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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잘 나가던 고무공장, ‘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신입사원 채용!

1962년부터 부산의 고무신도 수출을 시작하였습니다당시 부산이 우리나라 제1의 무역항과 수출 도시로 발돋움하는데 무엇보다 신발 산업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부산의 신발회사들은 새로운 상품을 개발했습니다새로운 신발이 크게 히트하면서 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ZeGjgD4fc8

‘전천후 고무신’의 추억!

깜장고무신은 신발 이상의 전천후 신발이었습니다. 도랑을 막아서 물고기를 잡을 때는 고무신으로 물을 퍼내었고, 고무신을 비틀어 구겨서 여러 가지 모양도 만들고 놀았으며 또 운동장에서 고무신 멀리차기 놀이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검정색이었으니, 고무신을 새로 사면 연탄 불집게로 이름부터 새겨 놓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무신이 닳으면, 엿장수 아저씨에게 엿과 바꾸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TAl7ABOzxI&t=6s   \

고무신의 메카(Mecca)가 된 부산!~

1930년대 후반 고무 원료 수입이 어려워지자, 상점에서 또다시 나막신을 진열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고무공업이 재개된 것은 해방 이후였습니다일본인의 귀속재산을 민간에 불하하면서 고무공장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켰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각종 기업들이 속속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피란민 유입으로 신발 수요도 덩달아 늘어났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wpJLQapZ7Q&t=6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