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전설 보따리] <6> 범어사를 지키는 '느티나무'
우연한 만남서 돋아나, 천년의 역사 되다
- 장소: 금정구 청룡동
- 스님·도인 만남 기념 식수
- 임진왜란 때 왜적 20여 명, 톱질하다 벼락 맞아 죽어
- 썩어가다 광복 이후 살아나
부산 범어사 대성암에 있는 천년 된 느티나무. 신목으로 불리는 노거수이다. |
범어사 조계문에서 서쪽 금정산성 북문으로 가는 길을 따라 가면, 범어천 옆에 대성암이 나온다.
대성암 입구에서 왼쪽 지장전 뒤에 수령이 천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가 고목으로 늠름하게 서 있다.
이 나무의 높이는 18m에 이르며, 밑둥치의 둘레가 7.5m, 둥치의 둘레가 5m인 거목이다.
밑둥치에는 가로 1m, 세로 2.1m 크기의 구멍이 아치형으로 맞뚫려 있어 엄청난 상처를 안고 있다.
이 느티나무는 호국 사찰 범어사를 수호해주는 신목(神木)으로, 오랫동안 범어사의 안녕과 소원 성취를 빌어온 역사를 간직한 노거수이다.
옛날 어느 하루 범어사 아래의 팔송진에서 구포로 가는 스님과 구포에서 팔송진으로 가는 도인(道人)이 범어천이 흐르는 대성암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스님이 도인에게 물었다.
"가시는 길입니까?"
"아닙니다."
"오시는 길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쉬려는 것이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을 나누더니 두 사람은 아주 반갑게 손을 잡고는 범어천가 길목에 나란히 앉아 땀을 닦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도인이 스님에게 물었다.
"길이 멉니까?"
"아닙니다."
"가깝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가깝지도 멀지도 않군요."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
두 사람이 마주 보며 껄껄 웃더니 스님이 봇짐에서 나뭇가지 한 개를 꺼냈고, 도인도 봇짐에서 나뭇가지를 꺼내 서로 맞춰보고는, 스님이 머리를 갸웃 하며 말했다.
"이상합니다. 이 나뭇가지 한 개가 남는군요."
도인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가지는 우리가 만난 이 자리에 기념으로 꽂아놓고 가는 게 어떨까요?"
두 사람은 또 한바탕 웃더니 그 자리에 나뭇가지를 꽂아놓은 뒤 스님은 구포로, 도인은 팔송진으로
각각 길을 떠났다.
그들이 꽂아놓고 간 나뭇가지는 뿌리가 내리고 잎이 돋아나 점점 자라서 어느덧 커다란 대성암의
느티나무가 되었다.
역사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보람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 그 삶이 값진 것이 된다.
범어사 느티나무에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왜적들이 범어사에 불을 질러
범어사가 불에 탄 직후에 이 느티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려고 노거수 신목에 톱질을 하려다가 천둥과 번개,
벼락이 떨어져 나무 주위에 있던 왜병 20여 명이 죽었다고 한다.
상처를 입은 이 나무는 그 후에 둥치가 썩어가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수간(樹幹)에 새로운
움이 돋아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나운 풍설, 많은 사연들을 안으로만 사려 담아서 가슴이 저리도 썩었을까!
몸이 저리 썩었어도 저렇듯 싱싱한 잎을 피울 수가 있는가?
대성암에서는 신목인 이 느티나무에 매년 퇴비와 약을 치면서 정성껏 관리하고 있다.
"천년의 풍설/ 수다한 사연/ 새움의 역사/ 다시 만년 있도록/ 여러님 아낌에 기댑니다."
이 느티나무의 변(辯)이 깊은 역사를 느끼게 한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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