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 원로에게 길을 묻다] '신정택' 세운철강 회장

금산금산 2016. 7. 12. 21:14

신정택 세운철강 회장






"가덕도 신공항, 동남권 경제 고도화 위한 기폭제"






▲ 세운철강 신정택 회장이 지금의 어려운 경제 환경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고객사는 물론 조직 구성원들에게 강한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동남권 신공항의 가덕도 유치는 침체된 지역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입니다."
 
세운철강 신정택(68) 회장은 신공항 유치를 단순히 거대 인프라를 유치한다는 차원 이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제조업 중심의 동남권 경제의 체질을 서비스산업 위주로 고도화할 수 있는 기폭제로 이해하고 있었다. 



 
제조업 중심 동남권 경제 구조
공급 과잉·저가경쟁 한계 드러내
서비스 중심 산업으로 재편해야
24시간 운영 '허브 공항'이 필수
 
신뢰 바탕된 구성원의 동지애는
어떤 위기에도 맞설 수 있는 동력  

위기 극복 과정이 곧 성장의 과정 




그는 "철강, 조선, 자동차 연관산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동남권 경제는 세계적 공급 과잉과 이로 인한

저가경쟁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서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지역 산업구조를 환골탈태시키기

위해서는 관광과 금융 제조업 등이 융합되도록 산업 구조를 재편해야 하는데, 여기에 꼭 필요한 것이

24시간 운영 가능한 허브 공항이다"고 강조했다.  



1978년 세운철강을 설립한 이래 38년간 철강 가공·유통 한우물을 파온 신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시절부터 신공항 유치를 위해 온몸을 던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국내 최고의 저비용항공사(LCC)로 성장한 에어부산㈜도 그의 손에서 시작됐다.  

"신공항을 통해 동남권의 '하늘'을 넓히는 것이 궁극적으로 동남권 경제는 물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

이라는 그는 "신공항 입지가 정치적 이해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온 시민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유례없는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는 후배 기업인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위기 아닌 적이 없고, 훌륭한 기업은 위기를 먹고 자란다"고 말했다.

또 작금의 위기에 대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 경제 위기가 전 지구적 현상이 되면서 개별 국가나 기업의 역량만으로 위기 돌파가 쉽지 않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위기를 바라보는 신 회장의 태도는 확고했다.

그는 "극복된 전례가 있는 위기는 진정한 위기가 아니며, 불확실성 속에 더 큰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은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외형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난을 뚫고 나가려는 열정과 집념이 축적돼 기업의 DNA가 될 때

어떤 위기에도 맞설 수 있는 자산이 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사실, 세운철강의 성장사는 위기로 점철돼 있다.

 창업부터 쉽지 않았다.

1978년 포항제철의 판매상 모집 공고를 보고 도전했으나, 자본은 없고 의욕만 넘쳤던 젊은이가 넘기에는

장벽이 높았다.

 '14전 15기' 끝에 겨우 조건부 판매점 자격을 얻자마자 오일 쇼크가 터졌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포철 제품에는 하자가 많아 판매가 되지 않았다.  

치명적인 위기는 연이어 터졌다.

트럭에 강판을 싣고 전국을 누비며 판매에 열을 올리던 시절, 거래처에서 받은 어음 6억 원이 부도났다.

자본금 5천만 원으로 설립한 세운철강을 일시에 파산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거금이었다.  



당시 치명타를 맞고 휘청거리던 세운철강을 살린 것은 '신뢰'였다.

그는 "'돈 떼먹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 위기 극복의 바탕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때부터 신 회장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경구를

금과옥조로 여기게 됐다.

그의 신뢰 정신은 세운철강 조직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최고 경영자가 한 번 내뱉은 약속은 세운철강 안에서 어떻게든 이루어졌다.

신뢰는 구성원 간 진한 동지애로 자라났다.

이 동지애는 또 한 번의 대형 위기에서 회사를 살리는 동력이 됐다. 


신 회장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최대 거래처 중 하나였던 대우자동차가 파산하면서 회사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게 됐다"면서 "이때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상여금을 반납하며 회사를 살리려는 모습에 '죽어도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뢰가 만든 동지애로 위기를 넘긴 세운철강은 더욱 단단한 회사가 됐다.

실제, 세운철강 직원들의 80%가 20년 이상 동고동락하고 있고, 거래처의 50%는 창사 때부터 거래를 끊지 않고 있다.  

세운철강이 '신뢰'와 '동지애' '열정'같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만 성장한 것은 아니다.

경제의 거시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꿰뚫어 보는 신 회장의 통찰력을 빼놓고서는

오늘의 세운철강을 설명할 수 없다.

창업 당시 그는 경공업 위주의 산업이 한계에 부딪히고, 철강 수요를 기반으로 한 중공업이 국가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열연 강판이 주력이던 시대에 자동차, 냉장고 등 소비재 중심의 냉연강판 시대가 열리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한 우물을 팠다.  

"당시에는 배·기계·건설 등에 주로 쓰이는 열연강판이 인기가 많아 더운밥(열연) 대접을 받았고, 자동차나 전자제품에 주로 사용되는 냉간압연강판은 인기가 없어 찬밥(냉강) 신세로 불렸다"는 그는

"그런데 1988년 이후 자동차·전자제품용 철판이 잘나가기 시작해 전세가 바뀌어 버렸다"고 회상했다.

물류비용 절감과 고부가가치 제품이 철강유통업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는 그의 안목도 적중했다.

특히 세운철강이 최종 수요처가 있는 김해(1989), 창원(1994), 울산(1996), 포항(2011)에

가공판매 공장을 잇달아 설립하고 말레이시아와 중국에 진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 회장은 "거래처가 원하는 적기(Just In Time)에 가장 적은 물류비용으로, 최고의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경영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신 회장의 결정이 모두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세운철강은 2005년 전기절연제 업체인 천안 소재 한국코아를 전격 인수해 시련을 겪기도 했다.

 한국코아는 수원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였는데 삼성이 백색가전을 모두 중국으로 넘기는 바람에

280억 원의 손해를 보고 회사를 처분했다

신 회장은 "한국코아 인수 실패를 통해 직관에 의지하는 의사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감했다"면서 "미래의 일을 분별하기 위해 현장을 뛰고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열어 두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진국 기자 gook72@



신정택 회장은… 
 
1948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경남 진양군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철강산업의 미래를 예측하고 1978년 6월 세운철강을 설립했다. 자동차, 가전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내다보고 냉연 강판 가공·판매에 주력, 세운철강을 매출 1조 원을 눈앞에 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6년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면서 동남권 신공항 유치, 산업용지 확보, 지역 기반 항공사 설립 등 굵직한 현안 해결에 앞장섰다. 지역 문화 창달에도 관심을 가지고 롯데그룹으로부터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필요한 기금 1천억 원을 유치하는 데 큰 역활을 했다.
 
2004년에는 동아대에서 경영학 명예박사를 받았다. 2011년부터 대한럭비협회 회장으로 체육 발전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모란장(2015), 대한민국 창조경제 리더 대상(2013), 자랑스러운 시민상 대상(2012), 부산시민산업대상(2009), 한국의 존경받는 CEO 대상(2008)을 수상했다. 2015년 5월부터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으로 나눔과 사회 공헌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