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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 <14-7> [부산시민공원 스토리]- 팩션-2050년 미리 가 본 '시민공원'

금산금산 2014. 7. 26. 12:00

이야기 공작소 <14-7>

[부산시민공원 스토리]- 팩션-

2050년 미리 가 본 '시민공원'

 

잔디광장 시민 희망의 찬가에 되살아난 동천 물고기떼 춤추고…

 

 

 

초등학생들이 그린 부산시민공원.

 

 

 

방문자센터 들어서니 [꼬마 로봇]이 다가와 안내를 해주고
[역사관]에선 3D프린터로 조리한 옛시절 음식을 맛보고
[문화예술촌]은 통일된 남북의 문화예술 등 체험 공간으로
일제 경마장·미군 주둔지 아픔의 역사 담은 선율에 맞춰
수만 시민 사랑·자유의 합창 하늘가에 물감처럼 퍼져간다

#1 

2050년 봄, 부산시민공원 부전천 선착장이다.

'한국전쟁 100주년을 기억하는 마라톤대회'가 새겨진 '레이저 애드벌룬'이 하늘 높이 떠 있다.

출발선상에 선 1만 여명의 마라토너들이 축제 분위기 속에서 팔다리를 풀고 있다.

그 중에 커플룩 유니폼을 입은 대니 부부가 보인다.

'저기, 엄마 아빠 보여?'

'네, 할머니.'

 

마라톤 트랙 바깥에 서 있는 서영은 손자 '산'과 함께 아들 내외를 향해 손을 흔든다.

'박이별'('북극성'의 순우리말)이 하늘에 떠 있다.

박이별은 수륙양용에 하늘까지 나는 차로 행사 중계를 위해 방송국에서 나왔다.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공원 곳곳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오늘 마라톤은 이 땅에 사랑과 자유가 가득하기를 염원하는 축제의 장입니다.

1만 여명의 부산 시민들과 부산의 자매 도시인 북한의 흥남, 미국 하야리아, 일본 후쿠오카, 중국 상하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시에서 각각 100명씩의 시민들이 참가하였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UN군 참전용사의 후손들 100명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때, 출발선에서 타앙-! 권총소리가 울린다.

와아- 환호성이 터진다.

마라톤 주자들이 동천 산책로를 향해 힘차게 뛰어나간다.


   
부산시민공원 내에 조성된 부전천 인공 저수지. 향후 동천이 복원되어 북항까지 이어지는 뱃길이 되살아나면 선착장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이다. 백한기 선임기자 baekhg@kookje.co.kr

#2

'산아, 우린 엄마, 아빠 돌아올 때까지 공원 구경이나 할까?'

'잠깐만요, 할머니.'

 

산이 손목에 찬 웨어러블 팔찌를 조작한다.

'아, 된다. 할머니, 여기 봐요.'

 

산이 서영의 팔을 끌어당기며 의기양양하게 손바닥을 쑥 내민다.

웨어러블 팔찌에서 나온 빛이 산의 손바닥에 영상을 펼쳐낸다.

스크린이 된 산의 작은 손바닥에 동천(東川)이 보인다.

동천이 복원된 지도 오래 되었다.

맑은 물로 되살아난 동천은 아름다웠다.

동천에 하얀 배가 떠 있다.

반짝이며 튀어오르는 것은 숭어떼인가 보다.

'할머니, 여기 봐. 엄마, 아빠 여기 가고 있어요.'

'어디? 잘 안 보이는데?'

 

산이 손바닥을 톡톡 친다.

스크린이 확대된다.

스크린에 혼혈인인 대니의 얼굴이 나타난다.

'맞네. 우리 산이 아빠구나.'

 

등이 구부정한 노년의 서영은 손자 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서영은 산의 손을 잡고 어둔한 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부전천 선착장 근처 거울연못에는 팝콘 터지는 듯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하늘폭포와 터널분수의 물보라가 햇빛 속에 반짝인다.

부부송은 은빛 비늘 물결 속에서 팔 벌려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아이들이 터널분수로 뛰어들어 즐겁게 놀고 있다.

산도 환호성을 지르며 분수터널로 뛰어 들어간다.



#3

산의 옷이 흠뻑 젖었다.

서영은 손수건을 꺼내 산의 옷을 닦았다.

'우헤헤헤….'

 

산이 웃었다.

'할머니, 바보!'

산이 발을 탕탕 굴리며 몸을 털자, 옷에서 물이 떨어져 나와 물보라로 흩어졌다.

마치 강아지가 몸을 털며 털을 말리듯이.

산의 옷은 금세 보송보송한 옷으로 변했다.

'어휴, 신기하기도 하지, 어떻게 입은 채로 옷이 다 마를까?'

'할머니도 아빠한테 이런 옷 사달라구 해요'

'그럴까? 비쌀텐데….'

'모자라면 제 돼지저금통 잡아 드릴게요'

'그래, 그래….'

 

어디서 이런 천사같은 아이가 내게 왔을까.

서영은 산만 보면 입이 저절로 귀에 걸릴 만큼 좋다.

