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를 수탐(搜探)'한 안용복 장군
죽음 무릅쓰고 일본에 '조선땅' 확인받아
수영구 수영사적공원에 위치한 안용복 장군의 사당인 수강사 전경. 왼쪽에 안용복 장군상이, 오른쪽에 장군의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
- 장소 : 수영구 수영동
- 수차례 일본막부 찾아가 항의
- 조정에선 국경넘은 죄 다스려
- 사건 이후 관리 필요성 제기
- 3년마다 울릉도 수토사 파견
안용복(安龍福)은 조선 숙종(재위 1675~1720) 때 수영사람으로 편모 슬하에서 자란
서민 출신이나 재주가 뛰어났다.
초량왜관에 다니면서 일본말을 배웠고 경상좌수영 수군이었을 땐 노를 잘 저어 노군총관이 되었다.
1693년(숙종 19) 봄 안용복은 동래·울산 어민 40명과 함께 울릉도 부근으로 고기잡이를 나섰다가
그곳에서 호키슈 오타니 가문의 어부들과 만나 울릉도 영유권을 놓고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동료 박어둔과 함께 인질로 잡혀가
"울릉도는 우리 영토다. 너희들이 함부로 고기잡이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고 호키슈 태수에게
목숨을 걸고 항변했다.
에도막부로 이양돼 갔을 때도 비슷한 항의로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승인하는 외교문서를 받아냈다.
하지만 귀환 길에 안용복은 대마도주에게 외교문서를 빼앗기고 50여 일을 갇혔다가
초량왜관으로 이관돼 40여 일 더 구금됐다.
이후 동래부사에게 인도된 뒤에도 치사는커녕 승인 없이 월경했다 하여 되레 형벌을 받았다.
안용복은 1696년 봄 이인성 등 10명과 함께 두 번째로 울릉도로 갔다가
도둑질하는 일본 어선을 추격하다 옥기도로 자진해 들어갔다.
그는 옥기도주를 만나 울릉도와 독도의 감세장(監稅將)이라 속이고
"왜인들이 다시 울릉도 근처에서 조업을 하면 가차 없이 죽이겠다"고 경고했다.
이후 호키슈 태수와 담판을 벌인 후 이인성으로 하여금 막부에 상소를 올리게 해
마침내 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강원감사 심평은 양양으로 돌아온 안용복 일행을 국경을 넘은 죄로 체포, 서울로 압송했다.
조정에서는 울릉도를 골칫거리로 만들었다 하여 사형하려 했으나 영의정 남구만 등의 변호로
안용복은 겨우 목숨만 면하고 귀양을 가게 됐다.
이듬해인 1697년 대마도주는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하고 울릉도를 조선땅으로 확인한다는
막부의 통지를 보냈으나 안용복의 죄는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안용복에 대한 평가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영조 때 대학자 성호 이익은 저서 '성호사설'에서 "안용복은 참 영웅이다. 한 천한 군졸이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를 위해 강한 적과 싸워 나라를 지켰건만 조정은 큰 상을 주지 않고 도리어 죄를 주어 귀양을 보냈으니 참으로 애달픈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한탄했다.
정조 때 편찬된 '증보문헌비고'에는 '왜국이 울릉도의 섬들을 자기네 땅이라고 두 번 다시 말하지 않게 된 것은 오로지 안용복의 공이다'라고 적고 있다.
한편 조정에서는 안용복 사건 이후 영토수호 차원에서 울릉도를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1694년부터 삼척첨사 장한상을 울릉도 수토사(搜討使·수색하고 토벌하는 종4품 벼슬)로 파견,
3년마다 정기적으로 섬을 관리하게 했다. 이는 1884년까지 70회 정도 수토했다고 추정된다.
권력도 금력도 없었으나 단지 국토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일본으로 뛰어들어 영유권을 확인한 유공자인 안용복.
상 대신 벌을 웃으며 받아들인 안용복 덕분으로 오늘날 울릉도와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로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안용복은 느닷없이 장군이 됐다.
이는 1954년 부산의 대동문교회(안용복기념사업회의 전신)가 홀로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냈다고 해서
'독전왕(獨戰王) 안용복 장군'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산시민의 뜻을 모아 수영사적공원에 수강사(守彊祠)를 건립하고
동상과 충혼탑을 세워 매년 4월 18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국사편찬위원회 부산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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