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내 고장 숨은 '이바구'…] 창원 '팔용산'과 '돌탑'

금산금산 2014. 7. 9. 09:25

[내 고장 숨은 '이바구'…]

창원 '팔용산'과 '돌탑'

 

 

 

 

8마리 용이 꿈틀대는 산세 '통일기원' 972개 돌탑 화제

 

 

 

 

▲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봉암동 팔용산돌탑 군락지. . 이성훈 기자

 

 

 

옛날 하늘에서 여덟 마리의 용(龍)이 내려와 앉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팔용산(八龍山)이다.

 팔용산은 옛 창원시마산시 사이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는 반룡산(盤龍山)이라는 이름으로도 등장한다.

[반룡산]이 창원도호부에서 남쪽으로 7리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반'(盤)동쪽을 뜻하는데, 용마산(龍馬山)의 동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점차 [반룡]이 판룡→팔룡→팔용으로 변한 것이다.

산의 저수지에서 용 여덟 마리가 살다가 승천해 붙여졌다설도 있다

-마산시사 및 한국지명유래집(경상편)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 소재한 [팔용산]은 의창구와 경계를 이루는 도심 속의 야트막한 산이다.

해발 328m의 산 정상에 서면 옛 창원·마산·진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통합 창원시의 한복판이다.

산 형세가 여덟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는 것과 같다고 해서 유래된 [팔용산]에 새로운 전설이 쌓여가고 있다.



1993년부터 쌓기 시작
1천 개 목표 지금도 축조 중
정성 감복 역고드름 생겨
탑마다 다양한 역할 부여



팔용산의 '돌탑'이 신(新)전설의 중심이다.

[돌탑]은 팔용산에 내려앉은 여덟 마리의 용을 지키는 파수꾼이기도 하다.

팔용산에 [돌탑이 세워지기 시작]된 것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산가족의 슬픔을 뼈저리게 느낀 인근 주민이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지극정성을 담아 돌탑을 쌓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삼용(63) 씨가 돌탑쌓기의 주인공이다.

1993년 3월 23일은 이 씨가 '팔용산 돌탑 도사'로 불리게 된 출발점이다.



당시 마산시보건소에 근무했던 그는 매일 새벽 3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산에 올라 정화수를 떠놓고 남북통일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 씨는 "임진각에서 고향(북쪽)을 바라보고 망향제를 지내던 80~9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고 이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는 최고의 방안이 '통일'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통일이 빨리 이뤄지길 기원하면서 1천 개의 돌탑을 쌓기로 작심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2008년 1월 15㎝ 크기의 역고드름이 생겨 화제가 됐던 자리.   이성훈 기자

 

 

그가 16년째 통일기원 돌탑을 쌓아 오던 중 2008년 1월 1일 새벽 정화수에서 [얼음 기둥이 하늘로 솟아 오르는] 듯한 형태의 신비한 역고드름(15㎝)이 생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주민들은 이를 두고 "이 씨의 지극정성에 하늘이 감복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팔용산을 찾는 사람들은 돌탑을 [통일기원탑]으로 부른다.



돌탑이 수난당하는 사례도 있었다.

2011년 5월 누군가가 고의로 300여 기의 돌탑을 훼손하는 사태가 빚어졌던 것.

누가, 왜 돌탑을 망가뜨렸는지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후 돌탑 군락지 주변에는 4대의 CCTV설치됐다.

팔용산에는 지금까지 972기의 돌탑이 들어섰다.

이 씨가 당초 목표했던 1천 기에는 28기가 모자라는 것이다.

이 씨는 "공직에서 물러난 2009년 돌을 나르다 크게 다치는 바람에 이후 돌탑을 쌓지 못했다"

              "요즘에는 주말에 조심스레 산에 올라 조금씩 돌탑을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돌탑을 쌓는 데에는 대형의 경우 3~4개월이, 중형은 1주일 정도가 소요된다.



돌탑이 갖는 의미는 갖가지다.

돌탑의 영지(靈地)임을 알려 탐방객들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맡은 '성황당 돌탑',

어디서 누가 왔다고 돌탑 군락지에 소식을 전하는 연락병인 '애기 돌탑' 등이 있다.

돌탑 군락지에는 경남도의 지형을 닮은 '모형돌'도 있다.

봉암수원지와 돌탑. 이성훈 기자

 

 

팔용산 동쪽 자락의 봉암수원지 주변 곳곳에도 '달집' 만한 크기의 돌탑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등록문화재 제199호(2005년 7월)인 봉암수원지는 일제강점기 때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과 일제 부역자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30년에 축조됐다.



이성훈 기자 lee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