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원도심' 여행
살아 숨쉬는 근현대사 속으로…
도시를 떠나던 옛 것, 오늘날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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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충남도청사 건물이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변모해 시민에게 개방되고 있다. 1932년 지어진 이 건축물(등록문화재 제18호)은 모던한 유럽식 건축양식이 돋보인다. 화제의 영화 '변호인'의 촬영지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
"야! 멋지다. 우리 부산시청도 중앙동에 계속 남아있었으면
이렇게 대단했겠지. 너무 아쉽네!"
대전 원도심 여행을 함께 취재한 사진기자 선배가
대전근현대사전시관 건물(중구 선화동)에 들어서자마자 탄성을 지릅니다. 대전시립박물관 소속인 이 전시관은 옛 충남도청사가 박물관으로 재탄생한 공간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지어진 이후 2002년 등록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옛 충남도청사는 2012년 도청사의 홍성 이전으로 수명을 다했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연제구의 새 청사로 이전하면서 기능을 다한 옛 부산시청 건물(중구 중앙동)이 허물어지고
백화점 등 상업공간으로 확 바뀐 부산과는 딴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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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팔아 수익을 챙길 수도 있었지만 충남도청은 청사의 역사성을 고려해 그대로 남겼습니다.
더불어 운영을 대전시립박물관에 맡겨 대전의 역사를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변모시켰습니다. 이 건물은 로비와 바닥의 타일,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말해주듯 유럽식입니다.
1930년대 지어졌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건축미를 자랑합니다.
건축사적 가치는 물론 치열했던 도청사 이전 역사 등
대전 향토사를 시민들이 언제든지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특히 이곳은 화제의 영화 '변호인'의 촬영지로 더욱 주목을 끌었습니다.
충남도청사뿐이 아닙니다.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은 젊은 작가들의 현대미술 작품을 느낄 수 있는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옛 대전부윤(지금의 대전시장)의 관사는 카페로 거듭나 여행자들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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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이 더 새롭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곳은 또 있습니다.
대전 대흥동은 요즘 젊은 예술가 및 문화활동가들이 입주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대흥동에는 지역화폐를 이용해 건강한 현미밥을 먹을 수 있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실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여행정보를 구할 수 있는 여행카페와 오래된 여인숙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는 배낭여행자들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주차장 부지를 재활용한 갤러리는 이름 캘리그래피라는 독특한 장르로 여행자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대전 지역문화의 현황과 과제를 다루는 월간지는 지역의 내실을 살찌우고, 원도심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은 해마다 8월이면 주민들과 함께 예술난장을 벌입니다.
도시재생은 요즘 어느 도시건 커다란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도시가 발전하면 낡은 것은 '삭제'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보존과 활용'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다만 '콘텐츠'가 관건입니다.
사람이 빠져나가 휑한 원도심에 벽화를 예쁘게 그려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독특한 콘텐츠를 입혀 낡은 것에 생기를 불어넣는 게 더 중요합니다.
대전 원도심은 그런 의미에서 도시재생의 좋은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깊이 있는 콘텐츠로 낡은 것에 생기를 불어넣는 대전 원도심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오래된 것은 퇴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현대적이고 새로운 것이 된다'. 대전 얘기다.
수명을 다했지만 문화로 생기를 불어넣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대전 중구의 대흥동 은행동 선화동 일대 원도심을 여행했다.
■ 출발은 원도심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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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원도심 레츠는 1주일에 사흘 유기농 건강식인 '현미밥상'을 차린다. |
대전 원도심 대흥동의 중심축은 원도심레츠다.
'레츠(LETS)'는 지역 교환·거래체계(Local Exchange&Trading System)의 약자로, 지역화폐 운동을 벌이는 공동체이다.
지역화폐를 발행해 공동체 구성원의 노동과 시간, 재화를 공유하면서
서로의 삶을 나눈다는 의미다.
일종의 품앗이공동체 운동으로 대전에서는
1999년 '한밭레츠'가 설립되면서 본격화했다.
