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쉬는 부산바다 <11> 태풍
'산바'에 숨죽인 바닷속…그래도 생명은 숨쉰다
|
|
태풍이 불러온 강한 파도는 갯바위나 암초에 붙어 있는 작은 바다동물들이나 유기물들이 떨어질 테니 작은 어류들에게는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은 셈이다. |
- 불가사리·군소·새우 등
- 바위 틈 등으로 이미 숨고
- 작은 어류는 유기물 포식
- 낙동강 하류 홍수경보에
- 방류된 황토물 바다에 침전
- 부착성 해조류·산호류 등
- 개흙에 덮여 가쁜 숨 내쉬고
- 바닥면은 센 파도에 골 파여
|
|
|
바다로 흘러드는 낙동강 황토물. |
올해 유달리 많은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제14호 태풍 '덴빈', 제15호 태풍 '볼라벤', 제16호 태풍 '산바'까지 8월 이후 발생한 3개의 태풍이 모두 한반도에 상륙했다. 1904년 기상관측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에다 7월 발생한 제7호 태풍 '카눈'까지 더하면 올해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은 4개나 되는 셈이다. 한 해에 태풍 4개가 몰려온 것은 1962년 이후 50년 만의 일이다. 태풍은 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태풍이 지나간 후의 바닷속은 오기 전과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집채만 한 파도는 바닷속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태풍이 오기 전
# 9월16일
|
|
|
태풍이 오기전. 작은 새우들이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있다. 그 아래로 게가 보인다. |
오전 태풍 '산바'는 오키나와 해상을 지나 제주도 서귀포로 향하고 있었다. 태풍이 오기 전 바닷속을 관찰하기 위해 태종대 감지해변으로 향했다. 오전 9시 도착한 감지해변에는 대형 트럭들이 빼곡했다. 얼마 후 초대형 태풍의 상륙이 예고된 만큼 자갈마당에 설치된 각종 시설물을 옮기기 위해서였다. 조금씩 강해지는 바람과 묵직하게 흔들리는 바다는 다가오는 태풍의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렵게 배를 구해 감지해변 동쪽으로 향했다. 배의 진행을 막는 너울성 파도를 넘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파도의 영향이 어느 정도 수심까지 영향을 줄까. 파도에 몸이 휩쓸리지 않게 수심 10m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서 기어가는데 흔하게 보이던 불가사리, 게, 군소, 고둥 등은 이미 모습을 감추었다. 바위를 들추자 게, 새우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함께한 동료 다이버는 바위틈에서 수백 마리에 이르는 새우를 발견하기도 했다. 태풍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한 바다동물들 중 깊은 바다로 옮겨 가는 종도 있겠지만 단단한 바위틈에 몸을 숨기는 종도 있을 것이다. 수면 가까이 올라오자 범돔, 자리돔, 돌돔 등 감지해변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작은 어류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보다 강한 파도에 갯바위나 암초에 붙어 있는 작은 바다동물이나 유기물들이 떨어질 테니 작은 어류들은 먹이를 쉽게 구할 좋은 기회를 맞은 셈이다.
|
|
|
태풍이 오기전. 바위틈에 몸을 숨긴 게의 모습. |
구소련 아카데미 회원이었던 리츠네스키는 그의 저서 '생물들의 신비한 초능력'에서 태풍이나 폭풍을 미리 감지하는 바다동물을 예로 들고 있다. 책에 의하면 돌고래는 바위 뒤로 피난하고 고래는 먼 바다로 나가며, 해파리는 파도의 피해가 작은 연안의 안전한 곳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리츠네스키는 이와 같은 현상은 바다동물들이 제6감이라 불리는 '관측장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적고 있다. 동물들의 일기예보 능력은 우리 선조에 의해서도 흔하게 관찰되고 증명됐다. 이를테면 비가 오기 전 지렁이가 땅 위로 기어 나오려 하고, 미꾸라지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면 날씨가 나빠진다는 등이 그러하다. 바닷속 동물들의 관측 능력에 대해 밝혀진 것이 적은 것은 땅 위 동물보다 바닷속 동물을 관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바다동물은 태풍이나 폭풍을 감지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들의 능력에 대해 상당 부분 모르고 있을 뿐이다.
