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부산의 전설 보따리] <47> 영도의 '아씨당'

금산금산 2015. 1. 24. 08:54

영도의 '아씨당'

 

 

 

최영의 '여인' 제사 모시니 군마가 튼실

 

 

 

영도 봉래산 서북쪽 기슭에 위치한 아씨당의 전경.

 

 

 

 

- 장소: 영도구 신선동
- 고려 말부터 제주 군마 양육지
- 언제부턴가 말이 병들어 죽어
- 선녀의 소행이라는 소문 돌아
- 수백년 지나 정발 장군 꿈서
- 사당 지어 제사 지내라 당부
- 그후 부산 최고 마을신앙으로

 

 



영도의 옛 이름인 절영도는 고려 말부터 군마 양육의 임시 보관지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당시 나라 땅 최고의 군마 양육지는 제주도였다.

제주에서 양육된 군마는 배에 실려 절영도에 내려진 후

이곳에서 일정 기간 동안 몸 상태를 제 궤도에 올린 뒤 전국으로 옮겨졌다.


제주에서 실려온 군마는 반드시 절영도 군마사육장의 남문으로 들어오도록 하고,

나갈 땐 서문으로 이동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인가부터 남문으로 들어온 건강한 군마가 서문으로 나갈 때쯤

거의가 병이 들어 죽거나 죽기 직전의 상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해서, 군마 책임자인 부산진첨사는 말 못할 고민에 잠겨 급기야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수심이 깊어갔다.


사정이 이쯤 되자 절영도에는

'선녀가 늙은 하인 두 사람을 데리고 섬에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은 있으나

나가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도 이 같은 군마의 병사(病死)가 끊이질 않자 섬에서는

 '혹 그 선녀와 하인들의 소행이 아닐까'하는 여론이 팽배해졌다.


그로부터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 정발 장군부산진첨사로 재직할 때였다.

어느 날 밤 장군의 꿈속에 한 선녀가 나타나 장탄식을 하며 이렇게 읍소했다.

"이 몸은 칠원성군(七元星君)으로 옥황상제로부터 벌을 받아 천상에 있지 못하고 축출 당해

탐라국 여왕이 되었사옵니다.

이후 저는 탱자나무를 심어 인력으로는 도저히 함락시키지 못할 백년대계의 견고한 성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고려국 최영 장군이 탐라국을 자기들의 군마 양육지로 조성하기 위해 성 주변에다 갈대를 심어

수년 동안 키운 후 불을 질러 성 안으로 침입했습니다.

역부족이라 여긴 저는 굴욕적인 화친에 응하는 동시에 최영 장군의 연인이 되었습니다.

성은 이후 군마의 양육지로 변해버렸지요. 큰일을 하시는 최영 장군은 저의 일편단심을 이해하지 못해

이 몸은 여러 해 동안 독수공방 신세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군이 신돈의 음해로 좌천, 유배되어 절영도에서 귀양살이를 한다는 풍문을 듣고

천신만고 끝에 절영도를 찾았으나 장군은 이곳에 유배된 적이 없다고 주민들이 말을 하더군요.

어느 누구한테도 의지할 데 없던 이 몸은 적막한 이곳에서 한 많은 고독한 영신(靈神)이 되었습니다.

원컨대 사당을 지어 나를 모시면 절영도의 군마도 무병 충실할 것이며, 장차 이 지역에 살게 될 주민 중

나를 모시는 자는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이옵니다."

꿈이라 하지만 내용이 너무 구구절절해 정발 장군은 간밤에 본 선녀의 꿈 이야기를 조정에 상소했다.

조정에선 즉시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하명하여 아씨당(阿氏堂)이라는 제당을 짓고 1년에 두 번씩

제사를 지내라 명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고부터는 절영도의 군마가 무병 충실해졌다고 한다.

이는 절영도 군마 목장지와 아씨당에 얽힌 전설이다.

아씨당의 내력은 '시약산산제당약사'에 잘 기록돼 있다.

이에 따르면 최제우의 여동생이 동학란 때 지금은 부산기상레이더관측소가 위치한 시약산(부산 서구)으로

피란와 이곳에 당집을 짓고 살았다.

이후 최제우의 조카뻘 되는 최 씨와 그 부인인 진양 하씨가 이곳에 와서 최제우의 여동생 최씨녀를 시봉하다,

 하 씨는 19세기 말엽 영도 봉래산 중턱으로 옮겨 제당을 짓고 살다가 죽었다.

이에 주민들이 그 당을 '하씨신당'이라 칭하였다.

 

 

이후 하씨신당(할매당)은 1941년에 영도공립보통학교(지금의 영도초등학교)를 세우면서

산제당을 영도구 신선동 계곡(신선동 2가 24번지)으로 옮겼고, 그 옆에 고씨신당(할배당)을 세웠다.

이후 고씨신당 뒤 바위 가운데 천왕장군신상(산신당)을 세웠다고 한다.

아씨당은 지금까지 영도 주민들의 태평성대와 만사형통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성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마도 부산에선 최고의 마을 신앙으로 손꼽힐 듯싶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국사편찬위원회 부산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