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

[반짝반짝 문화현장]극단 자갈치의 '신명 30년' 그리고 미래

금산금산 2016. 8. 20. 17:42

극단 자갈치의 '신명 30년' 그리고 미래





억척스럽게 고집해 온 부산 민중들의 이야기…문화기획극단 자갈치의 존재 이유








- 시장통 건물 지하 소극장서
- 각 대학 소리패 단원 모집해 시작

- 정통 연극 아닌 마당극 바탕으로
- 형제복지원 위안부 환경문제…
- 사회적 약자의 삶 무대에 옮겨
- 창단 때부터 이어진 민속교실
- 지역 문화계 곳곳에 전문가 배출

- 다음 달 3·4일 30주년 기념공연
- 뒷기미병신굿 민주공원 소극장

욕쟁이 역 홍순연(49·입단 1989년 )의 에너지는 무시무시했고,

사파리 역 정승천(55·입단 1986년)의 경상도말 대사는 찐득찐득했다.



   

극단 자갈치 단원들이 지난 16일 부산 금정구 부곡동 신명천지 소극장에서 1990년 초연했던 '뒷기미병신굿'을 연습하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



이어 자갈치 역 박은주(31·입단 2007년)가 통 튀듯 무대로 들어오더니 진짜 자갈치 아지매도 웃기고

울릴 만한 대사를 걸쭉하게 쏟아낸다.

"아지매 이런 좋은 괴기 보고 깍을라 쿠요. 마 가소. 할배요. 숭어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힘이 솟는교.

입에 넣어야 보약이제. 하나 팔아주소. 하나 팔아주소. 이리 물거리 좋은 거 어디 봤습니꺼.

와 이리 장사가 안 되노. 조개 아가리 벌어진 거 보이 내일이면 맛이 갈낀데 이놈의 파리 새끼들 안 가나." 듣는 사람 혼을 쑥 빼놓는다.



연습공간 한쪽에서는 우곡댁 역 이미화(47·입단 1989년)가 달래 역 정예선(11·오디션으로 선발) 양에게

연기와 발성을 조근조근 가르치고 있다.

이미화는 26년 전 초연 때 달래 역을 맡은 게 계기가 되어 그 뒤로도 한참 아역 전문 배우로 활약했다.

'원조 달래'가 '새 달래'에게 달래의 대사를 가르치는 모습은 참 정겨웠다.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게 했다.

"어느새 30년."

지난 16일 부산 금정구 부곡동 조기종치과 지하 1층 극단 자갈치(대표 홍순연)의 신명천지 소극장에서 펼쳐진

'극단 자갈치 창립 30주년 명작시리즈 1 뒷기미병신굿' 연습현장이었다.

1990년 초연한 뒤로 전국 여러 곳으로 초청되며 극단 자갈치의 명성을 한껏 올린 마당극 기반의 연극이다.

이 작품은 오는 6월 3일 오후 8시, 4일 오후 5시 부산 중구 민주공원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 80년대 문화운동의 선두

   
2006년 제26회 정기공연 당시 모습.

극단 자갈치는 1986년 3월 30일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중앙시장 지하에

신명천지 소극장을 열면서 출발했다.

초대 대표 김윤경은 '뒷패 최정완 이야기-나는 없다'(조기종 엮음·

도서출판 전망)라는 책에서 "동아대 문화패 동아리 한두레 출신의 졸업생 중심으로 극단 자갈치가 결성되었다.…자갈치는 처음 소극장을

현재 조방앞 시장통의 건물 지하에 얻었다"고 기록했다.



창단 주역 가운데 한 명인 동아대 출신 정승천은  "창단하기 전부터 동의대 박동혁 교수의 도움과 부산대

채희완 교수의 자문을 많이 받았다. 동아대 출신만으로 창립한 건 아니고 당시 부산여대 등 다른 대학

출신도 있었다. 1987년을 앞뒤로 부산대를 비롯해 여러 대학의 민족극이나 소리패 출신 단원이 결합하면서 면모를 갖췄다"고 초창기를 요약했다.

단지 30주년이라서 극단 자갈치에 의미를 부여하자는 건 아니다.

역사로 치자면 부산에는 공연예술 전위(1963년 창단), 한새벌(1973년), 부두연극단(1984년), 극단 하늘개인날(1988년) 등 오래된 극단이 꽤 있다.

대다수 극단이 정통 연극 또는 정극 분야에서 공연예술의 길을 걸어왔다면, 극단 자갈치는 마당극, 민족극,

전통 연희에 바탕을 두고 사회적 약자와 민중의 삶을 그리는 극을 결합하는 독특한 양식을 개척했다.

