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따라 이야기 따라

잃어버린 ‘철의 왕국’ 흔적을 찾아서…

금산금산 2017. 10. 12. 20:58

잃어버린 ‘철의 왕국’ 흔적을 찾아서…



부산 속 [가야] 역사트레킹






- 문 대통령 ‘가야사’ 언급 후 관심 급증
- 김해·함안 등 경남지역에 유적 많지만
- 부산에도 가야시대 유적지 곳곳에

- 갑옷·금동관 나온 동래 복천동 고분군
- 지금까지 1만2000여 점 유물 출토돼
- 고총고분 18기 쭉 늘어선 연산동 배산
- 신라·백제 왕릉에 견줘도 손색 없어



가야사 연구는 ‘잃어버린 역사의 고리를 찾는 작업’이라 불린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금관가야)과 고령 지산동 고분군(대가야) 등의 발굴 조사로

 속속 실체가 드러나고 있지만 사료 부족으로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을 언급하자마자 전국이 들썩인다.

인터넷으로 삼국시대를 검색하면 지도가 나오는데 부산 위치에 가야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신라에 복속(562년)될 때까지 부산에서 가야시대가 찬란히 빛났음을 알 수 있다.

때마침 부산시의 ‘부산 속 들여다보기’를 주관하는 대륙항공여행사가 ‘부산 가야 역사트레킹’을 내놓는다.

복천동 고분군과 연산동 고분군이 부산의 대표적 가야 유적인지 몰랐던 사람이라면 그저 따라와 보시라.



   
관광객들이 연산동 고분군에서 불룩불룩 솟은 고총고분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6월 사적 제539호로 지정된 연산동 고분군에는 삼국시대 부산지역을 다스렸던 가야인들의 고총고분 18기가 있다.



■ 부산 속 가야의 흔적들

가야의 흔적을 찾아 동래구 복천박물관을 방문한다.

 3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면 말과 병사에 철제 갑옷을 입힌 중장기병 모형이 눈에 띈다.

복천동 고분군이 단일고분으로는 갑옷과 투구가 가장 많이 나온 유적이라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철제 갑옷에 새 모양의 장식이나 깃털로 어깨 부위를 장식하기도 했다고 하니 미적 감각도 뛰어났을 것 같다.

가야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 중 하나는 덩이쇠(철정)다.

4~6세기 부산과 김해 지방의 대형고분에서 많이 출토됐는데 가야시대 철이 대량생산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란다. 덩이쇠는 관의 바닥에 깔아 죽은 자의 부와 권력을 상징했는데 철제 농기구뿐 아니라 공구류도 출토된 바 있다. 그 외 복천동 10·1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 가야와 신라시대 쓰였던 굽다리접시(다리를 붙인 그릇)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복천박물관에서 내려다 본 복천동 고분군.



바로 옆 복천동 고분군은 3세기에서 7세기까지 약 400년간 조성된 곳으로 1969년 첫 발굴조사 이후 지금까지

 191기의 무덤과 1만2000여 점의 유물이 부장품으로 출토됐다.

가야의 무덤은 대체로 4세기에는 덧널무덤, 5세기 이후에는 돌덧널무덤이 유행하다

 6세기에는 무덤에 입구를 만든 돌방무덤으로 변화했다.

특히 덧널무덤은 삼한 후기보다 규모가 커지면서 유물만을 부장하기 위한 별도의 딸린덧널을 만들기도 했는데

 지배층의 무덤에서는 순장이 확인되기도 했다고 한다.


복천박물관 김경미 해설사는 “복천동 고분군에서 주목할 점은 순장 역사를 보여주는 고분군”이라며

 “부여 등 북방 유목민족만의 고유 장례의식으로 고구려 백제 고분에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복천박물관에 전시된 금동관.

연산동과 망미동에 걸친 배산 정상에는

 배산성지(부산시 지정기념물 제4호)가 있다.

옛 지명인 거칠산국 시대의 유적으로 ‘삼국사기 거도열전’에 보면

 신라 4대 탈해왕 때 거도라는 장수가 거칠산국을 정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신라에 병합되기 전에는

 이 지방의 세력집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배산(256m)은 정과정곡을 남긴 정서의 유배지이기도 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삼국시대에 부산 지역을 다스리던 지배자들의

 고총고분(봉분을 높이 쌓은 고분) 18기가 늘어선

 연산동 고분군이 보인다.

