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를 품었던 '최치원'
봄내(春川) 따라 동백섬 온 멧돼지의 자식?
왼쪽부터 해운대 동백섬 등대광장 인근에 위치한 해운대석각, 해운대 동백섬 정상에 위치한 최치원 동상. |
- 장소 : 해운대구 우1동
- 개혁 좌절되자 풍류생활 중
- 동백섬 남단의 경관에 반해
- 바위에 아호 따 '해운대' 새겨
- 가야산 신선이 됐다는 전설도
문창후 해운 최치원(857 ~ ?)은 신라 헌강왕 1년인 857년 지금의 경주 사량부에서
육두품 관료 최견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경문왕(재위 861~875)에게 학문적 재능을 인정받아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으로 유학을 떠났다.
떠날 때 아버지는 "10년 안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니 힘써 노력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당의 국자감에 입학한 최치원은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18세에 빈공과(賓貢科)에 장원 급제,
879년 지금의 남경 근처인 율수현에서 현위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881년 황소의 난 땐 그 유명한 '격황소서(激黃巢書)'로 반란군 진압에 크게 이바지했다.
황소는 '천하의 사람들이 이미 너를 죽이고자 하거니와, 지하의 귀신들도 함께 너를 죽이고자 의논하였노라'라는 구절을 읽고는 섬뜩하여 침상에서 떨어졌다고 전해온다.
최치원이 지팡이를 거꾸로 꽂은 것이라 전해오는 해인사 학사대 인근의 전나무. 이 전나무는 지난달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
885년 당에서 귀국한 최치원은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
감사로서 일을 시작했다.
주로 왕실과 관련된 대선사(大禪師)를 기리는
글과 외교 문서 등을 작성했다.
이듬해엔 '계원필경집' '시부' 등 28권을 편찬해 헌강왕에게 올렸다.
894년 최치원은 신라 개혁을 위해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진성여왕에게 올렸지만 진골세력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최치원은 43세 때부터 명산대천을 돌며
풍류 생활을 시작했다.
경주 남산을 떠나 가야산 입산 길에 그는 지금의 해운대 동백섬
등대광장 남단을 지나다 경관이 무척 아름다워 발걸음을 멈추었다.
바다 구름 달 그리고 파도소리를 음미하며 그는 바위에 자신의 아호인
해운(海雲)을 따 '海雲臺'(가로 2m, 세로 3m)라고 새겼다.
이것이 지금의 해운대석각(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45호)이다.
'해운대'는 최치원으로 인해 그 이름을 얻었고, 동백섬은
그가 세상의 시비영욕을 벗어나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던 장소였던 셈이다.
지금 동백섬 정상에는 최치원 동상(1971년)과 해운유적비(1965년), 해운정(1973년)이 조성돼 있다.
해운 최치원 향사봉헌식(4월 17일)은 경주 최씨 종친회에서, 최치원 추념다례제(10월 10일)는
해운대문화예술원에서 주관해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매년 제사를 올리고 있다.
해운대에서의 최치원과 관련된 전설도 빼놓을 수 없다.
옛날 장산의 멧돼지가 홍수로 인해 봄내(春川)를 따라 동백섬으로 헤엄을 쳐왔다.
멧돼지는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나간 사이 뻘에서 고둥과 낙지 등 해산물을 잡고 있던
최치원의 어머니를 납치해 지금의 해운대석각 인근 놀이청바위 밑에서 함께 지냈다.
열 달이 지나 동지섣달 어머니가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최치원이었다.
최치원은 멧돼지의 자식인 셈이다.
최치원은 자라면서 머리가 아주 좋았다.
어떤 백발 노인이 막대기로 모래밭에서 치원에게 '하늘 천(天)'자라고 하면 '땅 지(地)'자라 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많은 글을 다 익혔다.
대학자가 된 최치원은 아쉽게도 돌아가신 흔적을 그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다.
어떤 이는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해운대에 머문 최치원이 이후 글씨를 새기고 시문을 남긴 명소를 따라가 보면 부산 용호동 신선대→양산 임경대→진해 청룡대→마산 월영대→하동 쌍계사→합천 해인사와 가야산 홍류동천 코스가 그려진다.
해인사 대적광전 주변의 학사대 인근의 천년 고목전나무는 당시 최치원이 짚고 다닌 지팡이를 거꾸로 꽂은 것이라 전해온다.
학사대 전나무는 지난달 13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14호로 지정됐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국사편찬위원회 부산사료조사위원
'전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의 전설 보따리]> 김유신의 '땅딸보' 소나무 (0) | 2015.05.02 |
---|---|
[부산의 전설 보따리]> '척판암'에서 던진 판자 (0) | 2015.04.25 |
[부산의 전설 보따리] 금빛 물고기가 노닐던 '금샘' (0) | 2015.04.11 |
[부산의 전설 보따리] 문화로 채워진 '황새알 우물' (0) | 2015.04.04 |
[부산의 전설 보따리] '울릉도를 수탐(搜探)'한 안용복 장군 (0) | 2015.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