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 원로에게 길을 묻다] '이장호' 전 BNK금융지주 회장

금산금산 2016. 7. 19. 21:46

이장호 전 BNK금융지주 회장






"관광·금융·영상산업 중심으로 부산경제 체질 재편해야"










▲ 이장호 전 BNK금융지주 회장은 조선기자재 등 지역 주력 산업이 위기인 시점이 오히려 새 성장 동력을 키울 기회라고 지적했다. 정종회 기자 jjh@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변화하는 상황이 우연의 점철로 보인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사람은 변화를 분별해 그 방향을 알아채곤 한다.  
 
'지역 금융계의 현자(賢子)'로 불리는 이장호(69) 전 BNK금융지주 회장은 부산의 경제가
변곡점에 있다고 보고 있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금융권에서 잔뼈가 굵은 원로의 직관은, 주력 산업에 닥친 지금의 위기가
경제의 체질을 바꿀 때임을 알려주는 신호다.


 
부산, 위기마다 새 성장동력 발굴
제조업만으로는 일자리 한계
이제 서비스산업 위주로 가야
 
현재 주력산업은 조선기자재  
재도약 위한 금융의 역할  
옥석 가린 구조조정 역량 중요  

IMF·금융 위기 때 이미 교훈  
금융-산업계 상호 신뢰 바탕  
동반자 관계 형성하면 위기 탈출
 



이 전 회장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위기는 변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1960~1970년대 부산 경제를 이끌던 합판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신발산업을 키웠고, 1990년대 신발산업이
쇠퇴하자 조선기자재와 자동차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으며 경제 체질을 바꿔온 것을 교훈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 시대를 이끌던 주력 산업이 시대 변화에 따라 위기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 키운 역동적 DNA가 부산 사람에게 있다"면서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공급 과잉으로 지역의 주력인 조선기자재와 자동차 부품, 철강산업에 경고음이 켜졌지만, 이 위기를 디딤돌 삼아 다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전 회장은 부산의 미래 먹을거리 산업으로 금융과 관광·마이스, 해양물류, 영상·영화 등 서비스산업을 꼽았다. "제조업만으로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다"는 그는 "바다, 산, 강 등 천혜의 관광자원을 잘 활용해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고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부산이 명실상부한 국제금융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부산시의 모든 역량을 결집할 때라고 지적했다.
2009년 부산이 국제금융도시로 지정되고, 한국거래소와 기술신용보증기금에 이어,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예탁결제원, 주택금융공사 등 주요 금융 공기업이 부산으로 이전한 점도 기회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 

이 전 회장은 "금융 공기업 본사가 부산으로 이전했지만, 핵심 역량은 여전히 서울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부산이 홍콩이나 런던 싱가포르처럼 명실상부한 금융도시로 발전하려면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경제의 체질 변화에 방점을 두고 있는 이 전 회장이 그렇다고 현 주력 산업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조선기자재 산업 분야의 핵심 역량은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를 위해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못 넘겨서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계 기업이 출혈 경쟁을 벌이면서 산업 생태계 자체를 고사시키는 일이 없도록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하는 것도 금융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했다. 

"기업인들로부터 일부 시중은행과 정책은행들이 조선 관련 업종에 대한 일괄적인 대출 상환 요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그는 "금융권이 자기만 살자고 '비 오는데 우산 뺏기 식'의 영업을 해서는 장기적으로 함께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전 회장은 금융권과 산업계가 신뢰를 바탕으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그는 임기 내내 지역 사회와의 상생을 강조했다.
행장으로 부산은행을 이끌던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계를 강타했다.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제 살기에 바빠 대출 회수에 나설 때 부산은행은 반대의 길을 걸었다.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의 대부분을 연장했다.

이 전 회장은 "그때 거래 관계에 있던 3만여 개 기업에 일일이 편지를 써 대출 회수는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면서 "결과적으로 위기를 딛고 기업들은 살아남았고 부산은행도 대출 회수에 문제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기업들과 당시 맺은 신뢰 관계는 BNK금융그룹이 국내 5위 금융사로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부산은행이 지역 조선기자재 업체들에 특례보증을 확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는 "아주 잘하고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그가 이끌던 부산은행이 위기에 처한 지역 산업계를 지탱한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는 부산은행이 지역 사회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부산은행은 4500억 원의 적자를 기록, 생존이 불가능했다.
국내 30대 대기업의 절반이 무너지고 관련 중소기업들이 줄도산했던 영향이 컸다.
이때 부산시민과 기업들이 십시일반으로 부산은행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증자에 참여했다.
부산은행은 이 도움을 잊지 않았다. 

의리에만 기대는 것은 아니다.
지역은행은 시중은행과 달리 지역의 기업을 가장 잘 안다.
이 전 회장은 "기업 건전성은 재무제표 같은 외형적 지표 말고도 평가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이를테면 최고 경영자의 성품이라든지 노사관계 같은 것들이다"면서 "지역 은행은 시중은행에 비해 지역 기업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가계 부문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현재 가계부채는 1230조 원이 넘는다.
1년 이자로만 대략 40조 원 넘게 지불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는 "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과도한 금융비용을 지불하면 소비가 줄고 이는 다시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게 된다"면서 "앞으로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침체라든지 금리 인상 등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어 부채를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줄여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국 기자 gook72@

 
 
이장호 전 회장은… 
 
194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상고(1965년)와 동아대 영문학과(1973년)를 졸업하고 동아대(1986년)와 부산대 대학원(2006년)에서 각각 경제행정학 석사, 국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에는 동아대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5년 한국은행, 1967년 외환은행을 거쳐 1973년 부산은행에 행원으로 입행했다. 2006년 부산은행 제10대 행장으로 취임함으로써, 행원에서 은행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신화를 썼다. 부산은행장을 역임하면서 중장기 발전 로드맵에 따라 2009년 BS투자증권과 2010년 BS캐피탈을 설립했다. 앞서 2003년 설립한 BS신용정보를 묶어 2011년 국내 최초의 지역 기반 금융지주회사인 BS금융지주(현 BNK금융지주)를 탄생시켰다. 그해 3월부터 2013년 8월까지 BS금융지주의 회장을 역임하며 국내 5위권 금융회사로 도약하는 기반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0~2015년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역임하며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벌여왔다. 2008년 동탑산업훈장과 한국을 빛낸 경영인 대상을 받았고, 2010년에는 부산산업대상과 한국의 경영자상, 2011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공로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