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들 사화 피해 숨어들던 곳…
“에헴~ 이리오너라”
경북 봉화 여행
- 춘향 찾던 이몽룡의 생가 ‘계서당’
- 조선말기 문신 강용이 지은 ‘만산고택’
- 자연과 어우러진 100개 넘는 정자
- 춘양목 목재체험장·亞 최대 수목원까지
- 봉화군 전체가 흙·나무·고택의 고장
경북 봉화는 ‘오지’라고 생각했다.
안동에서 내륙으로 더 들어가야 하는 데다 사화를 피해 도망친 양반들이 봉화에 터를 잡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정자가 만들어졌다는 곳이니 그럴 만도 하다.
전국의 산타 마을을 취재하려다 하루 만에 돌아오기 힘들다는 말에 애써 외면했던 곳이기도 하다.
본의 아닌 ‘외면’을 오래 받아서일까 봉화는 오히려 청정함을 얻었다.
청정 자연환경에서 자라는 춘양목과 송이가 특산물로 자리 잡았고
봉화군 전체가 흙 나무 정자 고택 등으로 일부러 꾸민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경북 봉화군은 춘양목과 송이뿐 아니라 고택과 정자로 이름이 높다. 사진은 경북 봉화군 봉화버스터미널로 가는 도중 뭔가에 이끌리듯 찾은 도암정. 연밭을 이룬 연못에 소나무 한 그루를 품은 인공섬이 있어 정자와 조화를 이룬다. 현재 경북 봉화에는 100여 개의 정자가 있다. |
■ 춘양목이 살아 숨 쉬는 봉화
춘양목을 찾아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을 찾는다.
춘양목은 금강송이라고도 불리는데 붉은색을 띠고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껍질이 특징이다.
봉화군 춘양면이 집산지여서 춘양목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붉은색을 띤다고 적송이라고도 불린다.
같은 굵기라면 다른 소나무보다 나이가 세 배가량 많을 정도로 재질이 단단하고 곧게 자라
궁궐을 지을 때 사용됐을 뿐 아니라 정자와 고택에도 널리 쓰였단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내 전시관. |
지하 1층, 지상 2층의 체험장은 목재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체험장 앞에는 앙증맞은 나무자전거 3대가 놓여 있다.
장정이 타도 끄떡없고 페달을 밟으니 신기하게도 앞으로 나아간다.
건물 내로 들어서니 윤기가 흐르는 마루와 천장 사이에
나무로 만든 장식품들이 진열돼 있다.
나무시계와 십이지상, 가정집을 꾸민 공간 등 볼거리가 넘친다.
지하 1층에서는 ‘손잡이 박스’ 만들기가 한창이다.
재료는 미리 손질돼 있어 접착제를 붙이고 못질만 하면 된다.
간단한 작업인데도 체험자들은 오랜만에 망치를 잡아서인지
평소 쌓인 스트레스를 털어낼 심산에선지 망치를 쾅쾅 두들기며 즐거워한다.
30분 정도 흘렀을까.
작품을 완성한 한 체험자는
“못이 삐딱하게 박혔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만든 작품이라서 그런지 멋진 것 같다”며 웃음을 짓는다.
건물 뒤편 창평삼림욕장은 소나무들이 말을 거는 듯하다.
해설사는 “토닥토닥 두드려주거나 꼭 끌어안아 주면 나무도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준다”며
나무 사랑을 고취시킨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춘양면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2011년에 아시아 최대인 5179㏊에 착공했지만 정식 개원은 미뤄지고 있다.
그 덕분에 입장은 무료다.
기존 전시형 수목원 개념에서 벗어나 야생동물 조류 수자원 지질 등
자연환경을 연구·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방문자센터에 들어서면 2층 높이의 기둥이 쭉쭉 솟아있다.
나무 모양의 기둥이 마치 조형작품을 보는 듯하다.
입구 주변에는 최근에 숨을 거둔 호랑이의 박제와 뼈가 전시돼 있다.
박제는 많이 봤는데 뼈까지 보존한 것은 특이했다.
덩치가 작은 것은 생애 마지막에 질병으로 앓다가 죽어 왜소해진 탓이라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니 백두대간의 모든 것이 전시돼 있다.
일정이 빠듯해 드넓은 수목원을 다 둘러볼 수 없어 춘양목군락지를 경험할 수 있는 외씨버선길만 걷는다.