원도심레츠는 한밭레츠에 이은 대전의 두 번째 지역품앗이 운동단체로, 원도심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레츠에서는 지역화폐인 '두루'가 통용된다.
레츠 회원으로 등록하면 두루로 원도심 일대 식당 카페 병원 등의 재화를 매매할 수 있다.
당장 가진 두루나 돈이 부족하다면 일단 사용한 뒤 마이너스 부분만큼 자신의 노동력으로 되갚을 수 있다.
월·수·금요일 낮 12시 대흥동 원도심레츠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현미밥상이 차려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현미밥과 옥상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만든 건강밥상이다.
레츠 회원은 물론 일반 여행자도 현미밥상을 즐길 수 있다.
가격은 3000원+2000두루. 두루를 가지지 않은 비회원은 5000원을 내면 현미밥상을 먹을 수 있다.
원도심레츠 이종현 두루지기는 "레츠가 원도심에 들어오면서 이곳에 먼저 터를 잡은 젊은 친구들에게
우리 공동체가 무엇을 해줬으면 좋겠냐고 물었는데, 밥을 원해서 주부의 특기를 살려 건강한 현미밥상을
시작하게 됐다"며 "당장 돈이 없더라도 재화를 누리고 자신의 노동력으로 되갚을 수 있어 삶의 질이
올라가는 건 당연지사"라고 말했다.
현미밥상날 만난 레츠 회원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은
여러 번 먹어서 마이너스(-) 1만여 두루의 '빚'을 졌다.
그는 "앞으로 미술특강 등 나의 재능을 통해 마이너스 두루를 갚아나갈 것"이라며 웃었다.
■ 대흥동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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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등을 주제로 한 여행카페 '도시여행자'의 독립출판물. |
원도심레츠에서 현미밥상을 먹고 대흥동 일대 문화골목을 돌아다녀 보자. 원도심레츠 바로 옆 건물의 도시여행자는 전 세계 배낭여행 정보가 가득한 여행자를 위한 카페다.
1층 주문대에서 커피를 사서 2층으로 올라가면 비치된 1000여 권의
여행관련 책과 자료를 마음껏 볼 수 있다.
배낭여행을 가고 싶은데 비행기표 예약부터 일정을 짜는 게 어렵다면
카페지기가 여행 컨설팅도 해준다.
이 카페는 여행을 하다 만난 김준태 박은영,
두 젊은 공동대표가 2011년 문을 열었다.
"여행을 매개로 지역에 대한 애정을 북돋우고 지역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고민하다 여행카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전 배낭여행자의 아지트가 된 이곳은 지난 4월 확장, 1층에 독립출판
서점을 추가 오픈했다.
'대전의 가장 작은 서점'인 이곳은 축구 등 다양한 주제의
소규모 출판물을 만들고 비치해 지역문화운동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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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여인숙 건물을 개조해 만든 게스트하우스 '산호여인숙'(위 사진), 과일카페 '사과나무'. |
도시여행자 옆 사과나무는 독특한 과일가게다.
주문을 받아 유기농 과일을 도시락으로 만들어 파는 곳으로
과일과 과일주스를 맛볼 수 있는 과일카페다.
사과나무는 매주 토요일이면 대전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움직이는 과일가게'를 연다.
이민형 대표는 "우리 부부가 워낙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여행을 즐기고
장사도 하고, 4살짜리 아이와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움직이는 과일가게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산호여인숙은 대전 원도심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숙박을 해결해 주는
게스트하우스다.
옛 여인숙 건물을 고쳐 만든 이곳은 2~6인실 숙소다.
조식까지 제공하는 1박 이용료가 1만5000~1만8000원으로 저렴해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여행자에게 환영받는다.
산호여인숙에서는 미술전시도 관람할 수 있다.
입구 왼편에 조그마한 갤러리가 있는데, 산호여인숙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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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부지에 들어선 주차갤러리는 캘리그래피로 유명하다. |
대흥동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주차갤러리에 이른다.
