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부산의 전설 보따리] '의적(義賊) 정봉서'와 그의 아내 이야기

금산금산 2015. 3. 14. 13:23

'의적(義賊) 정봉서'와 그의 아내 이야기

 

 

 

 

효심 깊고 의리 있었던 부산판 임꺽정

 

 

 

 

동래부 동헌 전경

 

 

 

 

- 장소: 동래구 수안동
- 어머니 병 고치려 개 훔치다
- 산속으로 도망쳐 도적 두령돼
- 악질 부잣집만 골라서 털어
- 노모 걱정에 결국 자수하지만
- 매맞고 옥에 갇혀 굶어죽어
- 분개한 아내 망미루 부숴버려


임진왜란(1592~1598)이 끝나자 7년 전쟁을 치른 백성들은 굶주림에 지쳐 이리저리 밥을 얻어먹고 살았다.

 당시 기장현은 주민 대부분이 떠나 거의 텅 비다시피 돼 고을이 그만 동래부에 합속됐다.


이 시절 동래에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정봉서란 효심 가득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힘센 사나이였지만 어느 날 어머니가 병석에 눕게 되자

백방으로 뛰어다녀 개 천 마리로 보신탕을 만들어 드시게 하면 나을 수 있다는 처방을 받았다.


 

1930년대 망미루의 모습
결국 정봉서는 산 너머 마을의 부잣집에서

 몰래 개 몇 마리를 훔쳐 어머니께 끓어드렸다.

하지만 얼마 후 이 사실이 발각돼 정봉서는 노모와 부인을 두고

그만 쫓기는 신세가 돼 산속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산속에는 좀도둑질을 일삼으며 살아가던

수십 명의 도적 떼들이 숨어 있었다.

정봉서는 이들과 함께 살게 됐고 이후 자연스럽게

그들의 두령(頭領)이 되었다.

그들의 아지트는 지금으로 치자면 기장현 쌍다리고개(안평리 쌍다리(쌍교) 마을에서

안평저수지를 지나 기장읍 서부리로 넘어가는 고개) 깊은 산 속이었다.


정봉서는 평소 부하들에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도적질하고 있지만 인색하고 악질 같은 부잣집만 골라서 털고,

어려운 사람과 굶어 죽는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을 몰래 가져다주는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하루는 정봉서가 어느 집 앞을 지나가는데 아기 낳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웃음소리는커녕 인기척이 없어 그 집 부엌을 들여다보니 쌀 한 톨 없었다.

산모를 간호해줄 길이 없는 남편의 한숨 소리만 들렸을 뿐이었다.


 

망미루의 현재 모습
정봉서는 쌀과 미역, 쇠고기를 사서 몰래 그 집 부엌에 두고서는

 "바깥주인 계시오"라고 소리쳤다.

그 소리에 놀란 주인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내밀자

정봉서는 "부엌에 들어가 보시오"라고 말하고는 사라져버렸다.


어느 날 동래부에서 봉물(封物·시골에서 서울 관원에게 선물하던 물건)

꾸러미를 싣고 가는 것을 부하 도둑들이 보고 그 봉물 꾸러미와 함께

관원들을 끌고 왔다.


그런데 정봉서는 잡혀 온 관원들을 풀어주고 상좌에 앉게 했다.

그리고 다시 큰절을 올리면서 죄를 뉘우치고 자수하겠으니

제발 병든 노모에게 효도하고 부인을 볼 수 있게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동래부 관원들은 자수한 정봉서를 끌고 가서

뼈가 부스러지도록 매질을 한 후 옥에 가둬 버렸다.

이후 관원들은 정봉서에게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러자 힘센 장사 정봉서도 한 달이 못 돼 그만 굶어 죽고 말았다.


남편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정봉서의 아내는 치를 떨면서 분개했다.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아내는 동래부로 달려가서 관원들을 향해

"이놈들! 네 놈들이 산도적에 잡혀 죽게 된 것을 내 남편이 구해주었고, 또 내 남편은 도적질을 하더라도

함부로 하지 않았으며,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을 구제해준 의적이었다.

네놈들은 의리도, 인정도, 피도 눈물도 없는 짐승보다 못한 놈이다"고 외쳤다.

그러고는 동헌 앞에 있는 망미루(望美樓·동래읍성 여섯 개의 문의 개폐를 알리는 큰 북을 걸어둔 누각)

내리쳐 모두 부숴버렸다.


지금 금강공원 입구의 망미루는 그때 정봉서의 아내가 부숴버려 새로 만든 것이라고 전해온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국사편찬위원회 부산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