숭례문이 불탔을 때 이곳에 있는 춘양목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수령이 100년에 이르지 않아 춘양목들이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트레킹 코스는 약 7㎞에 달하는데 걷기가 힘들다면 차량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으니 수목원에 문의하면 된다.
■ 단아하고 운치 있는 고택과 정자
춘향전 이몽룡의 실존 인물인 성이성이 살았던 생가인 계서당. |
봉화는 춘양목과 송이 못지않게 정자와 고택이 유명하다.
봉화의 고택인 계서당(국가민속문화재 171호)은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의 실존 인물인 성이성의 생가다.
광해군 5년(1613)에 건립됐다고 하니 400년을 넘긴 셈이다.
집안 종부는 “그동안 몇 차례 보수하긴 했지만
원형은 그대로 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안채는 약간의 변형이 있었지만
조선시대 경북 북부지방 ‘ㅁ’자형 전통가옥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주택발달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고 한다.
한편 성이성은 문과 급제 후 여러 고을의 수령과 세 차례 어사에 등용됐고
청빈과 근검으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이다.
봉화 바래미마을에서는 여러 가옥 중 남호고택과 소강고택이 눈에 띈다.
남호고택은 농산 김난영이 조선 고종 13년(1876)에 건립해 그의 아들 남호 김뢰식이 살던 곳이다.
남호 김뢰식은 경상도 지방의 명망 높은 부호였는데 상해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 시
전 재산을 저당하고 대부를 받아 제공해 1977년 건국 공로 표창을 받기도 했다.
남호고택 옆에 있는 소강고택은 남호가 둘째 아들에게 1910년께 지어준 가옥으로
문살까지 춘양목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연차를 마실 수 있는 조선시대 한옥인 만산고택(국가민속문화재 279호)도 있다.
조선 말기의 문신인 만산 강용이 고종 15년(1878)에 지은 것이다. 가옥의 양쪽에는 11칸의 행랑채가 있다.
사랑채의 앞쪽에는 대원군이 쓴 ‘만산’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서당에는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이 8세에 쓴 ‘한묵청연’이라는 글씨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는 만산의 4대손인 강백기 선생 내외가 거주하며 고택체험을 마련하고 있는데
종부인 류옥영 여사의 숨결이 스민 야생화 화분과 도자기가 집안 곳곳을 환하게 밝혀
고택의 아름다움을 한층 빛내고 있다.
백두대간수목원 내 춘양목 군락지를 걷고 있는 탐방객들. |
봉화에는 정자가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수려하다는 청암정을 보기 위해
닭실(달실)마을로 들어선다.
‘봄이면 수양버들이 연못을 쓰다듬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꽃처럼 물든다’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다.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워져 있는데
오후 4시를 넘기면 담장 밖에서 구경해야 하니 서두르는 게 좋겠다.
청암정이 있는 닭실마을은
황금 닭이 학의 알을 품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외에도 빽빽하게 연잎이 깔린 연못 가운데 인공섬에 핀 소나무와 조화를 이루는
도암정과 폭포·시냇물 주위에 폭 싸여 있는 와선정도 빼놓을 수 없다.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는 뜻의 한수정도 와선정 가까이 있다.
# 자연 암벽에 새긴 거대 마애불
■ 또다른 볼거리
경북 봉화군 북지리에는 7세기께 조성된
북지리마애여래좌상(국보 201호·사진)이 있다.
야산 기슭의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 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겼다.
불상 뒤편의 광배는 머리 광배와 몸 광배로 구분했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해 신비감을 준다.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불상을 바라보면 얼굴 왼쪽이 손상돼 있으며
불상 주변에 보호각이 설치돼 있다.
봉화에는 북지리마애여래좌상 외에 국보가 하나 더 있다.
문수산 능선에 있는 축서사 대웅전 서벽에 봉안된 통일신라의 비로자나불 좌상인
석불좌상부광배도 국보(제 995호)다.
# 식당 나서도 입안 가득 송이향
■ 인근 먹을거리
인하원의 주메뉴인 송이전(가운데)과 송이전골. |
봉하에는 송이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많이 있지만
그중 1년 내내 송이돌솥밥을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당 중의 한 곳인 인하원은 추천할 만하다.
이곳에서는 송이전골과 송이전이 주메뉴인데 전골에 두둥실 떠 있는
송이가 꽃 모양을 이루고 있고 송이전에도 송이가 가득 들어있다.
얇게 썰었지만 송이의 풍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후식으로 송이를 달인 송이차가 나오는
데 나올 때까지 입안에서 송이 향이 가시지 않는다.
글·사진=유정환 기자 defi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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