇴근'이라는 글씨를 칸 안에 써놓는 것이 보통이다.

알림판만 보면 이 연구실의 주인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화살표를 이리저리 옮길 수 있게 돼 있다.

영산대 양산캠퍼스에 있는 철학자 김용석(64·자유전공학부 및 미용·예술대학원) 교수의 연구실 문에 붙은

알림판에는 '재실 / 강의 / 교내 / 회의 / 출장 / 퇴근' 말고도 칸이 하나 더 있다.

그 칸에는 '도서관'이라고 써놓았다.

"제가 대학 도서관에 자주 가거든요. 그래서 써넣었어요. 도서관 들락거리며 책 찾고 책 읽고…

도서관 사서분들과 꽤 친하게 지내죠."

그는 독하게 공부하고, 부지런히 책 쓰고, 전력투구로 강의·강연하는 학자로 이름이 높다.

2000년대 중반에는 KAIST 정재승 교수 등과 함께 KBS에서 'TV, 책을 말하다'를 한동안 진행하기도 했다.




■ 6년 만에 펴낸 책

   
지난달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 김광석길을 찾은 김용석 교수. 선완규 제공

그런 김용석 교수가 최근 새 책을 펴냈다.

이탈리아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하다 1990년대 말 귀국한 그는

2000년대 접어들면서 책을 내기 시작해 인문·과학·(대중)문화를

깊고 넓게 연결하는 사유와 탄탄한 개념, 독자와 잘 소통하는

새로운 글쓰기로 새 바람을 일으켰다.

2000, 2001, 2002, 2005, 2007, 2009, 2010. 그가 지금까지

단독 저서 11권(대담집 1권, 개정판 1권 포함)을 펴낸 연도이다.

이렇게 촘촘히 이어지던 저술을 한동안 쉬었다가

2010년 이후 6년 만에 재개한 것이 이번 책이다.

그러니 '미스터 요다'가 돌아왔다고 할밖에.

미스터 요다는 학생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요다는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현자이자 스승이다.



그는 혼자 돌아온 게 아니다.

올해 20주기를 맞은 '띠동갑 동생' 가객 김광석(1964~1996)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6년 만에 그가 펴낸 책은 '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천년의상상 출간)이다.

이 책의 작은 제목은 '철학자 김용석의 김광석과 함께 철학하기'이다.

"2010년과 2011년 2년 동안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부와 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다 돌아왔어요. 그간에 책 집필량이 너무 많았죠.

영국에 있던 2년 동안은 의도적인 절필 기간이기도 했죠."

그는 "아웃풋(출력)이 너무 많아 인풋(입력)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2012년 초 영산대로 복귀한 뒤 2년간 외국 대학에서 잔뜩 모은 자료와 사색을 바탕으로 새롭게 집필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영산대 미용·예술대학원의 커리큘럼을 짜고 시행하는 일과 인문학최고위과정(AHP)을 창설하는

일을 맡아 또 바쁘게 뛰어야 했다.

"지난해 초가 돼서야 시간이 좀 나더군요."



■ 철학 계간지에 1년간 김광석 연재

그때쯤, 김광석을 제대로 만나게 됐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 이탈리아어과를 나온 그는 1979년 로마 그레고리안대로 유학을 가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이 대학에서 철학교수로 가르치다 1997년 귀국했다.

 "김광석이 한창 노래할 때 저는 한국에 없었어요. 현장에서 김광석을 만나고 느끼지는 못했어요."

김광석의 열혈팬인 천년의상상 출판사 선완규 편집주간이 그에게 김광석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께부터였다.

물론 김광석을 알고 노래를 좋아했지만, 선 편집주간과 이야기가 잘 되고 죽이 맞으면서

김광석을 집중해서 듣고 가사를 접했다.

철학문화연구소가 내는 학술지 계간 '철학과 현실'에 1년간 가객 김광석의 노래로

철학에세이를 다섯 편 쓰기도 했다.

"김광석 열혈팬 출신도, 음악평론가도 아닌 처지라 논점과 방향을 잡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노래를 자꾸 듣다 보니, '김광석과 철학하기'라는 방향이 조금씩 잡혔다.

그는 "인문고전은 일종의 도구라고 봅니다. 그래서 '고전으로 철학하기' 같은 글을 꽤 썼어요."

그는 김광석을 들으면서 "김광석을 '도구 삼아' 철학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다고 봤다"고 했다.

길은 하나였다.

김광석과 함께 철학하기.

그만큼 가객 김광석의 음악과 삶은 캐내서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철학에세이인 '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는 철학자 김용석의 장기를 펼쳐 보인다.

김광석의 노래와 가사는 책 속에서 칸트와 까뮈를 만나고, 유럽을 오랜 세월 지배한 '조화의 미학'과 그걸 깬

낭만주의를 만나며, 편지 바람 사랑의 문화사를 종횡으로 만난다.



■ 바람과 편지 그리고 다시 부르기

이 책에서 김광석의 노래와 삶을 바람과 편지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글이 인상 깊었다.

"바람이 매력적인 것은 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186쪽)

 바람 자체를 볼 순 없지만 바람이 흔든 꽃잎, 흐르는 구름, 일렁이는 파도, 나부끼는 깃발, 흔들리는 머리카락으로 바람을 볼 수 있다.

그 흔들림에 우리 마음은 움직인다.

마음이 움직이면,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된다.

결국, 우리는 우리를 만난다.

김광석의 노래 속에는 바람이 분다.

김광석 노래에는 편지가 자주 나온다.

하지만 손편지는 이제 '누구나 그리워하지만, 아무도 쓰지 않는' 신세가 되었다.

편지가 처한 이런 모순된 운명을 설명하면서 책은 묻는다 .

"삶의 한 고비에서 김광석은 모순의 어느 한 쪽을 버리려 하거나 모순적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거나 하는

자신을 발견했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삶의 모순은 안고 가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는지 모른다."(70쪽)

저자가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 앨범을 들으면서, 본질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는

'철학하기'의 참뜻을 발견하는 대목은 특히 인상 깊다.

철학자 김용석에게 김광석의 '공덕'을 물었다.

"남의 노래를 완벽히 소화해 자기 노래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사람들은 높이 사죠.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김광석의 공덕은 그렇게 부른 나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만든 데 있습니다."

철학자 김용석 또한 김광석을 통해 우리의 철학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선 듯하다.



※ 철학자 김용석

철학자 김용석 교수는 2002년 영산대에 부임했다.

정년 퇴임을 1년 앞둔 그는 현재 자유전공학부와 미용·예술대학원에서 가르친다.

김 교수는 2000년대 초부터 서양철학을 바탕으로 철학과 미학, 대중문화, 과학, 예술을 접목하는

글쓰기와 사유를 계속해왔다.

'개념의 철학자'라는 별칭도 있다.

개념을 엄밀하고 정확하게 다루되, 이를 확장하면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저서로는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2000년 초판 발행, 2010년 개정판 나옴)을 비롯해 

 '일상의 발견'(2002년) '철학정원-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2007년) '철학광장'(2010년) 등이 있다.

조봉권 기자 bgj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