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전설 보따리] <9> 허장자와 소머리바위
과객들 막으려 바윗부리 뽑은 부잣집 망해
부산의 8대 중 하나인 부산 금정구 회동동 동대와 용바위. |
- 장소 : 금정구 회동동
- 손님 치다꺼리 힘든 며느리, 소머리바위 선돌 모두 부숴…
물길 바뀌자 가세 기울어
- 공덕산 수내마을도 유사 전설, 집앞 큰못 만드니 재산 사라져
고려 중엽 때 회천마을(현 부산 금정구 회동동 일대)에
김해 허씨가 크게 번성하여 큰 부자였던 허장자가 살고 있었다.
이 일대에 큰 감나무 뿌리가 있었고 기왓장 조각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허장자 집터는 명당 자리로 서쪽으로 앉혀져서
오륜대 쪽에서 냇물이 집 앞으로 흘러 들어오는데, 나가는 물길은
집에서보이지 않았다.
당시 동대(東臺·부산 8대 중 하나) 아래에는 '애기소'가 있었고
물길이 깊어 휘돌아 나갔다.
허장자는 화기산을 중심으로 꽃밭등과 석빙고 등에 얼음을 저장 관리하며, 부잣집 대가로 당당하게 잘 살았다. 그런데 그 마을 앞에 쇠뿔같이 생긴 두 개의 바윗부리인 선돌이 솟아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소머리바위(지금 회동동 버스 종점자리)라 불렀다.
허장자 집 사랑채에는 과객이 그칠 날이 없었다.
하인들도 과객 치다꺼리에는 손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어느 날 어른들이 출타 중에 그 집 며느리가 시주받으러 온 스님에게 시주를 하면서
"과객이 너무 많이 찾아와 감당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우리 집에 과객의 출입을 끊을 수 있을지요"라고
물었다.
이에 스님은 "방법이 없는 건 아니나 후회할 것인데…"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며느리는 안채에 들어가서 동전 꾸러미를 들고 나와서 시주를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스님이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하고 재차 다짐하고는
"저 앞산에 이 집을 보고 있는 소머리바위의 쇠뿔 두 개, 즉 선돌을 모두 뽑아 버리면 된다"고 하였다.
허장자 며느리는 이 말을 듣고 어른들 몰래 하인을 시켜 소머리바위의 바윗부리인 선돌을 모두 부수어 흔적을 없애버렸다.
그 후부터 허장자 집으로 들어오던 물길이 변해 집 안에서 보면 들어오는 물은 없고 나가는 물길만 보였다.
이때부터 그 후로 허장자 집은 해마다 가세가 기울어지니, 재산은 빠지고 집안 사람이 자꾸 병이 들어 허장자는 망하고 말았고, 과객들도 더 찾아오지 않았다.
비슷한 얘기로, 금정구 선두구동 공덕산 기슭의 수내마을 장자 부잣집 이야기가 있다.
이 집에도 과객이 너무 많이 와서 골칫거리가 되었다.
마님은 어떻게 하면 과객이 줄어들까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지나가는 도사가 장자 부잣집에 들르게 되었다.
마님은 도사에게 "과객이 너무 많이 와서 식량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도사는 "좋은 방도가 있지요. 집 앞에 못을 파면 과객도 적게 오고 편안하실 것입니다"라고 일러 주었다.
이에 마님은 하인들과 소작인을 시켜 못을 파게 하였다.
집 앞 골짜기에 있는 논 한 마지기 만큼의 큰 못을 파니 하얀 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이 일이 있은 후 과객은 끊어지고 3년 만에 장자 부잣집도 망해버렸다고 한다.
이곳의 하얀 새가 날아간 자리를 '새청못', 수내마을 뒤편 골짜기를 '새청골'이라 부르고 있다.
집에 오는 손님을 막으면 액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치는 전설이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
'전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의 전설 보따리] <11> '박권농'과 그 아들 (0) | 2014.03.29 |
---|---|
[부산의 전설 보따리] <10>과객이 사례로 준 '금침' (0) | 2014.03.29 |
부산의 [전설 보따리] <8> 해월사 '노 스님'과 '이무기' (0) | 2014.02.15 |
부산의 [전설 보따리] <7> 산저 노인과 '차밭골'의 차(茶) 나무 (0) | 2014.02.08 |
부산의 [전설 보따리] <6> 범어사를 지키는 '느티나무' (0) | 2014.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