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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 맞장부 & 소매치기

동네 구멍가게에 조그만 맞장부를 만들어 놓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였습니다월급 받으면 외상값 갚고, 또 외상을 놓고 또 다시 갚아 주고 그래서 돈 떼먹고 사라진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월급날에는 신발공장 주변으로 소매치기도 기승을 부렸습니다그래서 도시락 안에 월급봉투를 넣고 퇴근하는 직원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물품 도난사건도 종종 생겼습니다그래서 직원들이 퇴근할 때면 공장 출입구에서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하여 신발 등을 숨겨 나가는 것을 방지했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4cMgwJKiUk

아이들 생각해서 ‘꾹 참고 견뎌내어야’만 했던 여공들의 삶!

신발공장에서 신입으로 일을 하게 되면 처음엔 신발창이나 가피에 풀을 칠하고, 빠찌(패치patch) 붙이는 것을 하며 신발창 다듬는 일도 하게 됩니다 작업량이 워낙 많아서, 칼날에 손을 베이거나 다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j 씨는 신발공장을 다니면서 아이 둘을 혼자서 키웠다고 합니다결혼한지 8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시 국민학교 1학년이던 딸애가 학교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집에 가기 싫어서, 공장으로 찾아와 있는 것이 늘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BhsM4HwAfw

일제강점기까지도 배가 드나들었었던 ‘동천(東川)’!~

일제강점기 동천은 죽은 하천이 아니라 배가 다니는 운하였습니다고무신의 주원료인 고무는 전량 동남아에서 수입하였고 고무 수입항만이 바로 동천이었습니다 1936년 조선방직과 대선양조 등 동천 주변의 다섯 회사가, 동천에 퇴적물이 쌓여 배가 드나들지 못해 경제적 손실이 크므로 동천 입구 대선 양조에서 서면에 이르는 구간에 동천 운하를 준설해 달라는 진정서를 부산 부윤 시장에게 내었습니다 동천 주변으로 신발회사가 성업하면서 자연히 하나둘씩 부산진구에 신발회사가 늘어났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8U2BY0IDbM&t=8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