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전설 보따리] <26>
괴정동의 '회화나무'
벼슬아치 학정 성토하다 8명 희생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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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마을 수호목으로 무사평안을 비는 동제가 매년 열리고 있는 팔정자나무. |
- 장소: 사하구 괴정동
- 다대포진 첨사 싹둑 잘라내자
- 8개 가지 달린 회화나무 자라
- 동래부사 벌목령에 수난당해
- 무덤처럼 만든 밑둥치에 새순
- 이후 8가지만 키웠다는 설도
- 주변에 위치한 다른 회화나무
- 괴정통샘 관련 전설도 전해져
부산 사하구 괴정동의 [회화나무]는 높이 20m, 둘레가 6.2m로 수령은 6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가슴 높이 부분의 둥치에서 두 갈래로 갈려 있는 이 나무는 팔정자(八亭子)라는 멋진 닉네임을 갖고 있다.
지금의 사하구 [괴정동(槐亭洞)]이란 이름도 이 팔정자나무가 회화나무 즉,
괴목(槐木)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위치는 도시철도 1호선 괴정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만나는 화목아이츠빌 앞(괴정1동 1247-24).
이 회화나무는 오래된 만큼 거기에 얽힌 사연도 적지 않다.
옛날 [다대포진]에 포악한 첨사가 내려온 뒤로 주민들은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려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첨사의 학정을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성토대회를 열었다.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안 첨사는 [누각을 보수한다]는 명목으로
여덟 사람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 정자나무를 밑동째 싹둑 잘라버렸다.
그 뒤 정자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8개의 가지를 가진 [회화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이후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를 '팔정자'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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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정통샘과 함께 위치하고 있는 또 한 그루의 회화나무. |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온다.
팔정자나무의 아비뻘 되는 거대한 회화나무가 수난을 당했던 것은
조선 어느 임금 때인가는 확실하지 않으나 동래부사가 이곳을 지나다
우연히 이 나무를 발견하고 [다대포진 첨사]에게
동래부 동헌의 기둥으로 쓰게끔 베라는 지시를 내렸다.
동래부사의 벌목령이 내려졌지만 신주로 모시는 이 나무에 선뜻 도끼질을 하려는 목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다대포진첨사가 이 나무 앞에 사형수에게 내리는 고배상을 차리고 둥치에는 '어명(御命)'이라고 쓰인 종이를 붙인 뒤
큰절을 하고 직접 도끼를 들어 왼쪽으로 세 번 도끼질을 했다.
그제서야 목수들이 달려들어 이 나무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이 나무의 밑둥치에 흙으로 덮어
마치 사람의 무덤처럼 만들어 주었다.
이후 신기하게도 이 무덤에서 새순이 돋아났는데, 그 중 8가지만
마을사람들이 정성들여 키워 오늘의 [팔정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팔정자나무는 아쉽게도 이후 태풍 때 가지를 하나 잃어 현재 7개뿐이다.
지금도 팔정자나무 아래에서 마을의 무사 평안을 비는 [동제]가 매년 5월 7일이면 열린다.
지금의 괴정 땅은 선사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된 역사가 오랜 땅이다.
낙동강에서 내려온 곡물 등 농산물이 [하단포]에 부려지면
이것을 소달구지나 사람이 지고 [괴정]을 거쳐 [대티고개]를 넘어갔다.
괴정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팔정자나무 아래에서 담배 한 대쯤 피고 쉬어갔다.
그래서 명지동 위쪽 사람들은 괴정이라고 하면 잘 몰라도 팔정자라고 하면 훤히 알았다고 한다.
괴정동에 마을의 안녕을 지켜준다는 또 한 그루의 회화나무가 있다.
도시철도 괴정역 2번 출구로 나와 괴정병원 장례식장 쪽으로 좌회전하면 만나는
가마솥순두부식당 앞(괴정1동 1244-1)에 위치해 있다.
높이 20m, 둘레 6.5m, 수령이 600년인 이 회화나무 아래에는 [괴정통샘]이 있다.
이곳에는 옛날 어느 부부가 당산을 짓고 백일 동안 기도를 드려 아들을 얻었다고 전해온다.
또 나환자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나환자가 이 나무 밑에서 백일간 기도를 드렸다.
하루는 이 나환자의 꿈에 흰 도복을 입은 도사(목신)가 나타나
"그대의 정성이 하도 극진해 그대에게 샘물(약수)을 줄 것이니 그 물을 먹고 목욕을 해보아라"고
말한 후 사라져버렸다.
잠을 깬 이 나환자는 과연 나무 밑의 뿌리부분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둘레를 파보니
샘물이 솟아올라 그 물을 먹고 목욕을 하니 나병이 완치되었다고 한다.
이 샘물이 지금의 [괴정통샘]이다.
오래된 우물로 예부터 물맛이 좋아 주민들이 단물샘이라 불렀다고 한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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