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개의 하얀 기둥, 겨울동화 속삭이듯…강원 인제 '자작나무숲'
- 핀란드 남부산으로 숲 빽빽
- 사계 중 눈내린 겨울 특히 절경
- 입산은 오후 2시까지 가능하고
- 잘 조성된 산책로·숲속교실도
- 나무껍질 종이처럼 얇게 벗겨져
- 팔만대장경 등 새기는데도 쓰여
언젠가 자작나무를 담은 설경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뇌리에 깊게 박혔다.
우리나라에 이렇듯 소름 돋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 있었던가.
나름 열심히 돌아다녔던 내가 이름조차 듣지 못했다니.
잎이 있을 때는 하얀 줄기에 초록색 잎사귀가 앙증맞아 귀엽고
겨울에는 잎이 모두 떨어져 오로지 하얀 피부만 강하게 드러내 괴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다.
여기다 눈까지 내리면 자작나무숲은 눈이 쌓인 바닥에 하얀 나무가 하나로 어우러져 화이트 세상이 연출된다.
![](http://db.kookje.co.kr/news2000/photo/2016/1229/20161229.22020190701i1.jpg)
때마침 강원도에 눈이 내리면서
인제 자작나무숲은 화이트 세상이 펼쳐졌다.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드는 모습을 보고자 400㎞ 이상의 길을
5시간 넘게 이동했다.
이런 풍경을 지금 아니면 언제 볼까 하는 마음으로.
오랜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설레는 건 나만의 기분은 아닌 듯하다.
자작나무숲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오전 7시에 부산에서 출발해 부지런히 가야 정오를 막 넘겨 도착할 수 있다.
불안감도 찾아왔다.
대구를 지나면서 내린 눈발이 굵어지며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스노타이어는 물론 스노체인도 없이 강원도를 찾는 길은 운에 맡기기로 했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에 묘한 기분이 든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다가 터널을 지나면 햇빛이 비치고 언제 눈이 왔느냐는 듯 변신했다.
산 하나를 경계로 기후와 식생이 달라지며 지역 간 경계가 생기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도 새롭게 다가온다.
드디어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이다.
대형버스 전용 주차장에 이어 소형차 주차장도 갖춰져 있다.
주차장 입구에 농특산물판매장이 있을 뿐 상업적이지 않다.
주차비와 입장료도 모두 무료다.
눈발이 조금씩 날리는 가운데 스틱 방한모자 등산화를 갖추고 자작나무숲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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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숲에서 만난 '청춘거지 유랑단(여행을 사랑하는 청춘 모임)' 회원들이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자작나무는
펜둘라 자작나무로 다른 품종보다 성장률이 40% 우수한
핀란드 남부 산이라고 한다.
온갖 나무 사이에서 순수함과 정열을 잃지 않고
고고한 자태를 간직한 나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껍질이 종이처럼 하얗게 벗겨지고 얇아서
명함도 만들고 연인끼리 사랑의 글귀를 쓰기도 하는데
오랫동안 썩지 않아 신라시대 고분 속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자작나무 껍질을 촛불 대용으로 쓰기도 했고
북유럽 사우나에서 혈액 순환이 좋아진다고 해
온몸을 두드리는 나뭇가지 다발이 있는데 이것 역시 자작나무다.
자랑스러운 국보 팔만대장경의 일부도 자작나무로 만들었다.
자작나무숲 입구에서 입산신고를 하고 안내판을 본다.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입산은 오후 2시까지다.
자작나무숲을 구경하고 왕복하는 데 평균 3시간이 걸린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여름철에는 1시간이 연장된다.
곧바로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편한 원정임도를 통해 자작나무숲에 갔다가 산행 기분이 나는 원대임도로 나왔다.
출발지에서는 원대임도가 폐쇄됐다.
벌을 받았을까.
원대임도에서 4번이나 넘어져 스틱이 구부러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가지 말라고 할 때는 이유가 있는 법.
등산에 자신 없다면 원정임도로 왕복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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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고 오른다.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연인과 부부 가운데 혼자서 출사 나온 사람도 눈에 띈다.
완만한 길이어서 쉽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힘들다.
방한모자가 거추장스러워진다.
출발 지점에서는 소나무 사이에 자작나무가 간간이 끼어있더니
올라갈수록 자작나무의 비율이 높아진다.
어디를 봐도 절경이다.
하지만 결국 자작나무숲 이전에는
사진 찍는 연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작나무숲에 왔는데 자작나무가 없으면 말이 되겠는가.
