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사람] 통영 '노대도'

금산금산 2015. 2. 18. 14:08

통영 '노대도'

 

 

 

 

두 섬 사이 천혜의 조류덕에 국내 최대 가두리양식장 형성

 

 

 

오른쪽이 상노대도, 왼쪽이 하노대도. 두 섬의 해협 사이에 가두리양식장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 70년대 해상 파시형성 황금어장
- 학생 200명 노대분교 지금은 폐교
- 산등마을 물 맑아 다이버들 많아
- 다양한 어종, 손맛즐기는 낚시꾼 유혹


경남 통영항에서 직항로 뱃길로 1시간여 거리인 노대도는 국내에서 가두리양식업이 가장 활발한 섬이다.

욕지도 부속섬 가운데 하나로, 상노대도와 하노대도 등 2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섬 사이 해협으로 흐르는 조류 소통이 워낙 좋다보니

자연스럽게 가두리양식업에 눈을 뜨게 됐다.

노대도라 불리게 된 섬의 유래는 주민들도 잘 모른다.

아주 오래전부터 노대도라 불려 왔을 뿐이다.

섬의 아랫쪽으로는 천혜의 절경을 간직한 욕지도가 자리잡고 있고,

위쪽으로는 남해안 섬 가운데 최고봉(465m·천왕봉)을 자랑하는 두미도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 국내 가두리양식 1번지

통영항을 떠난 여객선이 노대도 앞바다에 이르러자

바다 위에는 온통 가두리양식장으로 빼곡하다.

상노대도에는 탄항·상리·산등 등 3개의 마을이 촌락을 형성하고 있다.

하노대도에는 유일한 촌락인 하리마을이 자리한다.

두 섬에는 4개 마을에 2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배가 상노대도의 첫번째 마을인 탄항마을에 도착하자

넓은 물양장이 눈에 먼저 들어 온다.

물양장에는 컨테이너 박스가 즐비하다.

일부 콘테이너는 가두리양식장에서 일하는 동남아 등

 외국인 종사자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탄항마을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15분을 걸으면 섬에서 가장 큰 촌락인 상리마을에 다다른다.

두 마을을 이어주는 길을 따라 바닷가에는 가두리양식장이 길게 줄지어 늘어서 있다.

섬에는 차량이 4대 있지만 잘 운행하지 않아 길은 한가롭고 여유롭다.


섬 전체 주민 중 절반인 100여 명이 상리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집집마다 커다란 물통을 보유, 한눈에도 물이 귀한 섬이란 것을 직감할 수 있다.

마을 언덕배기에는 현대식 건물인 노대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섬 규모에 비해 교회가 크다는 느낌이다.

주민 대부분이 교회를 다닌다고 했다.

도로는 상리마을에서 끊겼다.

산등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오솔길을 타고 40여 분을 걸어야 한다.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리기에 적당한 길이다.

숲이 다소 우거진 상노대도의 깃대봉(182m)에 오르면 노대도 주변의 바다와 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술을 팔지 않는 한 때의 황금어장

상·하노대도 사이의 해협은 예전부터 조류 소통이 좋아 천혜의 황금어장으로 불리웠다.

한때 인근 욕지항과 함께 남해안 어업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장어통발, 문어단지 등이 성행하면서 해상에 파시가 형성됐다.

돈이 넘쳐 났다.

하지만 선원들끼리 술을 마시고 취하면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참다 못한 섬 주민들이 마을 기금으로 팔다 남은 술을 구매해 바다에 버렸다.

이후 지금까지 이 섬에서는 술을 팔지 않고 있다.

어선어업이 활발할 때는 학생 수만 200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다 옛말이 돼버렸다.

전교생이 1명이던 노대분교는 2년 전 이 학생마저 졸업하자 더 이상 입학생이 없어 폐교됐다.


섬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입증하는 패총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만큼 살기 좋았던 섬이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선사유적으로 꼽히고 있다.

