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전설 보따리] <4> '효자로 이어진' 김씨 가문
하늘이 내리고 나라가 인정한 효자 4대
부산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에 있는 효자 김씨 가문의 사효묘(四孝廟) 사당 모습. |
- 장소: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
- 호랑이로부터 모친 구해낸 조부 김순적에서부터
- 사력 다해 부친 병환 치료한 아들·며느리 이어 손자까지
- 4대째 '효심' 집안 내력으로
김순적은 조선 중엽에 부산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에 살았다.
기골이 장대하고 담력이 센 그는 겨우 13세 되던 해
대낮에 호랑이가 마을로 내려와 그의 모친을 물고 가는 것을 보고
달려 가서 한 손으로 호랑이의 꼬리를 잡고, 또 한 손으로 모친의 발목을 힘껏 잡아 당겼다.
호랑이는 순적에게 꼬리를 잡힌 채 모친을 물고 산속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호랑이의 꼬리에 매달려가던 순적은 큰 소나무를 보자
기지를 발휘하여 호랑이의 꼬리를 나무에 감고 늘어지자
호랑이는 그만 물고 있던 모친을 놓고 달려드는데, 큰 돌을 주워 내리치자
산속으로 달아났다.
순적은 호식당할 뻔한 모친을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당 입구. |
이 효행을 나라에서 듣고 큰 상과 함께 나라에 바치는
조세와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효자 김련(1688~1754)은 효자 김순적의 후손이며
그의 처는 효부 강 씨(1685~1716)이다.
강 씨는 결혼한 이듬해 초여름부터 시부가 쇠약한 체질에 이질이 걸려
병석에 드러눕고 급기야 죽기에 이르자 자기의 손가락을 깨물어 생혈을 먹이니 시부의 병이 나았다.
김련의 부친이 이질로부터 살아난 그해 겨울에 심한 천식과 함께 몸이 극도로 쇠약하여 어떤 약을 써도 낫지
않았다.
그런데 향의가 겨울철에 생당귀가 있어야 군제(처방에서 제일 중요한 약)로 처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김련은 무작정하고 이산 저산을 헤매며 생당귀를 구했으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 오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 큰바위 밑에 웅크리고 앉아있다가 날이 새 밝아오자
바위 앞 양지 바른 곳에 생당귀가 파랗게 자생하고 있어 두 손 모아 하느님과 산신님께 감사를 올리고
생당귀를 구해 첩약으로 지어 부친에게 복약시키니 병환이 나았다.
김련의 손자 상제(1847~?)는 그의 부친인 봉의가 겨울에 중병에 걸려 신음하면서 잉어를 먹고 싶다 하자
얼음이 언 강가에 가서 눈물로 신령님께 호소하니 얼음 위로 큰 잉어가 뛰어올랐다.
이를 가져다 삶아 부친에게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
그 뒤 부친이 몇 년 동안 병석에 누워 있을 때 항상 부친의 대변을 맛보고 병의 차도를 짐작하였으며
부친이 임종할 때는 손가락을 끊어 생혈을 드리니 잠깐 소생하였다가 사망하였다.
국상이 있으면 3년간 상복을 입고 고기를 먹지 않았다.
나라에서 이들에게 포상하고 조세와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
효자 김씨 가문은 김순적→김련(참봉공 청유의 11세 손)→효부 강 씨(김련의 부인)→김봉의(김련의 아들)→김상제(김련의 손자)로 이어졌다.
보기 드문 효자 효부 집안이었다.
가마골 향토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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