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전설 보따리] <21>
'석불사' 관세음보살상
불상 아닌 마음속의 여인 새긴 석공
- 장소: 북구 만덕동
- 석공 배판수, 스승 딸 사랑했지만
- 그녀는 부모 반대로 다른 데 시집
- 금정산 석불사 병풍암 암벽에
- 꿈속에 나타난 여인을 새겨
- 가장 빼어난 관세음보살상 돼
풍만한 형태미와 묘사력이 빼어난 금정산 석불사의 관세음보살상. |
배판수라는 [석공]이 있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이웃집에서 꼴머슴으로 지내다가
우연히 한 석공을 만나 돌 쪼는 일을 배웠다.
처음에 그는 망두석(望頭石=望柱石)처럼 쉬운 것을 쪼았지만
차츰 실력이 늘면서 마침내 [불상 조각]에서 꽤 알아주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배판수는 처음 석공 일을 가르쳐주던 스승의 딸을 사랑했다.
스승의 딸 역시 [성실한 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스승]은 고아에 빈털터리인 그를 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의에 빠진 그는 [사랑하는 이를 향해 타오르는 열정을]
불상 새기는 일에 쏟았다.
그사이 스승의 딸은 [부모의 강압에 못 이겨 딴 곳으로 시집을] 갔다.
이 절 저 절로 옮겨 다니며 불상을 조각하는 일을 하는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초례청(혼인을 지내는 예식장)으로 걸어가던 처녀의 마지막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던 중 동래에서 큰 불사(佛事)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금정산 석불사 병풍암 암벽]에 마애불군(磨崖佛群)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부랴부랴 병풍암을 찾았다.
도착해 보니 전국의 내로라하는 명인 석공들이 각지에서 찾아와
모여 있었고, 석벽에는 거대한 사천왕상이 새겨지고 있었다.
주불인 석가여래도 희미하게 형상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초청받지 못한 뜨내기 석공 배판수는 달빛이 쏟아지는
빈 공사장에 홀로 돌을 베고 누워 얼핏 잠이 들었다.
꿈속에선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던 처녀가 나타나
"나를 저 돌에다가 새겨주세요"라고 호소했다.
배판수는 꿈을 깨고 벌떡 일어나 막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부처상을 두 팔로 끌어안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다.
"부처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저 석벽에 부처님이 아닌
마음속에 품은 여인을 새기고 싶습니다."
그는 석벽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빈 자리를 하나 찾아내어
뚫어져라 응시하고는 여인을 새겼다.
그러자 감로병을 들고 천의(天衣)를 걸친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눈을 반쯤 내리뜨고 빙그레 웃는 모습은 끝없는 고뇌와 삼독(三毒),
즉 탐(貪·욕심) 진(瞋·성냄) 치(癡·어리석음)에 물든 중생의 마음을 씻어주는 자비로운 얼굴이었다.
마애불군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가장 빼어난 작품은 배판수의 [관세음보살상]이었다.
이 보살상은 석벽을 떠나 걸아갈 듯한 생동감과 여체가 지닌
고혹적인 아름다움과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고루 갖춘 보기 드문 걸작품이었다.
모든 일이 끝나는 날 배판수는 관세음보살상을 어루만지며
'이제는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다'면서 자신의 사랑이 비로소 완성되었음을 깨달았다.
1950년에 조성된 [석불사 만다라 마애불군]에는
한 석공과 여인의 사랑을 승화시킨 진수로 관세음보살상을 새긴 석공의 간절한 마음이
이야기로 전해오고 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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