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해들게봉~도롱굴산'
호랑이 등줄기 타고 가다 운문호에 `풍덩`
영남알프스 범봉분맥 중 북쪽능선 밟는 코스
들머리 박곡리 천년 세월 간직한 유적 산재
인적 드문 낙엽천지 하산길 늦겨울 정취 만끽
도롱굴산 정상 까치산 표기는 재정비 필요
영남알프스 일대의 산들이 대부분 저마다 한가락씩 하기 때문일까.
충분히 가볼 만한 산인데도 불구하고 2만5000분의 1 공식 지도나
웬만한 등산지도에 이름조차 못 얹어 놓은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2월의 마지막 주, 겨울을 보내면서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찾은
경북 청도군 해들게봉(475m)과 도롱굴산(617m) 또한 그 범주에 속한다.
참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름이 덜 알려졌다고 산의 진면목까지 묻힐 수는 없는 일.
구만산 억산 범봉 등 세 개의 명산을 남쪽에 두고 남에서 북으로 치달리는 해들게봉~도롱굴산 코스는
한적하지만 속은 꽉찬 근교산행을 선호하는 산꾼들에겐 반갑기 그지없는 코스다.
청도 도롱굴산은 북쪽으로는 운문호가, 남쪽과 동쪽으로는 영남알프스 주봉인 가지산을 비롯해 운문산 범봉 억산 쌍두봉 지룡산 등이 병풍처럼 호위하고 있는 호젓한 근교산이다. 이창우 산행대장이 정상에서 내려서고 있다. |
범봉에서 발원한 범봉분맥을 중간쯤에서 올라 탄 후
분맥의 끝인 운문호 호산 앞에서 끝내는 산행은
마치 운문호에서 범봉쪽으로 날아 오르는 호랑이 등을 타고
호수 끝에 걸쳐진 꼬리에서 사뿐히 내려서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융단처럼 깔린 낙엽길을 원 없이 밟을 수 있다는 점도
막바지 겨울 산행의 묘미를 한껏 부추긴다.
게다가 들머리 마을인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는
억산과 범봉으로 오르는 청도쪽 산행 기점이기도 하지만
보물 203호인 박곡리 석조석가여래좌상과 신라 진흥왕대에 창건된
대비사의 대웅전(보물 834호) 등을 안고 있는
유서깊은 마을이라는 점에서 천년 세월을 넘는
진한 역사의 향기도 느낄 수 있다.
전체 산행은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박곡교~소나무 벤치앞~밀성박공 무덤~전망대~해들게봉~이무기바위~
독종골만당~정거고개~진등(556m삼각점봉)~도롱굴산 정상~삼거리(565m봉)~447m봉~무덤3기~
호산고개로 이어지는 9.8㎞코스다.
아담한 봉우리를 10여 개 넘나드는 능선산행에 소요 시간은 4시간30분.
들머리 찾기는 크게 어렵지 않다.
박곡리 마을 입구 다리(박곡교)에서 다리 건너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왼쪽 포장 도로를 따라 100여 m가량 이동한다.
정면 멀리 대비사계곡 위에서 억산 '깨진바위'가 내려다보고 있다.
왼쪽에 벤치 2개와 소나무 2그루가 있는 동네 놀이터가 보이면 리본을 참조하며 들어선다.
들머리다.
해들게봉 능선의 일명 '이무기바위'. |
곧바로 조립식 민가 왼쪽 무덤을 통과, 완만한 능선길로 진행한다.
어른 키만한 잔솔들이 봄바람에 살랑이며 환영인사를 해 온다.
능선 왼쪽 곡난골 계곡과 석이바위가 보인다.
석이바위는 근처에 석이버섯이 많아 붙은 이름이다.
산행 시작 전 만난 한 주민은 "어제도 동네 사람 40여 명이
석이버섯 캐러 바위까지 갔다 왔다"고 전해 준다.
부드러운 흙길을 따라 15분쯤 가면 작은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곡란골로 내려서는 길이고 오른쪽 길이 등산로다.
50m 정도 더 가면 왼쪽에 허물어진 무덤이 있다.