땔감용 나무만 봐도,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벤치만 봐도 미소가 지어진다.
갈색의 공중화장실도 눈에 덮이니 독일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오두막집이 떠오른다.
자작나무숲 입구에 도착한다.
뒤따르던 젊은 남녀 5명은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행을 떠나라.
젊다는 것은 축복이다.
요즘 드는 생각이다.
20대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여유가 없었던 것도 같다.
자작나무숲과 청춘남녀가 교차한다.
취지를 설명하고 사진촬영 허락을 받는다.
풍경 사진을 찍다 보니 내 인증사진은 언제 찍지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든다.
자작나무숲에 들어서는 길은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구불구불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사진 포인트였던 인디언집 2개가 보이고
어린이를 위한 '자작나무 숲속 교실'도 있다.
하얀 자작나무에 갈색 움집이 있을 때는 포인트더니 눈에 덮이니 빛을 잃는다.
모두 같아야 이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 속에서 아름다움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쭉쭉 뻗은 자작나무숲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잃는다.
갑자기 자작나무가 아픈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창백하게 질린 듯한 느낌.
자신의 아픔으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살신성인의 마음이 아닐까.
갑자기 한 블로그에서 본 10월께 단풍으로 물든 자작나무숲이 기억회로에서 반추된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일까.
아마 10월께 왔다면 눈 내린 자작나무숲이 그리워졌겠지.
남쪽 끝 부산에서 북쪽 끝 강원 인제에 오니 감상적으로 변한다.
왠지 삶을 관조하는 철학자가 된 느낌이다.
겨울에 자작나무숲을 찾아봤으니 앞으로는 봄 여름 가을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다시 찾고 싶다.
사계의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자작나무숲과 다음을 기약한다.
# 300여만 평 얼음판서 빙어잡이…매바위 인공폭포 빙벽타기
■ 주변 가볼 만한 곳
- 축제는 대부분 1월중순 시작
- 통메밀을 직접 제분한 면으로
- 하루분만 파는 막국수 맛보길
![]() | |
지난해 인제군 남면 빙어호 일원에서 열린 인제빙어축제에서 한 어린이가 빙어낚시 삼매경에 빠졌다. 인제빙어축제 홈페이지 |
부산에서 강원 인제까지 가서
자작나무만 보고 온다면 뭔가 부족해 보인다.
이럴 땐 운전에 대한 피로를 분산시키고 주변 볼거리까지 더해
1박 2일로 여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인제 자작나무숲을 찾았다면 자작나무숲
근처 40년을 이어온 원대막국수(033-462-1515)를 찾는 것은 어떨까.
인제 막국수 맛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일 판매할 양만
직접 통 메밀을 제분해 막국수를 만들며
재료가 떨어지면 마감하는 집으로 유명하다.
직접 제분한 면을 사용해 부드럽고 쫀득한 식감과 시원한 육수 맛이
일품이라는데 기자는 오후 5시30분께 찾았더니
벌써 문을 닫아 아쉬움을 뒤로 했다.
인제의 또 다른 볼거리는 인제빙어축제.
내년 1월 14일부터 22일까지 인제군 남면 빙어호 일원에서 개최된다.
맑고 투명한 빙어와 눈 덮인 내설악의 경관이 펼쳐진다.
한겨울이면 내설악 골짜기마다 내리치는 칼바람이 무려 300여만 평에 걸쳐 넓은 얼음판을 형성한다.
축제 기간 얼음판 위에서 다채롭고 다이내믹한 이벤트가 이어져 흥을 돋운다.
개막식에서는 불꽃놀이를 볼 수 있고 전국대회로 전국 얼음축구대회와 창작연 경연대회가 열린다.
또한 빙어뜰채체험, 빙어낚시, 대형 빙어썰매 등을 경험할 수 있고
눈조각공원을 구경하거나 눈썰매를 탈 수도 있다.
올해 날씨가 따뜻해 빙판이 얇아 비상이 걸렸다는 보도가 있으니 미리 확인하고 떠나는 게 좋겠다.
인제 용대리 매바위 인공폭포 암벽등반은 보는 이들을 아찔하게 만드는 관광명소다.
최고높이 50m, 폭 20m의 빙벽에서는 동호인들이 땀을 흘리며 빙벽 타기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밤에는 조명을 비추기도 한다.
1월 중순께 개장한다.
글·사진=유정환 기자 defi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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