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부산의 [전설 보따리] <7> 산저 노인과 '차밭골'의 차(茶) 나무

금산금산 2014. 2. 8. 12:32

부산의 [전설 보따리] <7> 산저 노인과 '차밭골'의 차(茶) 나무

작설나무 대신 자기 행랑채 땔감으로 내줘

 

부산 동래구 온천1동 차밭골의 차나무.

 

- 장소: 동래구 온천 1동
- 마을 사람들 폭설 추위에 차밭골 나무 베어 쓰기로 하자 노부부

   행랑채 헐어 써라 해
- 이듬해 이름모를 머슴 덕에 풍년에다 역병까지 잡아


옛날 성내에 '산저'라 불리는 노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어느 해 겨울 눈이 많이 내려 성내 사람들이 땔감을 구할 방도가 없어

서로 의논한 끝에 가까이 있는 차밭골(현 부산 동래구 온천1동)

작설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산저 노인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차약(茶藥)을 위해

가꾸어 온 작설나무를 베면 안 된다고 극구 만류했으나 마을 청년들은

모두 얼어죽게 된다면서 강행할 태세였다.

산저 노인은 부인과 의논한 끝에 마을 청년들에게

자기집 행랑채를 헐어 땔감으로 쓰고 차밭골의 작설나무를 베지 말라고 호소하였다.

청년들은 산저 노인의 호소에 따라 노인의 행랑채를 헐어 땔감으로 쓰고 작설나무를 베지 않았다.


다음 해 봄, 농사철이 닥쳤고 산저 노인이 머슴을 구하려고 했으나 행랑채가 없다 보니 아무도 머슴살이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큰일이군. 빨리 못자리를 만들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산저 노인이 애가 타서 차밭골에 올라가니 웬 젊은 청년이 나타나 머슴살이를 자청하는 것이었다.

산저 노인은 그 청년을 머슴으로 삼았고, 청년은 다른 머슴보다 일을 부지런히 잘 했다.


못자리를 할 시기가 되어 산저 노인이 청년에게 못자리를 하도록 시켰다.

그때 청년이 "올해는 찬물이 나는 찬샘 가까운 논에 못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그의 의견을 따랐다.

   
차탕물이 샘솟는 차샘.

그런데 그해 봄은 가뭄이 계속되어 다른 사람의 못자리가 물이 없어 모두 말라 죽었으나, 유독 산저 노인의 못자리만은 남보다 모가 잘 자랐다.

찬샘 가까운 곳이라 그런 것 같았다.

일찍 모심기를 마친 산저 노인은 남은 모를 이웃에 나눠주기도 했다.


또 그해에는 원인 모를 유행병이 번져 산저 노인 댁뿐만 아니라

성내 마을과 인근 마을까지 환자가 많이 생겨 다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청년 머슴이 작설나무 잎으로 만든 차약을 찬샘물에 타서 먹게 하니 산저 노부부의 병세가 치료되고 마을에 도는 유행병이 잡혔다.

그해 산저 노인은 청년의 노력으로 풍년을 맞아 행랑채를 새로 지을 수 있었다.


연말에 산저 노인이 청년 머슴을 불러 새경을 주려 하자 청년이 산저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큰절을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는 할아버지가 행랑채를 마을 사람의 땔감으로 내어주기까지 하면서 차밭골 작설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여

살아난 작설나무의 신(神)입니다. 저는 새경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은혜를 갚으러 1년간 할아버지 댁에서 일을 해드렸으며, 원인 모를 유행병도 고쳐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한 청년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 동래부 관가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차밭골 작설나무의 신령스러움에 놀란 성내 사람들은 이 나무를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고 한다.

이 계곡 주변에 작설나무가 자생한다 하여 지금도 '차밭골'이라 불리고 있다.

가마골 향토역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