연행 단체로서 자갈치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마당극의 양식이 바탕에 깔리고 마당극의

정신이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말하는 마당극이란 한때 명절에 TV에 방송돼 인기를 끈 마당놀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 약자 대변하며 문화다양성 높여

채희완 민족미학연구소장은 지난 3월 나온 '극단 자갈치 소식지' 창단 30주년 특집호 1면을 장식한 화가 곽영화의 그림 '큰춤'을 놓고 이렇게 썼다.

"민중 삶의 바다에 두 발을 심고 장벽을 가로질러 하늘과 내통하는 부산 억척아지매의 펄떡이는 일손 춤." 극단 자갈치의 30년을 지탱하게 해준 힘과 마당극의 지향점이 이 짧은 글에 녹아있다.

"지금도 작품을 만드는 방식과 주제의식은 초창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홍순연 대표는 말한다.

홍 대표는 지금 한창 연습 중인 1990년 초연 작품 '뒷기미병신굿'을 예로 들어 설명해준다.

1980년대 말 정부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에 폐기물매립장 건립을 추진한다.

그 과정은 일방적이었고 주민을 분열시켰다.

지극히 힘겨운 싸움을 거쳐 주민들은 끝내 뒷기미나루로 상징되는

 청정한 고향마을에 폐기물매립장이 들어서는 일을 막는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이 일을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현장답사를 많이 하고 주민을 만나 현장감을 높이고 등장인물 캐릭터를

생생하게 잡았죠. 공동창작 형식으로 대본을 쓰고, 마당극처럼 삼면이 객석인 무대나 원형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는 양식으로 대사, 가락, 동선을 넣어 작품을 짭니다. 실내에서든 장터 같은 야외에서든

어디서나 공연할 수 있죠." 홍 대표의 설명이다.

약한 사람들의 아픈 곳을 보듬되 민족 고유의 신명을 놓치지 않는 마당극 바탕의 작품을

극단 자갈치는 30년 동안 쉬지 않고 만들었고, 이는 부산 공연예술의 다양성을 높이고 내용을 풍성하게 했다.




■ 숱한 부산 문화판 일꾼 배출

그렇게 해서 숱한 걸작이 극장·대학·광장·시위현장에서 관객을 만났다.

1987년 초연한 '복지에서 성지로'는 당시 터진 부산의 형제복지원 사건을 발 빠르게 작품으로 만들어

약자를 대변했다.

이 작품은 연작 형태로 요즘도 공연된다.

1993년 초연한 '봄날,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아프게 그려 전국 곳곳을 순회했다.

최근에는 더 많은 관객과 공감하는 작품에 도전하고 있다.

2008년 작 '굿거리트로트'는 웃음과 신명으로 관객을 휘어잡았고, 인기작 '오마이갓뎅'은 삼진어묵이

 지금처럼 뜨기 전에 여러 차례 현지답사를 가서 뽑아낸, 부산 음식 소재의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극단 자갈치는 창단하던 1986년부터 민속교실을 시작했다.

부산 문화예술교육의 선구자인 셈이다.

그런 전통이 이어져 부산 문화계에서 한몫씩 하는 전문가도 많이 배출했다. 황해순(부산문화재단 본부장) 강열우(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 집행위원장) 홍순연(소리꾼) 정승천(백산안희제독립정신계승사업회 사무처장)을 비롯해 강희철 전병복 전성호 이상우 손재서 이미화 등이다.

헌신적인 자세와 탁월한 능력으로 부산 문화계 '뒷패'(공연예술의 기획자와 스태프)의 전설로 통한

최정완 전 글마루작은도서관장(2011년 작고)도 뺄 수 없는 자갈치 사람이다.

꿋꿋이 걸어왔지만, 앞길에는 난관과 과제도 많다.

바뀐 공연예술 환경에 적응해서 마당극 정신을 간직하되 관객의 공감을 더 폭넓게 사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자립 기반도 튼튼히 해야 한다.

현재 상근 단원은 5명이며 비상근 단원이 공연 때마다 결합한다.

이에 대해 이번 '뒷기미병신굿' 공연에 며느리 역으로 출연하는 젊은 단원 이윤하(28·입단 2014년)는 "2년 전

자갈치 작품을 보고 한눈에 반해 입단했다. 우리 마당극과 굿을 바탕으로 한 자갈치의 작품에 확연히 다른 에너지가 있음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단원의 밝은 목소리를 듣자니 "역시! 자갈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뚝심이면 자갈치의 미래 30년도 밝을 게 분명하다.


(051) 515-7314

조봉권 기자 bgj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