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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 ‘인생문’ 1차 복원

금산금산 2017. 8. 29. 11:49

조선시대 설계도로 동래읍성 ‘인생문’ 1차 복원



2003년 발견 ‘축성계초’, 성벽 복구에 참고자료 활용







- 당시 모습 반영… 의미 상당


2015년 부실 공사로 무너진 동래읍성 인생문이 조선시대에 제작된 설계도 ‘축성계초’를 활용해 일부 복구됐다.

다음 달 1일 북쪽 터널이 1차 개통된다.



   

2015년 무너진 동래읍성 인생문이 조선시대 설계도 ‘축성계초’를 활용해 복구 공사를 일부 완료하고 다음 달 1일 1차 개통된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성벽 위 총안의 형태가 ‘ㅜ’자에서 ‘ㅗ’자로 바뀐 부분이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동래구는 인생문 주변 성벽 47.8m와 인생문루 8.91㎡에 대한 1차 복구가 끝나

다음 달 1일 북쪽 터널 아래 복천로 300m 통제 구간을 개통한다고 27일 밝혔다.

17억1300만 원이 투입된 복구 작업은 동래읍성 축성 당시의 상황을 담은 축성계초를 참조했다.



축성계초는 1733년 전라도 관찰사 조현명이 임진왜란 때

무너진 전주읍성을 다시 쌓으며 영조에게 보고한 장계다.

조현명은 1731년 경상도 관찰사를 지낼 때 동래읍성을 축성하면서 쌓았던 경험을 축성계초에 녹여냈다.

축성계초는 당시 읍성 공사에 사용된 기법을 상세하게 기록해

조선 후기 성곽 건축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학계에서 인정받는다.



2003년 강원도 풍양 조씨 문중에서 발견된 축성계초는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됐다.

그동안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이번 동래읍성 복원에 활용됐다.

학계에서는 축성계초를 이용한 복원 사례가 국내에서 찾기 어렵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조선 후기 성곽 건축과 관련된 자료는 수원 화성을 지을 때 남겨진 ‘화성성역의궤’가 유일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전국 읍성 복원 사업에 화성이 참고 자료로 주로 활용됐다.

2005년 인생문 복원 때도 화성을 참조했다.

하지만 수원 화성은 정조가 천도까지 고려해 지은 성이어서

다른 지역 읍성과 시기·성격·무기 종류·전투방식 등에서 맞지 않지 않았다.

부산시 문화재위원인 부산대 서치상(건축학) 교수는 “1980년대부터 복원된 전국의 읍성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이뤄졌다”며 “이번 인생문 복구는 당시 읍성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가장 달라진 점은 몸을 숨기고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도록 총안을 뚫은 담장인 여장의 형태다.

옛 인생문 여장의 총안은 가로·세로 20㎝ 크기에 ‘ㅜ’자 형태였지만

축성계초에 따라 가로·세로 16.6㎝의 ‘ㅗ’자 모습으로 바뀌었다.

동래구는 남쪽 터널 쪽의 인생문 성벽도 오는 10월 착공해 내년 4월까지 복구할 계획이다.

인생문은 2015년 9월 복원 10년 만에 부실 공사로 무너졌다.




김진룡 기자 jryong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