■태풍이 지난 후
# 9월17일
|
|
|
태풍이 몰고온 홍수로 낙동강물이 불어나면서 황토물이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
오전. 예고대로 태풍은 남해안으로 상륙해 부산을 지나 경북 내륙지방으로 향했다. 중심기압 965헥토파스칼(h㎩)로 역대 최고의 태풍이었던 2003년 9월의 '매미'가 기록한 950헥토파스칼(h㎩)에는 못 미쳤지만 '산바'는 많은 비를 몰고 와 6년 만에 낙동강 하류 지역에 홍수 경보가 발령되었다.
# 9월20일
배를 타고 낙동강 하굿둑에서 방류된 황토물을 따라 바다로 향했다. 거침없이 바다로 흘러드는 황토물은 바다의 푸른색과 경계층을 형성한 채 점점 바다 쪽으로 강의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황토물이 바다를 삼켜가는 속도를 앞질러 다대포항에서 4.8㎞ 떨어진 나무섬에 도착했다. 섬 정상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니 낙동강 물이 밀려 내려오는 모습이 한눈에 관찰되었다. 하굿둑에서 방류된 황토물은 낮 12시30분께 나무섬에 도착한 후 섬을 분기점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졌다. 이제 2~3일 후면 송도, 영도를 거쳐 광안리와 해운대까지 낙동강 황토물이 밀려들 것이다.
# 9월 22일
|
|
|
다시 태종대 감지해변으로 향했다. 태풍이 지나간 지 5일이 지났지만 바닷속에는 아직 태풍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쌓여 있는 개흙들이었다. 감지해변의 동쪽과 남쪽 바닥면은 암반지형이고 서쪽 바닥면은 개흙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태풍이 몰고 온 파도는 이들 바닥면을 뒤집어버렸다. 여기에다 빗물과 함께 흘러들어온 토사와 낙동강 황토물이 뒤섞인 다음 바닥면으로 가라앉은 탓이다. 부착성 생물인 해조류와 산호류는 개흙을 덮어쓰고 있고, 바닥면은 파도가 남기고 간 생채기 마냥 골이 파여 있다. 조개류와 따개비 멍게 등 고착성 바다동물들은 몸을 피하지도 못하고 흙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 가쁜 숨을 쉬고 있는데, 그 사이로 며칠 동안 사냥을 못해 굶주린 어류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만약 해조류와 부착성 바다동물들이 흙을 뒤집어 쓴 채 이대로 방치된다면 바다는 생명력을 잃고 말 것이다. 하지만 수백 만년 동안 태풍을 이겨낸 바다와 바다동물들은 자정능력을 갖추고 있다.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밀물과 썰물은 감지해변 동쪽과 남쪽 바닥면의 암반과 부착성 바다생물에 쌓여 있는 개흙들을 조금씩 닦아 서쪽으로 밀어낼 것이다. 바다동물에게 개흙이 나쁜 영향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그 속에 포함된 각종 유기물은 바다동물의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 골고루 뒤섞인 채 다시금 한자리에 쌓여가는 개흙은 내년 태풍이 올 때까지 바닥에 얌전히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공동기획 : 국제신문, 국토해양부 영남씨그랜트, 국립 한국해양대학교
|
|
|
태풍이 지난 후 바닥면에 개흙이 쌓여 있다. |
|
|
|
태풍으로 며칠째 굶주렸을 돌돔 무리가 개흙이 쌓인 해조류 사이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
|
|
|
바닥면의 무쓰뿌리돌산호들이 개흙을 덮어 썼다. |
|
|
|
태풍으로 인한 강한 파도가 만든 골이 바닥면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
|
|
|
태풍으로 인한 강한 파도가 만든 골이 바닥면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