서영은 거울연못가에 있는 [방문자센터]로 간다.

방문자센터에는 '펀펀햇귀'가 있다.

'햇귀'(아침에 해가 처음 솟을 때의 빛을 뜻하는 순우리말)

부산시민공원의 여러 장소들 중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해답을 주는 재미난 공간이다.

해를 닮은 테이블과 햇귀 캐릭터 인형이 방문객을 반긴다.

산이 햇귀 테이블에 손바닥을 올린다.

음악과 함께 산의 바이오 리듬이 테이블 위 허공에 그려진다.

'띠릭띠릭, 오늘은 역사관에서 공부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띠릭띠릭.'

 

햇귀 캐릭터 인형이 진단 결과를 알려 준다.

'할머니, 역사관은 어디 있어요?'

'글쎄, 어디로 가지?'

 

서영의 말이 떨어지자, 머리에 초록 안테나를 단 시민공원의 안내 로봇, 부깨비(부산도깨비)가

 '삐릿삐릿' 소리를 내면서 다가온다.

부산시민공원의 명물은 부깨비스마트보드이다.

부깨비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폰이나 안경, 시계, 팔찌 등에 부착된 생체센서를 자동 인지한다.

어떤 사람이라도 스스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기다렸다는 듯 부깨비가 나타난다.

서영 앞에 나타난 부깨비는 2인용 스마트보드를 들고 있다.

스마트보드는 넓은 공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2050년식 이동기구이다.

타고 있는 사람에게 맞춰 속도와 방향이 조절되며, 땅 위를 낮게 날아다닌다.

부깨비가 2인용 스마트보드를 서영과 산의 앞에 내민다.



#4

[역사관]은 시대에 따라 마권판매소, 장교클럽으로 사용된 장소로

부산시민공원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역사관에는 부산시민공원의 역사와 관련된 기록, 그 동안 만들어진 영화, 소설들이 웹상에 보관되어 있었다.

관람객들은 폰이나 시계, 혹은 사물인터넷안경을 통해 웹상의 관심자료를 읽거나 다운로드하였다.

'게이트3(3문)'.

 

서영은 역사관 안의 한 전시실 옆 벽면에 부착되어 있는 표지판을 손으로 만지며 읽어 본다.

참 오랜만에 입에 올려보는 말이다.

옛 기억은 그리움을 불러 일으킨다.

서영은 산의 손을 잡고 역사관 안 게이트3 전시관에 들어섰다.

'어, 할머니, 여기 이 사진 좀 봐요.'

 

사진을 구경하던 산이 흑백 사진 한 장을 가리킨다.

사진 속 주인공은 뜻밖에도 서영의 어머니였다.

개다리소반이 놓여진 툇마루는 하야리아 부대 3문 밖에 있었던 서영의 낯익은 집이다.

사진 속 어머니는 젊어 보였다.

'아, 이런 사진이 있었어?'

 

서영은 예기치 못한 어머니와의 만남에 소름이 돋는다.

'이 사진 할머니야?'

 

사진을 보고 놀라는 서영을 보면서 산이 묻는다.

'왜? 닮았어?'

'응, 할머니 아니에요?'

'응, 아냐. 산아. 할머니가 아니고, 여기 있는 할머니의 엄마란다.'

서영의 메마른 눈꺼풀이 문득 뜨거워진다.

'으응? 그런가?'

 

'산'의 눈동자에 고민이 가득하다.

어렵다는 눈빛이다. '

할머니, 나 배고파! 저것 먹고 싶어요.'

 

산이 사진 속 개다리소반을 가리킨다.

'응? 뭐지?'

 

서영은 집중한다.

개다리소반 위에 놓여 있는 것은 빵과 햄벅스테이크였다.

'응, 그래. 할머니가 어릴 때 많이 먹던 거구나.'

 

흑백 사진 속의 스테이크! 뭔가 그림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땐 그랬다.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 하야리아 부대 주변엔 많았다.

어디 음식뿐이었으랴.

서영은 부깨비를 부른다.

'사진속에 있는 음식! 만들어 줄 수 있어요?'

부깨비는 '삐릿삐릿' 고개를 끄덕인다.

부깨비가 사진 앞으로 간다.

부깨비의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된다.

사진 속 음식이 공중에서 점점 입체의 음식 이미지로 스캔된다.

 



#5

[파고라]엔 으름덩굴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으름꽃 향기가 파고라 아래 놓인 3D 음식 프린터기에서 나오는 음식 냄새에 파묻힌다.

가스불도, 거창한 식재료도 없지만 3D 프린터기에서는 끊임없이 음식들이 프린터되고 있었다.

시민들은 파고라 주위의 풀밭이나 벤치에 앉아 자유롭게 식사를 한다.

서영도 산을 데리고 역사관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딩동.'

 

3D 프린터기에서 음식 완료를 알리는 챠임벨이 울렸다.

부깨비가 3D 프린터기로 뽑아낸 실제 빵과 기름이 자글자글 끓는 햄벅스테이크를 내밀었다.

'와아~ 맛있겠다!'

