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

[연산동 고분군 베일을 벗기다] 5.'축조기술'을 통해 본 사적 지정 필요성

금산금산 2014. 8. 9. 10:30

[연산동 고분군 베일을 벗기다] 5.

 

'축조기술'을 통해 본 사적 지정 필요성

 

 

설계부터 시공까지 철저하게 계획된 토목 기술의 보고

 

 

정달식 기자

 

 

 

 

▲ 벽석과 뚜껑돌의 밀봉토 세부 모습. 뚜껑돌과 뚜껑돌 사이의 빈 공간과 뚜껑돌의 가장자리에는 크고 작은 돌을 놓아 1차로 메운 후 회백색의 점토를 이용해 세밀하게 발랐다.

 

[연산동 고분군]을 두고 흔히 '고대 토목 기술의 보고(寶庫)'라고 한다.

비록 유물은 도굴되었지만, 큰 봉분은 1천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대로 있어

그동안의 발굴 조사를 통해 무덤 축조 기술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박물관 홍보식 문화재조사팀장"삼국시대 부산의 문화를 알려 주는 대표적 유적인 연산동 고분군의 경우 무덤 규모도 크고, 유물도 많이 나오고, 또한 역사성까지 갖추고 있어서 국가 사적지로 지정될 충분한 이유가

되는데다 동시대 다른 유적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무덤 축조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사적지 지정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즉, [국가 사적지] 지정의 주요 요건 중 하나가 '유적의 희소성'이라고 볼 때,

[연산동 고분군]의 무덤 축조 기술은 바로 [유적의 희소성]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시대 다른 고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무덤 축조 기술의 [희소성]은 어떤 게 있을까?




■ 석곽 축조기술

수혈식 석곽묘(혹은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형태를 보여 주는 연산동 고분군은

우선 석곽 축조 기술부터 동시대 다른 유적들과 차별화 된다.

이 중 석곽 내부를 점토로 미장한 게 두드러진다.

벽면을 돌로 쌓은 후 짚과 목탄을 섞은 회백색의 고운 흙을 발랐다.

특히, [M3호분] 부곽에서 이런 점토 미장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시골 토담장의 원초적 모습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미장된 부분에 천을 발랐다는 점이다.

천을 바른 이유는 미장만 하면 내부 흙벽이 쉽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연산동 고분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석[곽 마감 기술의 정교함]을 보여 준다.

 


연약지반에 마사토 채워 침하 방지 
축성기술인 부엽공법 무덤에 적용


 

뚜껑돌 이동을 위해 목재를 놓은 흔적. 부산박물관 제공

 

뚜껑돌 이동을 위해 목재를 사용한 것도 특이하다.

석곽 윗부분에 목재를 길이 방향으로 부곽에는 2개, 주곽에는 1개를 놓았다.

점토가 마르기 전에 목재를 놓아 고정시켰는데, 이는 무게가 2~3t에 달하는 뚜껑돌이 제자리를 잡기 위해

조금씩 이동할 때 마찰력을 줄여 석곽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고 뚜껑돌을 좀 더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술로 추정된다. 



홍 팀장은 "뚜껑돌을 놓기 전에 목재를 깔지 않으면 돌(뚜껑돌)과 돌(벽면돌) 사이의 마찰로 애써 만든 석곽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또한 연산동 고분군에서 처음 확인된 것이다.

다른 고분군에서도 이런 방식을 사용했을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확인을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뚜껑돌 하나는 웬만한 지석묘 상석 하나와 맞먹을 정도로 크고 무겁다.


뚜껑돌과 뚜껑돌 사이의 빈 공간뚜껑돌의 가장자리에는 크고 작은 돌을 놓아 1차로 메운 후

회백색의 점토를 이용해 세밀하게 바른 점도 다른 유적과 차이점이다.

점토를 바른 후 그 위엔 갈대로 추정되는 풀잎, 나무 잔가지 등을 깐 흔적이 발견됐다.

얇은 점토를 바른 후 갈대를 깔고(부엽공법) 다시 점토를 바르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 것이다.

풀잎은 점토와 점토 사이의 밀착력을 높여 빗물 등이 석곽 내부로 스며드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이런 부엽공법은 흔히 제방이나 토성을 쌓을 때 이용되는데, 연산동 고분군은 무덤에 적용된 첫 사례이다.



■ 봉분 축조기술



연산동 고총고분처럼 높고 거대한 봉분을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봉분을 쌓는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봉분을 쌓을 때 마구잡이로 쌓으면 흙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연산동 고분군은 '흙둑'을 이용해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았다.

흙둑은 경사진 지형에 큰 규모의 봉분을 견고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쌓기 위한 토목 기술로, 봉분을 쌓을 때

삼각형의 흙둑을 먼저 만든 후 그 위에서 안쪽으로 흙을 넣어 봉분을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이렇게 쌓으면 흙을 붓기도 수월하고 봉분이 훨씬 견고하게 된다.