뒤돌아보면 박곡리 앞산이자 억산북릉 산행의 포인트인
기총망봉(오봉리에선 개물방산, 일부에선 귀천봉이라 부름)이 뚜렷하다.
능선 오름길 주변에는 군데군데 텐트를 쳤던 장소가 나오는데
아마도 동네 주민들이 송이버섯을 지키기 위해 머물렀던 흔적인 듯하다.
15분쯤 더 가면 '호조참판 의금부사 밀성박공지묘'라고 쓰여져 있는 소박한 무덤을 만난다.
조선시대 호조참판을 현대적 의미로 보면 경제 총괄부서인 기획재정부 차관급이요,
의금부사는 검찰과 법원을 합쳐 놓은 특별사법기관의 고위 관리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텐데
그 정도 인물의 묘 치고는 참 검소하다.
10분 정도 오르막을 치면 왼쪽이 탁 트인 첫 전망대를 만난다.
우뚝한 석이바위와 오른쪽 멀리 운문댐이 눈에 들어온다.
비록 운무가 짙게 낀 날씨였지만 석이바위 뒤로는 학일산과 대왕산,
그 왼쪽으로 갓등산 토한산 대남바위산 등이 보인다.
하산할 때는 낙엽을 원없이 밟을 수 있다. |
가파른 능선길을 5분가량 더 오르면
GPS 기준 해발 475m인 해들게봉 정상이다.
들머리로부터 55분 걸렸다.
공식 지형도에 이름 하나 얻어 걸치지 못한 이 봉우리가 안쓰러워
취재팀은 리본 뒷면에 마을 주민들이 수백년간 불러 온 전통을 존중,
'해들게봉 정상'이라는 표기를 해 두었다.
오른쪽 아래 독종골 계곡을 두고 오르막 능선을 탄다.
능선길은 험하지 않지만 살짝 비켜나 오른쪽을 보면 깎아지른 벼랑이다.
5분 뒤 두번째 전망대에서 독종골과 그 안쪽 박곡저수지, 대비사계곡과
그 위의 억산 깨진바위에서 왼쪽으로 팔풍재 범봉 운문산 가지산
영남알프스 연봉들을 조망한다.
특히 왼쪽 끝에 보이는 봉우리 정상부의 '덧니바위'가 선명하다.
이 덧니바위는 운문사 주차장쪽에서는 장군바위 또는
호거대라 부르기도 하고 또 일부에서는 '등신바위'라 부르기도 해
이름이 제각각이지만 이곳 해들게봉 능선에서 보면
영낙없는 덧니 모양이다.
5분쯤 더 가면 흙길이던 능선이 갑자기 30여 m 길이의 바위능선으로 바뀐다.
바위를 타고 가다 높이 1.5m 정도 아래 흙길로 내려서서 뒤돌아보니 길쭉한 구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모양새다.
용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하고, 뱀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바위.
취재팀은 이 바위 이름을 '이무기바위'로 명명했다.
그렇게 이름을 붙이니 저 아래 천년고찰 대비사(大悲寺)와 억산 깨진바위에 얽힌
'이무기 전설'이 오버랩되며 묘한 일체감을 이룬다.
10분가량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삼각점이 있는 독종골만당(614m) 분기점에 닿는다.
범봉에서 갈라져 이번 산행 종점인 호산에서 끝나는 '범봉분맥' 능선 등허리에 올라탄 것이다.
오른쪽은 범봉, 억산 가는 길.
취재팀은 북쪽인 왼쪽 도롱굴산 방향으로 향한다.
이정표에는 왼쪽 까치산 방향이라고 돼 있다.
산꾼들의 발길이 뜸했는지 바닥에 쌓인 낙엽이 발목을 덮는다.
살짝 내리막 안부를 거쳐 15분가량 가면 왼쪽으로 희미한 석이바위 갈림길을 만나지만 직진한다.
5분 후 오른쪽 3시 방향으로 바위절벽이 완연한 지룡산과 옹강산이 바라뵈는 전망대를 거쳐
5분가량 더 가면 갈림길이다.
