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부산의 전설 보따리] <12> '장군대'와 '진계등'

금산금산 2014. 4. 5. 21:02

[부산의 전설 보따리] <12>

장군대와 진계등

섣불리 천마 죽인 장수 기동력 잃고 최후

 

 

장군대가 위치한 달산마을 뒷산인 천마산의 전경. 마을사람들은 장군대 위 하늘에서 말이 내려왔다고 한다.

 

 

 

- 장소: 기장군 정관면 월평리
- 달음산 기슭서 태어난 아기장사
- 자객 피해 운장대에 숨어 살다가
- 진계등에 나타난 천마 타고 놀아
- 장수되자 애마를 단칼에 베어
- 말도 없이 보병으로 싸우다 전사

옛날 기장군 달음산 동쪽 기슭에 쉰 살이 넘은 이 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대(代)를 이을 자식이 없어 달 밝은 밤이면 장사바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산신령님께 소원을 빌었다.

 

그러자 부인은 잉태하여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는 이레 만에 말을 하였고, 일곱 살이 되자 키가 9척이나 되어 장사바위를 두 손으로 번쩍 들었다.

손으로 바위를 누르면 손자국이 생기고, 맨발로 바위 위를 걸어도 발자국이 생겼다.

장사바위골에서 아기장사가 났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이웃 부족 적국의 첩자들이 아기장사를 해치려고 하였다.

부모는 자객을 피해 치마산 등성이에 있는 운장대에 아기장사를 숨겼다.


낙락절벽으로 바위가 겹겹이 싸여 구름 속에 잠겨 있다 하여 명명된 운장대(雲裝臺).

이곳에서는 동해의 수평선 너머 대마도가 보이고,

북쪽의 산야가 훤히 바라보여 천혜의 신비에 싸인 절경으로 숨어 살기에 좋았다.

 

아기장사는 산기슭의 계곡을 끼고 기다랗게 둔덕이 뻗어 있는 진계등(陣界嶝)

난데없이 천마가 나타나면 그 말을 타고 말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이 무렵 진계등의 텃골에는 고씨 댁 딸이 있었다.

태어나자 이레 만에 큰방 대들보에 매달려서 노는가 하면 대문을 넘기도 하고,

일곱 살이 되자 뒤뜰 대밭에서 왕대를 휘어잡고 대밭 위를 날기도 하였다.

또 댓잎을 한 움큼 따서 입김으로 불면 댓잎이 신병이 되어 아가씨를 호위하였다.


아기장사와 고 씨 아씨는 진계등에서 의좋게 놀면서 힘과 기(技)를 겨루며 성장하여 마침내 부부가 되었다.

장사 부부는 변경 적병들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북쪽 큰 고개 너머에 흙으로 작은 성인 반월성을 쌓았다.

장사 부부의 풍문이 퍼지자 고을 젊은 장정들은 너도나도 반월성에 모여들었다.


아기장사는 장정들을 조련하여 군사로 삼고 장수가 되었다.

어느 날 이 장수는 천마를 타고 반월성에서 진계등까지 달려 장군대(운장대)의 장수바위를 겨냥,

활을 쏜 후 천마를 타고 달렸다.

장수바위에 달려와 보니 화살이 보이지 않았다.

이 장수는 천마가 화살보다 늦게 달려왔다고 분개하여 단칼에 천마를 베었다.

그런데 그때서야 화살이 바위에 꽂히는 것을 본 이 장수는

억울하게 죽은 천마를 화장하여 잿들(灰坪)에 뿌려 주었다.

비통에 빠진 장수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반월성을 비우고 배회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적병들은 장수 없는 반월성을 급습, 손쉽게 점령했다.

이에 장수는 반월성을 탈출한 군사들을 모아 진퇴고개에서 진을 치고 대치했지만,

수적으로 턱없이 적은 장수군은 진계등(陣界嶝)까지 후퇴했다.


장수는 진계등을 경계로 하여 천마산 쪽에 진영을 갖추고, 적병은 진계등의 서쪽에 포진하였다.

적병의 장수는 신라거도장군이었다.

장수의 군사는 말이 없는 보병이고, 신라군은 기마병들이었다.


한편 장수의 부인은 만삭이 되어 댓잎으로 신병을 부리는 신통력이 없어졌지만,

신라 기마병은 숲이 무성한 여름에는 기동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남편인 장수에게 집 뒤 왕대밭에서 죽순이 솟아날 때까지 지구전을 펴는 것이 상책이라고 일렀다.

 

 

거도장군은 마술놀이를 잘하는 군사를 뽑아서 말등 뒤에 달라붙게 하여 달리게 하였다.

이 광경을 본 장수는 군졸들에게 달려오는 빈 말을 잡아오라고 명령하였다.

군졸들은 무기를 놓아둔 채 새끼줄을 들고 빈 말을 잡으려고 뛰어나갔다.

이때 신라군은 함성을 지르면서 장수의 진영을 여지없이 사살하였다.

천하의 이 장수도 온몸에 화살을 맞고 고슴도치처럼 되어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들은 고 씨 부인도 장군대에서 아기와 함께 죽었다.

가마골향토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