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

'1만년 전' [해운대 인]들의 흔적...

금산금산 2014. 8. 21. 20:09

'1만년 전' [해운대 인]들의 흔적...

 

 

부산사람들의 '역사' 언제부터인가?

 

 

 


[청사포]의 '구석기시대 사람'을 아십니까?

현대인들은 오랜 역사속의 조상들을 생각해 볼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의 생활이 바쁘고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자신의 고향이 부산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현대의 부산은 큰 도시로 국제화되어 있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이란

바로 해운대 청사포 등에서 살았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이라고 한다.

청사포는 해운대 달맞이고개를 넘어 송정으로 가는 바닷가에 위치하고

임씨 부인의 애틋한 전설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사랑하던 지아비가 고기잡이 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매일 소나무 옆에 나가 먼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렸다고 하여 망부송으로 이름지어진

소나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망부송의 전설보다 훨씬 전인 지금으로부터 1만년전의 청사포 사람들도

임씨 부부와 같은 사랑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부산 지역의 구석기 유적은 지난 90년에 조사된 청사포를 비롯,

92년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과정에서 발굴조사된 좌동중동 등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주먹도끼 찍개 긁개 뚜르개 원형석기 모루돌 망치돌 돌날 몸돌 박편 등과 같은 것이었으며

석기의 재질도 다양했다.

이같은 유물로 보아 부산에서는 늦어도 1만년 전에 사람이 살았었다고 볼 수 있다.

해운대라는 지형과 유물들로 보아 이들은 주로 바다에서 먹을 것을 얻고 살았고

사냥과 고기잡이를 하였으며 필요에 따라서 이들은 먼 거리로 이동하며 살았다고 여겨진다.

 

조사결과로 볼 때 좌동과 중동유적은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거주하면서 석기를 제작하고 필요한 도구를 만들었던 야외 유적이었다.

또한 여기에서 발견된 석기들은 사람들이 쓴 흔적이 있는 전형적인 "깬석기"(타제석기)였고

이것은 오래전부터 한반도의 구석기인으로 알려졌던 함북 웅기의 굴포리에서 나온 것과도 비슷하다.

한때 한반도에는 구석기시대에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5년 동관진유적으로 유명한 강안리(함북 온성군)유적이 발견되면서 구석기시대가 인정되었고

 다른 지역과 함께 부산에서도 구석기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다시 한번 한국사에서의 구석기시대가 확인된 셈이다.

사람들은 도구를 이용하면서 자신들의 역사를 크게 발전시켜 왔다.

도구를 이용하여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자신들을 지킬 뿐만 아니라

남의 양식도 빼앗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장 원시적인 깬석기를 이용하기 시작하던 약 2백만년 내지 2백40만년전부터

구석기시대라 이름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구석기시대는 약 7천년(B.C.5000년)전에 새로운 도구인 간석기(마제석기)의 신석기시대로 변하였고

이때부터 인류의 역사는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구석기와 신석기시대는 기록이 없는 시대로 기록을 갖는 "역사시대"와 구별하여 "선사시대"라 부른다.

즉 기록이 없던 선사의 구석기시대부터 부산에서도 사람들의 숨결과 사랑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구석기시대의 청사포인들을 비롯한 해운대사람들이 부산사람들의 직계 조상인가 하는 점은 확실치 않다.

구석기인들은 여러 차례의 기후 변화와 함께 다른데로 이주해 가고 신석기시대에 이주해온 다른 지역 사람들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 해석이다.

다만 북한에서는 구석기시대의 "본토"인들도 우리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시각으로 보자면 청사포에 거주했던 선사시대 인류도 부산 사람의 직계 조상인 셈이다.

구석기시대의 부산은 한때 대마도를 비롯해서 일본열도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6천5백만년 전에 시작된 신생대 이후 지구는 4차례의 빙하기(추운 기후)와 간빙기(따뜻한 기후)를 거쳤고

지금은 4번째의 간빙기에 해당한다.

빙하기란 지금보다 평균 섭씨 16도 이상이나 추웠으며

간빙기는 지금보다 평균 4~6도가 높아 바다 깊이가 1백m정도나 오르내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빙하기에는 일본열도와 한반도가 연결되어 동해는 호수와 같았고

간빙기의 더운 때에는 일본열도와 한반도의 상당지역이 바닷물로 덮여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여 주는 것이 바로 해운대지역의 구석기유물들이

일본 규슈지역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들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구석기시대의 이러한 기후 변화과정에서 인류는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이동하였으며

지금의 형세와 기후를 갖게 된 것은 구석기말 신석기 초기부터다.

같은 이유들로 인하여 우리가 청사포를 비롯한 해운대 주변에 살던 구석기인들이 과연 부산 사람들의

직계 조상이었는가 하는 점에 의문을 갖게 된다.

따라서 부산사람의 직계 조상은 이곳에 조개더미의 생활흔적을 남겼던

신석기인들로부터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들이 누구였고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사랑을 나눴는가 하는 것은 다른 장으로 넘겨야 할 것 같다.

/한규철.경성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