능선 사면을 타고 오른쪽으로 가면 덧니바위와 방음산으로 갈 수 있고 왼쪽 주 능선을 타면 도롱굴산 방향.
10분 후 정거고개에 닿는다.
들머리로부터 정확히 4.9㎞ 지점.
예정된 코스의 절반을 온 셈이다.
오른쪽 운문면 방음리와 왼쪽의 금천면 임당리 사람들이 왕래하던 고갯길에 등산로까지 더해져 사거리가 됐다. 정거고개에서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직진하는 길은 군데군데 암릉이다.
15분 뒤 521m봉을 넘어 5분 후 561m봉에 오르면 드디어 북쪽 정면 멀리 도롱굴산 정상이 보인다.
오른쪽 1시 방향 멀리 운문호 상류가 보이지만 극심한 가뭄 탓에 물은 없다.
수몰 이전의 도로 모습까지 확연할 정도로 바닥이 휑하다.
GPS 트랙 / 트랙 jpg파일 |
5분 후 삼각점이 새겨진 진등(556m봉)을 넘어 20분 뒤
암봉인 577m봉에 서면 도롱굴산 정상부가 코 앞에 성큼 다가선다.
정상 방향으로 10m가량 살짝 내려서면
오른쪽에 안말음쪽 하산길이 열려 있다.
정상쪽으로 20분을 더 가면 600m봉이다.
정상 바로 앞에 웅크리고 있어 '동생도롱굴봉'이라 이름 지어 본다.
5분 뒤 드디어 도롱굴산 정상이다.
어느 기업체 산악회에서 표시해 놓은
'까치산 615m'란 정상목이 눈에 띈다.
GPS에 표기된 높이가 617m라는 것은 오차범위를 인정한다 치더라도
까치산이라는 표기는 다소 헷갈린다.
인근 마을 주민들은 이 봉우리를 도롱굴산이라 부르며,
대한백리산악회 이병진 대장이 펴낸 영남알프스 지도에는
이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10분가량 더 가서 만나는
삼거리 571m봉을 까치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이 산을 도롱굴산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짙은 운무만 없었다면 운문호 푸른 물과 영남알프스 주변 산봉들을 더 잘 조망했을 텐데…",
아쉬움을 남긴 채 북쪽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봉우리 하나를 넘고 10분 뒤 '상수원보호구역 운문댐 92'라는 금속 푯말이 서 있는
삼거리 571m봉에서 왼쪽 호산고개 방향으로 향했다.
오른쪽 길은 방음리 새마을동산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하산길은 융단같은 낙엽 천지. 그만큼 미끄럽기도 하다.
여러 차례 중심을 잃기도 했다.
마치 나뭇잎 봅슬레이를 타는 듯한 기분.
20분 후 무덤 3개를 통과해 30m를 가면 능선길을 버리고 오른쪽 작은 계곡쪽으로 내려선다.
길섶에 어른 손톱만한 크기의 양지꽃 새싹이 봄의 전령인 양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5분 후 수원 백씨 묘를 지나면 청도에서 운문사 가는 69번 국도를 만나 산행을 마무리한다.
취재팀은 버스터미널이 있는 운문면 소재지 대천리를 향해 왼쪽으로 국도를 타고 1㎞가량 걸었다.
서쪽 산등성이를 막 넘어 가려는 석양 빛이 곱다.
◆ 떠나기 전에
- 천년고찰 대비사엔 슬픈 '이무기 전설'
- 마을별로 주변 산봉 부르는 이름 제각각
들머리인 청도군 박곡리에서 계곡으로 3㎞가량 더 들어가면 천년고찰 대비사(大悲寺)가 있다.
신라 진흥왕대인 557년에 창건된 것으로 1400년이 넘었지만
사시사철 신도들과 탐승객이 끊이지 않는 산 너머 운문사와 달리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다.
보물 203호인 박곡리 석조석가여래좌상. |
대비사와 그 위 억산 깨진바위에는 이무기에 얽힌 슬픈 전설이 있다.
