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사와 선서바위
최영장군 넋 기린 곳서 25의용 결사항전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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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수호노인정 옆에 최영 장군 영신을 모신 사당인 무민사 전경. |
- 장소: 수영구 수영동
- 좌수영성 침입 왜군 살육 자행
- 임란때 목숨 바쳐 투쟁 약속
- 최영 장군 사당 무민사 바위
- 혈맹 맺어 '선서바위'라 명명
고려 말 삼남지방에 왜구의 침입이 잦아 약탈 행위가 극에 달했다.
이때 왜구 섬멸에 큰 공을 세운 이가 바로 최영(1316~1388년·시호 무민(武愍)) 장군이다.
최영 장군은 1359년(공민왕 8년) 양광전라도왜구체복사(楊廣全羅道倭寇體覆使)가 되어
왜선 400여 척을 격파했다.
1376년(우왕 2년)에는 노구를 이끌고 홍산(지금의 부여군)에서, 이듬해엔 도통사가 되어 평주에서,
다음 해에는 해풍에서 왜구를 무찔러 서·남해안에 침범한 왜구를 사정없이 격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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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의병 결사대인 25의용이 피의 맹세를 한 선서바위의 모습. |
부산에는 그의 진충보국(盡忠報國) 정신을 귀감으로 삼기 위해 세운
무민사(武愍祠)나 당제의 주신으로 모시는 곳이 몇 곳 있다.
수영동과 감만동(무민사), 범일동 자성대(사당),
기장읍 석산마을(당산) 등이 그곳이다.
제의 날짜는 각기 다르지만 한결같이 왜구의 침탈을 경계하는 마음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의를 엄숙하게 치르고 있다.
참고로 남해 금산에도 무민사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최영 장군을 살해할 때 목을 쳤더니 그 목이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는데 그 종착지가 지금의 자리여서 그곳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받들고 있다고 한다.
무민사는 삼남지방을 노략질하던 왜구를 섬멸한 최영 장군에 대한 당시
주민들의 감사와 존경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징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좌수영성에 침입한 왜군은 약탈과 살육을 감행했다.
왜군에 맞서 좌수영 수군과 성민 중 25명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기를 결의했다.
향토 의병결사대인 25의용이 고장을 지키기를 맹세하고 적지가 되어 버린 좌수영에서 왜적과 싸울 작전 계획을 세운 곳이 무민사(수영구 수영동 507-9) 뒷벽이고, 이들이 뒷벽 인근 바위에서 죽음을 선서했기 때문에
이 바위는 선서바위로 불린다.
무민사 뒤쪽에 있는 바위(높이 5m·가로6m·세로3m) 앞에 모인 25의용은
"싸우면 이겨서 살 것이요, 싸우지 않으면 망하리로다. 나라의 존망이 경각에 있거늘
어찌 삶을 위해 산야로 달아날 것인가. 단 한 번의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리라"라는
피의 맹세를 선서바위에 한 후 바다와 육지에서 왜적을 상대로 유격전을 펼쳤다.
사람들은 선서바위에 기대며 살고 있는 느티나무를 가림나무로 불렀다.
이 이름은 25의용이 바위에서 맹세하고 왜적과 싸울 작전을 세우는 모임 자리를 왜적에게 들키지 않게
가려주어서 이렇게 명명됐다 전해온다.
지금은 느티나무가 없고 바위 위에 대나무가 무성하다.
일제강점기 때 가림나무의 벗이 되게 주민들이 소나무를 몇 차례 심어 보았으나 번번이 말라 죽었다고 한다.
수영사적공원에 있는 25의용사(義勇祠·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12호·수영구 수영동 366)는
7년 동안 유격전으로 대항한 25의용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들 25명의 사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609년(광해군 1년) 동래부사 이안눌이 주민의 청원에 따라
25명의 사적을 수집, 정방록에 싣고 그 집 대문에 '의용(義勇)'이라 붙인 데서 비롯됐다.
이후 순조 때 동래부사 오한원(재임 1806~1809년)은 후손들에게 부역 의무를 면제시켜 주고 글을 지어
포장(褒奬)했다.
1853년(철종 4년)에는 경상좌수사 장인식이 수영사적공원에 비를 세워 의용단이라 이름하고
재실을 지어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향을 봉행했다.
임진왜란 당시 좌수영 선인들은 목숨을 바쳐 내 고장을 지켰다.
왜구를 무찌른 최영 장군의 사당인 무민사를 향해 죽음을 맹세한 25의용을 가려준 가림나무와
25의용의 충절을 입증하고 있는 선서바위는 그들의 유산으로 살아 숨쉬며 그날을 대변하고 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국사편찬위원회 부산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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