지금도 일부 주민들은 어선어업에 종사하면서 화려했던 과거로 되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섬에는 돛을 달고 조업하는 마지막 돛단배가 존재했으나,

2년 전 조업하던 어민이 세상을 떠 나면서 사라져 버려 아쉬움을 더한다.

지금은 대부분 주민들이 가두리양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섬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힘들어지면서 주름이 깊어가고 있다.

어가는 계속 하락하고 있는데 비해 사료비와 인건비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 낚시꾼과 다이버의 천국

 

두 섬 해협을 마주 보는 상노대도의 탄항·상리마을과 하노대도의 하리마을 주민들은

가두리양식을 주업으로 삼고 있다.

반면 상노대도의 뒤편에 위치한 산등마을은 다이버 동호인들이 자주 찾고 있다.

두 섬 사이 해협은 가두리양식장이 빼곡한 반면 산등마을 해역은 양식장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어 대조적이다.

섬 뒤편 해역은 물이 맑고 깨끗한 데다 앞바다에 거칠리도와 두미도 등이 한눈에 들어 와 비경마저 아름답다.


천혜의 어장인 만큼 섬 주변의 갯바위는 '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바다낚시 포인트다.

주로 감성돔, 볼락 등의 어종이 즐비하게 올라 온다. 

마을 어촌계에서는 좌대 낚시까지 허가를 받아 운영 중이다.

전형적인 어촌마을의 변화하는 풍경이다.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고기를 키우지 않는 빈 가두리양식장에서

좌대 낚시를 즐기려는 낚시꾼들이 섬을 즐겨 찾고 있다.

노대도는 통영항 여객선터미널에서 바다랑호가 오전 6시30분, 오후 2시 등 하루 2회 운항한다.

오전 배는 두미도를 두른 후 노대도의 산등·상리·하리·탄항마을을 순환한다.

오후 배는 반대 코스로 탄항·하리·상리·산등마을을 거쳐 두미도로 향한다.

 따라서 육지에서 바라볼 때 첫 마을인 탄항마을까지 오전 배는 2시간, 오후 배는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요일에 따라 욕지도 본섬을 두르는 운항로가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선사 문의는 (055)644-8092.


# "두섬 연결다리 건설 절실, 차도선·파도막이도 필요"

■ 상노대도 탄항마을 차승용 이장

상노대도 탄항마을의 차승용(54) 이장은

6살 때 부친을 따라 이곳에 정착했다.

 젊은 시절 섬 생활이 지겨워 서울에서 3년 정도 생활하기도 했지만

이내 섬으로 되돌아 왔다.

서울 생활이 섬 보다 훨씬 진절머리 났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이곳을 떠난 적 없다.

어촌계장에 이어 이장을 맡으면서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고 있지만

섬 생활이 마음 편하다고 한다.

차 씨는 노대초등학교(욕지도 원량초교 노대분교) 28회 졸업생이다.

그가 다닐때만 해도 학생 수가 200명을 넘었다.

40여년 전의 풍요로웠던 섬의 과거를 회상하는 차 씨의 얼굴에는 착찹함이 묻어났다.

그는 가두리양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로 참돔과 우럭을 키운다.

하지만 어가는 계속 떨어지는 반면 인건비와 사료비는 상승하면서 적자 경영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가두리양식업의 회생을 위해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씨는 "양식량은 늘어나고 있지만 소비는 오히려 둔화되면서 어가는 끝없이 곤두박칠치고 있다"

"출하량과 입식량을 조절하는 행정적 체계가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또 섬 주민들은 상노대도와 하노대도를 연결하는 연도교 건설을 호소하고 있다.

두 섬 사이의 가까운 거리는 70여 m에 불과한데 배로 이동하기도 불편하거니와

새로운 관광자원 조성을 위해서라도 건설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4개 마을 중 파도를 바로 접하는 탄항마을 주민들은 방파제에 파도막이 추가 설치와

시급한 차도선 도입을 바랐다.

차 씨는 "섬에서 사는 주민들의 삶은 과거에 비해 나아지지 않고 있다 "

"젊은 사람들이 섬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행정적 제도 마련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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