옛날 대비사에 주지 스님과 동자승이 살았는데, 밤마다 동자승이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는 것을 수상히 여긴 스님이
어느날 밤 자는 척하다가 동자승의 뒤를 밟았다.
방에서 나간 동자승은 대비사 앞 연못인 대비지에서 옷을 훌훌 벗더니
연못에 들어가 이무기로 변해 헤엄을 치는 것이 아닌가.
놀란 스님이 좀 더 지켜보니 다시 동자승으로 변한 이무기가
산으로 올라가 큰 빗자루로 산 위의 돌들을 쓸기 시작했다.
이때 스님이 "동자야, 여기서 무얼하느냐"라며 호통을 치니
깜짝 놀란 동자승은 본래 모습인 이무기로 변해 도망을 치면서
꼬리로 억산 정상의 바위를 쳤는데, 이때 바위가 갈라져
깨진바위가 됐다는 것이다.
1년만 더 기도를 하면 용이 돼 하늘로 승천할 수 있었던 이무기는
눈물을 훔치면서 날아가 가지산 호박소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번 산행 중 해들게봉 능선에서 만난 기다란 바위를
취재팀이 '이무기바위'로 이름 붙인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편, 이 일대 산봉들에는 같은 봉임에도 이름이 마을마다 제각각이다.
박곡리 앞산의 경우 억산북릉의 산행 포인트인 '귀천봉'으로 알려져 있지만 박곡리 주민들은 전쟁때
깃발을 흔들었던 봉이라고 해서 '기총망'이라 부른다.
인근 마을인 오봉리 주민들은 범봉에 살던 호랑이가 마을에서 개를 물고 가 이 봉우리에서 잡아 먹었다고 해서
'개물방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운문사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올려다보이는 큰 바위를 '호거대'라 하지만 박곡리 사람들은 덧니처럼 생겼다고 해서 '덧니바위'라 부른다.
박곡리 주민 김중겸(70) 씨는 "인근 절 스님들이 장군바위라 부르기도 하는데
조상 대대로 덧니바위라 부른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 교통편
- 금천면 동곡에서 박곡리행 버스 하루 6차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열차와 버스(2차례)를 갈아타야 한다.
부산역에서 청도행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 출발시각은
오전 5시10분, 5시45분, 6시40분과 50분, 7시50분, 9시10분, 10시30분 등이다.
1시간 걸린다,
청도역 앞 청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행 버스를 타고 금천면 동곡에서 내린다.
오전 9시20분, 10시10분, 10시50분에 있다.
1시간 걸린다,
동곡정류장에서 산행 기점인 박곡리로 가기 위해서는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15분 걸린다.
박곡리 입구 정거장에 하차.
오전 9시45분, 11시30분, 오후 4시10분, 6시10분 등 하루 6회 운행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는 대구-부산 고속도로를 타고 청도TG에서 내려 밀양·청도 방면 25번 국도를 타고
우회전했다가 곧바로 경주·운문 방면 20번 국도로 좌회전한다.
운문사 방향으로 동곡재를 지나 동곡리 사거리에서 직진한 후
남양·오봉 방면 919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
동창천을 건너 '대비사 6㎞'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 들어가면 박곡리에 닿는다.
박곡리 마을 입구에서 정면의 다리를 건너지 말고
왼쪽 11시 방향 포장도로를 100m 정도 가면 왼쪽에 들머리가 있다.
그 앞에 주차해도 무방하다.
날머리인 호산재에서는 운문사에서 청도나 대구로 가는 버스가 지나갈 때 손을 들고 세워 탈 수도 있고
운문댐 아래 대천정류장까지 1㎞가량 걸어도 된다.
운문사에서 청도행 버스는 오후 3시50분, 4시50분, 5시40분, 7시15분(막차).
청도역에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는 오후 1시57분, 5시48분, 6시8분, 6시40분, 7시46분, 9시38분에 있다.
날머리에서 박곡리에 주차해 놓은 승용차를 회수하러 가려면 동곡에서 내려 박곡리행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GPS 도움=GPS영남 (http://cafe.daum.net/gps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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