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 원로에게 길을 묻다] '현승훈' 화승그룹 회장

금산금산 2016. 8. 2. 16:17

현승훈 화승그룹 회장





"포기하지 않는다면 대내외적 위기는 도약의 발판일 뿐"





▲ 부산 경제계의 대표적인 덕장으로 불리는 화승그룹 현승훈 회장이 어려운 경영 환경에 처한 후배 기업인들에게 조언하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화승그룹 현승훈(74) 회장은 특별하다.

대기업 총수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어떻게 보면 구도자의 느낌을 준다.

그는 골프를 안 치고 비서를 두지 않고 부동산이 없어 삼무(三無) 회장으로 불린다.
 
대신 그는 한평생 일궈 온 정원, 3만㎡가 넘는 화승원에서 나무와 꽃 키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물 주고 가지 치면서 불기자심(不欺自心·스스로 속이지 않음)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그가 숱한 위기를 딛고 화승그룹을 연 매출 4조 원이 넘는 대기업으로 키울 수 있었던 통찰은

나무를 키우면서 발견한 것들이 적지 않다. 
 


불안한 경영 환경 수용하고 직시
고난·역경 극복하면 기업 성장

사업 확장·다각화 변화 속에  
'뿌리 기술'이 든든한 주춧돌  

내부 구성원 간 진솔한 소통  
조직 결속력 강화시켜 성장 동력  

지킬 것·버릴 것 분별하는 지혜를 




■ 거친 환경이 좋은 나무 만든다
 

나무의 쓰임새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나무는 땔감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나무는 건축 재료나 값비싼 가구의 원목이 된다.

또 어떤 나무는 악기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좋은 원목이 되는 나무는 추위와 모진 바람, 척박한 토양 같은 악조건 속에서 자란다.

그래야 목질이 단단해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경영 환경을 이겨내고 성장한 기업만이 내실이 있다.

오늘의 화승도 절체절명의 큰 시련들을 이기고 더 큰 도약을 해 왔다.  

현 회장은 "장기 불황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경영 환경이 어느 때보다 어려워 많은 기업인이 불안해하지만, 두려움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면서 "어려움과 불안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직시한다면 극복할 방법이 보일 것이고, 그 고비를 넘기면 기업은 더욱 성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실 화승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딛고 성장했다.

1998년 화승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의 여파로 2832억 원의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화의를 신청했다.

12개의 계열사 중 6개를 정리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위기는 도약의 발판일 뿐"이라는 현 회장은 "화승에 화의는 고정비용을 줄여

연구 개발과 신성장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고 회고했다.



실제 화승은 부도 7년 만인 2005년 1월 10일 채무 2832억 원을 전액 상환하면서 화의 종결 인가를 받게 됐다.  

지속적인 연구 개발과 대규모 투자 성과도 가시화 돼, 1999년 7월부터 지속적으로 매출이 급신장하기 시작했다.  



■ 뿌리가 깊어야 가지가 무성해진다 

화승그룹은 더 이상 신발회사가 아니다.

국내 최고 자동차 부품회사인 화승 R&A, 정밀화학기업인 화승인더스트리 등 국내외에 모두 35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는 중견그룹으로 성장, 지난해 매출 4조 원을 돌파했다.

특히, 주력사인 화승R&A는 미국·중국·인도·터키 등 6개국에 진출, 현대·기아·피아트크라이슬러·BMW 등

세계 유수 자동차 기업들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화승그룹이 이처첨 무성한 가지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뿌리 기술이 깊었기 때문이다.

1953년 기차표 고무신을 생산하던 동양고무산업을 모태로 한 화승그룹은

 고무에 관한 한 자타 공인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췄다.  

현 회장은 "신발산업에서 닦은 화학 분야의 기술력을 토대로 화승인더스트리, 화승R&A를 설립할 수 있었다"면서 "고무를 다루는 기술, 즉 내구성을 높이는 노하우가 자동차 부품 생산에서 빛을 발휘했다"고 강조했다.  

화승은 나무가 가지를 뻗듯 각 계열사가 성장하고 있지만 그 둥치는 신발이요 뿌리 기술은 고무다.

이미 사양산업으로 불리는 신발에 화승에 매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첨단 산업을 키우고 있는 화승그룹에 신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지도 않지만 시종일관 신발이다.

그 힘든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신발산업은 남겨뒀다.  

"변화와 혁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면서 "해당 기업이 가장 잘하는 분야를 바탕으로 혁신을 주도해 나가야 변화무쌍한 기업 환경 속에서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 건강한 숲을 만드는 비결은 조화 

현 회장은 매일 아침 108배를 통해 직원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정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를 '덕(德)의 경영인'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덕은 그저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에너지다.

덕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로 인해 기업이 움직인다.

그가 임직원과 소통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다. 

"기업의 현주소, 경쟁력 등을 정확히 파악해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적응하고 선도해 가려면 무엇보다 진솔한 내부 소통이 중요하다"는 그는 "소통을 통해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때 기업 성장의 동력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진심 어린 소통은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2007년 자동차산업 불황으로 화승R&A가 경영 위기에 처했을 때, 노조가 임금 동결은

물론 인원 감축을 포함한 모든 임금·단체협상 결정 권한을 사측에 위임해 위기를 넘어선 것이다.  

인화와 덕을 중시하는 현 회장이 마냥 부드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른바 구조조정의 명수다.

사람 자르는 부정적 의미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신성장 사업과 도태시킬 사업 부문을 상시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으로 화승그룹이 세계 경제의 부침 속에서도 큰 흔들림 없는 기업 체질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 회장은 "좋은 숲은 솎아내기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지킬 것과 버릴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추고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 지속 가능한 성장의 비결이다"고 말했다.



박진국 기자 gook72@


 
현승훈 회장은… 
 
1942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다. 신발로 시작해 자동차부품, 소재, 정밀화학, 종합무역, 신발 ODM 사업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35개 계열사의 글로벌 그룹으로 일궜다. 현재 화승그룹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1981년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시작으로 한국신발수출조합 이사장, 부산시 체조협회 회장, 부산시 체육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를 지내며, 활발한 경제 활동을 이어왔다. 1978년에는 선대 회장의 유훈에 따라 부산시립박물관에 64점의 문화재를 기증했고, 부산체조회관을 건립하는 등 부산의 문화체육 발전을 위해 일조해왔다. 
 
1980년 금탑산업훈장을 시작으로 수출 1억 불탑, 수출 5억 불탑을 이어왔으며, 2009년 제1회 동명대상 산업부문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