2~3t 뚜껑돌 이동 위해 목재 사용 
3등분한 뒤 계획적으로 봉분 쌓아


삼각형의 흙둑을 만든 후 봉분을 쌓았음을 보여 주는 M6호분. 부산박물관 제공

 

 

흙둑은 고분이 위치한 지형과 규모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나타낸다.

M13호분의 경우 동쪽과 남쪽 양쪽에 삼각형 형태의 흙둑을 만들었다.

M6호분 무덤은 남쪽의 일부분만 비워 둔 채 삼각형을 둥글게 쌓아 놓고 흙을 부었다.

이런 것들이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도 확인이 되었지만, 연산동 고분군에서는 아주 명확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무덤의 한쪽이 암반이고 다른 쪽이 점토로 되어 있을 때 점토 대신 압력에 견디는 마사토(그림 속 노란색)를 채워 넣었다. 부산박물관 제공

 

연산동 고분군에는 연약지반을 강화한 기술도 적용됐다.

연산동 고분군처럼 흙으로 쌓아 올린 크고 높은 봉분의 하중은 수십 t에 달한다.

따라서 뚜껑돌이 봉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

특히 M3호분처럼 한쪽은 암반이지만 다른 쪽은 점토로 되어 있어 만약 봉분 압력이 발생하면

연약지반 쪽으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이에 연약지반을 제거하고 그 부분에 압력에 견디는 마사토를 채워 넣었다.

봉분 하부에 마사토를 깔아 봉분의 압력(위에 있는 흙의 압력)을 견딜 수 있게 한 것이다.

요즘, 도로를 만들 때 마사토를 깔아 침하되지 않게 하는 토목 기술과 비슷하다.

봉분의 하중을 분산한 기술도 엿볼 수 있다.

뚜껑돌을 덮고 점토로 밀봉한 다음 그 위에 50㎝ 두께로 두껍게 마사토를 깔고 옆으로 가면서

점점 얇게 마사토를 깔았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봉분 압력의 고저에 따라 마사토의 두께를 달리해 하중을 분산시켰다는 말이다. 

봉분을 만들 때 길이 방향으로 3등분해 성질이 서로 다른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었다. 부산박물관 제공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 때 일정 부분씩 구역을 나눠 봉토를 쌓는 방법도 특이한 점이다.

연산동 M3호분은 타원형의 봉분을 길이 방향으로 크게 3등분해 성질이 서로 다른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었음이 발견됐다.

이는 결국, 무덤을 만들기 위해 기획에서부터 철저하게 설계되었다는 증거다.

3등분으로 나눠 봉분을 쌓다 보니 봉분 내부에 작업로도 필요했다.

이 작업로는 3등분한 구획의 좌우측에서 너비 1~1.5m 내외의 넓이를 가지며, 흑갈색의 점토로

메워져 있음이 발견됐다.

바로 봉분을 만드는 인부들의 작업길이었다.


봉분의 재료도 특이하다.

M3호분의 경우 봉분을 견고하게 쌓기 위해 봉분의 대부분을 점성이 강한 흙을 뭉쳐

다양한 크기의 점토 덩어리(점토괴)를 만들어 쌓아 올렸음도 확인됐다.

흔히 봉분을 만들 때, 흙을 지게 같은 데 담아 와 부었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홍 팀장은 "연산동 고분군을 통해 이처럼 고대의 다양한 토목, 건축 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연산동 고분군이야말로 우리나라 전통 토목기술의 원형을 구명할 수 있는 풍부한 미래 문화유산 보고임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봉분 축조 기술 희소성' 만으로도

 

사적 지정 마땅


 

정달식 기자

 

▲ 연산동 고분군의 M3호분 모습.

고분을 만드는 특별한 토목, 건축 기술도 [사적지 지정에 필요한 주요 요소]될 수 있을까?

부산박물관 홍보식 문화재조사팀장"삼국시대 무덤의 경우 무덤을 만든 토목, 건축 기술로 국가 사적지로 지정된 예는 현재까지는 없었다"

고 말했다.

종전에 국가 사적지로 지정된 예를 보면 대부분 무덤의 규모가 크거나, 유물이 많이 나왔을 경우에 한해

지정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산동 고분군처럼 토목이나 건축 기술로도 얼마든지 사적지로 지정될 수 있다는 게

문화재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연산동 고분군의 석곽이나 봉분 축조 기술은 무덤을 쌓는 데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시설에 축조 기술이 적용됐다는 것이 이미 확인됐고.

현대 토목, 건축기술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홍 팀장은 "유적들 가운데 토목이나 건축 기술이 작용해 사적지 지정을 받은 경우가 없었다는 것은 그 중요성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산동 고분군은 충분히 토목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된 만큼, 사적지 지정의 또 다른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연산동 고분군의 경우 무덤의 규모나 유물의 양적인 측면에서 이미 국가 사적지 지정의 요건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봉분 축조 기술의 희소성으로도 얼마든지 사적지로 지정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정달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