신라의 문무대왕릉, 백제의 무령왕릉 등을 보면서 부산에는 왜 이런 능이 없을까 아쉬웠다면

 연산동 고분군을 찾아보자.




■ 트레킹 동선 따라 소소한 즐거움

   
복천박물관에 전시된 가야시대 중장기병 갑옷을 통해 재현한 모형.

부산 가야 역사트레킹은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가야시대 유적인

 두 곳의 고분군을 중심으로 하지만 단조로움을 피하려고

 동부산권과 도심의 다양한 볼거리들을 엮었다.

특히 크고 작은 사찰 투어는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가장 먼저 들른 기장 장안사에서는

 부산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대웅전(보물 1771호)을 꼭 둘러봐야 한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사상구의 운수사 대웅전(보물 1896호)으로 해체 수리 과정에서

 묵서명(인조 25년, 1647년)이 발견돼 첫 번째로 인증받았다.

부산시과학교육원 근처 극락사는 소나무 한 그루가 절 마당을 채운

 작은 절로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산제당이 남아 있으며

 땅바닥에 옹기를 파묻어 음통으로 이용한 범종각이 특이하다.



연산동 고분군 옆 혜원정사는 1925년 김덕만 김순임 내외가 금동불을 모시기 위해 3칸 목조건물을 짓고

 30여 년간 수행처로 삼았다가 폐사된 뒤 1975년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의 불력으로

 오늘날의 도량을 이뤘다고 한다.

고산스님은 제29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분으로 현 주지는 고산스님의 제자 원허스님이다.

다음 달 3일(음력 9월 15일) 혜원정사가 연산동 고분군에서 거칠산국왕릉제를 펼친다고 한다.

   
출토된 중장기병 갑옷.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부산 속 들여다보기’를 주관하는 대륙항공여행사 장순복 대표가 장난스레 “첨성대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라고 묻자 곧바로 “경주로 가야죠”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연제구에 있는 부산시과학교육원에 들어서면서

 일행은 입이 쩍 벌어진다.

실제 첨성대를 옮겨놓은 듯 거대한 첨성대(지름 5.17m, 높이 9.4m, 13단과 15단 사이에 사각형의 창문도 뚫려있다)가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첨성대 외에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자격루 측우기 천상열차분야지도

 해시계 등도 함께 있으니 꼭 한 번 방문해 보길 바란다.

복천박물관 옆 동래읍성의 장영실과학동산에도 앙부일구 혼천의 등이

 전시돼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겠다.

수영구 망미동 F1963과 장안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임랑 웨이브온 카페도 ‘핫’한 곳 중 하나다.

F1963은 고려제강이 45년 동안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공장에

 조병수 건축가의 철학에 따라 리노베이션 된 곳이다.

테라로사(카페), 프라하993(맥줏집), 복순도가(막걸릿집), 뜰과숲 원예점(원예), 예스24(서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 부산시, 동래 패총·노포동 고분 발굴 등 가야 문화재 복원 활발

   
보물 1771호인 기장군 장안사의 대웅전.

부산시도 가야사 재조명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주요 대상은 복천동 고분군(사적 제273호), 동래패총(〃 제192호),

 연산동 고분군(〃 제539호)이다.

이 세 곳은 최근 문화재청이 선정한 전국의 가야 관련

 문화재 26개에 포함된 주요 문화재다.

시는 먼저 학술 연구 사업으로 부산 지역 가야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통해 가야사의 온전한 복원과 고대 부산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가야 문화재 발굴 정비도 이뤄진다.

김해 대성동과 함께 금관가야의 양대 축인 동래구 복천동 발굴조사 정비사업과

 동래 패총 발굴조사 정비도 포함한다.

동래 패총 일대는 복천동 고분군에 묻힌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로

부산 지역 금관가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철 생산시설, 저장시설, 패총이 남아 있는 대규모 유적지이지만

 현재 유적 일부만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금정구 노포동 고분군(부산시 지정기념물 제42호) 발굴조사 정비도 계획돼 있다.

관광자원화 사업도 진행한다.

시는 수영강·온천천을 따라 형성된

가야 문화재(노포동 고분군~복천동 고분군~동래 패총~연산동 고분군~배산성지)에 이르는

 총 12㎞를 잇는 가야문화 체험벨트 ‘가야의 길’조성 계획을 제안한 바 있다.

글·사진=유정환 기자 defi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