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어머니를 만난 '부사' 류심
아들 제삿날에 태어난 동래부사가 찾아와…
부산에는 현재 류심과 관련된 비가 둘 있다. 하나는 부산박물관 야외전시실에 있는 부사류공심청덕선정만고불망비(왼쪽), 또하나는 해운대구 반여1동 상리마을 입구에 위치한 동래부사 류심공의 선정불망비. |
- 장소: 동래구 복천동
- 죽은 네 살배기 아들 꿈에서
- "한양 재상집에서 태어났다"
- 어른돼 벼슬길 올라 부사 부임
- 제사상 앞서 우는 노파 목격
- 전생의 어머니임을 알게 돼
옛날 동래읍 서문통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아들에 의지하며 살던 홀어머니가 있었다.
이 아들은 인물이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네 살짜리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영리했다.
당시 동래부에는 새 부사가 부임할 때 행차(行次)가 아주 성대했다.
이 행차에는 동래 명기 중 가장 아름다운 팔선녀가 등장하고 대군의 위장병과 군졸, 갑옷을 입고
말을 탄 기병들이 부사를 호위했다.
부민들은 이날만은 대낮에도 모두 집을 비우고 거리에 나와 부사를 환영했다.
홀어머니와 그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사 행렬을 눈여겨보고 있던 등에 업힌 아들이 갑자기
"엄마,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고 우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엄마, 왜 말이 없어. 난 커서 어른이 되면 저렇게 될 테야"라며 힘주어 재차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어머니는 한숨을 내쉰 후
"얘야, 너는 어른이 되어도 저렇게 할 수 없단다.
우리 같은 상놈들에게 저런 벼슬은 꿈에도 할 수 없는 거야"라고 힘없이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그날부터 밥을 먹지 않고 말도 잘 하질 않더니, 며칠 뒤 이름 모를 병으로 그만 죽고 말았다. 어머니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밤과 낮을 이어 울음으로 세월을 보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죽은 아들을 만났다.
꿈속에서 아들은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저는 한양에서 재상을 지낸 류씨 가문에 태어나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상놈이란 소릴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벼슬도 할 수 있게 됐어요. 어머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세월이 흘러 노파의 눈물도 차츰 말랐다.
숨 가쁜 하루살이에 지친 그녀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으나 아들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해서, 아들의 제삿날은 거르지 않고 반드시 상을 차려놓고 서럽게 울었다.
재상가의 가문에 다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은 류심(1608~1667).
그는 해마다 생일이 되면 꼭 꿈속에서 전생의 집이 있던 동래를 찾아 제사 음식을 얻어먹고 돌아왔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면서 어느덧 어른이 되어 벼슬길에 오르게 된 류심은
마침 동래부사로 부임(재임 1649~1651)하게 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행차하는 황산도(밀양~동래) 길이건만 이상하게도 생일 꿈속에서 오가던 길과 흡사함을 느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류심은 한밤중에 제삿밥을 얻어 먹던 집을 찾기 위해
통인(通引·동헌의 부사에 딸린 잔심부름을 하던 사람)과 함께 나섰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그는 해마다 한 차례씩 꿈속에서 찾아갔던 집과 똑같은 집을 발견하고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가자 마당에서는 백발의 노파가 제사상을 차려놓고 울고 있었다.
부사는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고 노파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제사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거요?"
노파는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몸은 남편 없이 아들에 의지하며 살았사오나 그 어린 것이 단명하여 저승으로 갔사온데
오늘이 바로 그 입제일(入祭日)이옵니다."
아들이 죽은 날을 듣고 보니 이상하게도 그날이 류 부사의 생일과 같은 날이었다.
잠시 후 노파는 다시 말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은 뒤 꿈속에 나타나 한양의 류씨 가문에 태어났다고 하더군요."
류 부사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어머님…" 하고 불렀다.
이 노파가 바로 전생의 어머니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후 류심은 경상도 관찰사로 승진하게 되자 곡식, 제기와 함께 농토를 마련해 줌으로써
전생의 어머니에게 은혜의 보답으로 배려했다고 한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국사편찬위원회 부산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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