'우리 강아지, 천천히 먹어야지, 급하게 먹다간 배, 아야 해요.'

 

아기를 안은 부부, 청춘 남녀들, 노부부들. 동아리 모임, 유치원생들….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햇살과 바람, 땅이 보내는 훈향 속에서 첨단과학이 가져다 준 행복한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친 후, 서영은 산을 데리고 잔디광장으로 갔다.

마라톤 주자들이 동천, 북항 반환점을 통과하고 전포천을 거쳐 잔디광장으로 들어올 것이었다.

배불리 먹은 산은 서영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서영은 부깨비가 가져다 준 얇은 모포로 산을 감싼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여린 콧구멍에 찬기운 들어가실라. 서영은 산의 엉덩이를 토닥인다.

어릴 적 어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를 가만가만 불러 본다.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우리 아기 잘도 잔다./

마루 밑에 삽살개야 /멍멍멍멍 짖지 말고/ 앞마당에 꼬꼬닭아/

꼬꼬닥닥 우지 마라/ 담벼락에 참새들아/ 짹짹짹짹 우지 말고/

지나가는 바람님아/ 발뒤꿈치 들고 가렴.'



#6

어디선가 풍물패 소리가 들린다.

서영은 소리가 나는 [문화예술촌]을 바라본다.

문화예술촌은 2035년,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 북한의 문화, 예술, 음식 등을 활발하게 체험,

교류하는 공간으로 그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서영은 풍물패 소리 속에서 정월 보름날, 풍물을 치며 마을을 돌던 3문밖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 속에 있던 어머니의 모습도! 서영은 자신의 검버섯이 핀 쭈글쭈글한 손등을 본다.

저승꽃. 잠든 산의 작고 포동포동한, 하얀 손도 쓰다듬어 본다. 세월 참 금방이다.

칠성판을 짊어질 때가 되어서 그런가, 역사관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보아서 그런가.

어머니가 그립다.

어머니의 한평생은 고단했다.

명절이 되어 일가친척들로 3문밖 골목이 북적대면 갈사람 올사람 없는 어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6·25 전쟁 피란길에 밀리는 인파 속에서 엄마의 잡은 손을 놓쳐 버렸다고 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너무 어려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던 어머니는 죽는 날까지 가족을 찾지 못했다.

죽는 날에도 어머니는 혼자였다.

남편없이 오직 혈점 하나였던 딸, 서영이 하야리아 부대의 브라운 일병과 미국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렀다.

서영은 돌아왔다.

서영은 이제 대니와 함께 부산에 산다.

대니는 한국여자와 결혼해 산을 낳았다.

산은 부산의 '산(山)'의 기상을 딴 이름이다.

산은 '부산 사나이'로 살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또 '순간'인 것도 없다.

돌아오길 참 잘 했다.

이제 안심이 된다.



#7

잔디광장에 삑삑, 불규칙한 단선적 음이 들려온다.

곧 열릴 음악회를 위해 대규모 국악단원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악기를 조율하고 있다.

잔디광장에 자리를 잡은 시민들은 중앙무대가 잘 보이도록 자리를 고쳐 앉는다.

부깨비는 속속 모여드는 시민들에게 합창 악보를 나누어 준다.

'할머니, 엄마 언제 와요?'

 

산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저기 봐. 아빠 보여?'

 

서영의 손 끝 이어진 곳에 대니부부가 보였다.

1만 여명의 마라토너들이 대회의 도착점인 잔디광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사랑과 자유가 가득하기를 염원하는 축제였다.

일등도 없고 꼴찌도 없는 대회였다.

모두가 승리자다.

'아빠다-!'

 

산이 소리를 지른다.

'아빠-!'

'산아-!'

 

대니가 산을 향해 뛰어 오고 있다.

산이 달려 나간다.

오케스트라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이 푸른 하늘로 힘찬 날개를 펼친다.

산의 몸이 대니의 팔에서 하늘 높이 치켜올려진다.

웅장하고 풍성한 선율이다.

바이올린의 서정적인 선율이 앞서며 역사의 땅, 부산시민공원의 옛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두둥두둥! 북소리가 일제시대 경마장의 말이 달리는 풍경을 연출한다.

해금, 생황, 첼로가 먼 타국의 포로수용소 감시원으로 떠났다가 전범으로 사형당해야 했던

이 땅의 절규를 노래한다.

지휘봉의 날개짓은 한국전쟁, 미군의 하야리아 부대 시절,

이 땅을 찾기 위한 시민들의 생생한 육성을 하늘가에 물감처럼 풀어낸다.

   

합창이 시작된다.

자유를 사랑하는 1만 여명의 마라토너, 잔디 광장에 모인 3만 여명의 시민,

인근 고층 아파트의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사람들까지, 모두의 입이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 사랑과 자유의 합창이다.

웃는 얼굴, 노래하는 서영의 얼굴이

풀밭에서 이제 막 수줍게 고개를 내민 민들레와 닮아 있었다.

김민수 시나리오 작가· 이야기 세상 '플랫폼' 대표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시설공단

-부산시민공원 스토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