모텔 주차장 부지를 갤러리로 만든 문화공간으로 화랑에 들어서면
바닥에 주차선이 그대로 그어져 있는 게 특이하다.
주차갤러리 박석신 대표가 이름으로 캘리그래피를 그려주는 이벤트가
독특하다.
시간이 맞는다면 박 화백에 이름 캘리그래피를 청할 수 있다.
월간 '토마토'는 원도심 지역문화 관련 잡지다.
이 월간지 사무실 1층에는 북카페 이데가 있다.
커피 한 잔을 하면서 그간 발행된 잡지를 읽으며
지역문화의 현황을 접할 수 있다.
8월에 대전 여행을 한다면 대흥동 문화축제 대흥동립만세를 놓쳐서는 안된다.
지난 15일부터 24일까지 대흥동 일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문화축제로 연극 음악 미술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지역 문화예술인이 2008년부터 매년 8월에 열고 있는 예술난장이다.
대흥동 길거리 카페에서 연극공연이나 재즈, 클래식 음악을 경험할 수 있어 여행에 재미를 더한다.
대흥동립만세 사무실 3층은 갤러리로 꾸며져 지역미술인들의 기획전을 감상할 수 있다.
■ 시민에 개방된 근대문화유산
대전 원도심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옛 관청과 관사가 새 건물로 재건축되지 않고 각각 미술관과 역사전시관, 카페 등으로 변신해
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대전창작센터는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건물(등록문화재 제100호)을 재활용했다.
1999년 이전 뒤 지역민의 논의를 거쳐 2008년 대전시립미술관이 운영하는 대전창작센터로 재탄생했다.
근대문화유산인 건물은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를 전시장으로 활용, 지역민에게 문화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이곳 강유진 큐레이터는 "다음달 28일까지 '프로젝트 대전' 주제의 전시가 계속되고, 10월 28일부터
내년 2월 1일까지는 이 전시의 주제를 연장해 과학과 미술의 융·복합을 내건 대전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운영된다"고 소개했다.
오래된 건물이 폐기되지 않고 가장 동시대적인 공간으로 거듭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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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절 대전부윤(지금 대전시장)의 관사를 활용한 커피집 안도르(위 사진), 커피집 안도르 내부. 옛날식 목조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
옛 충남도청사(등록문화재 제18호)는 대전시립박물관 소속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1932년 지어진 이 건물은 2012년 도청이 충남 홍성군 새 청사로
옮겨가면서 80년의 수명을 다했지만 허물어지지 않고,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1층 전시실에서는 1932년 당시 충남 공주 지역민의 거센 반발에도
공주에서 대전으로 청사가 옮겨온 이전 일대기가 전시되고 있다.
1930년대 지어졌다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웅장한 유럽식 건축양식이
돋보인다.
바닥 타일,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매우 모던하다.
2층 도지사실에는 2012년까지 이 공간을 사용한 안희정 충북도지사의
명패가 놓여 있다.
손님 접대방을 거쳐 집무실, 내실을 구경할 수 있다.
도지사실에는 오래되고 거대한 금고가 놓여 있다.
일제강점기 공주청사 때부터 사용된 금고로, 공주에서 대전으로 청사를
이전하면서 이 금고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1t 무게의 금고를 옮기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웠던지 당시 이송을 담당했던 기사에게 상여금으로 20원(당시 쌀 2가마)이나 주었다고 한다.
안도르는 대한제국시대 대전부윤(지금의 대전시장)의 관사로 현재는 카페로 변신했다.
목조 건물 내부를 거의 그대로 살려 카페의 운치를 더한다.
아메리카노가 2000원밖에 안 하는 이 '착한 카페'에서 여행의 피로를 잠시나마 풀고 갈 수 있다.
# 칼국수·성심당 '튀소'만 맛있는 줄 알았지?
- 물총탕·파 육개장·두부 두루치기도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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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여행에서 맛집 투어도 빠뜨릴 수 없다.
대전의 대표 먹을거리는 칼국수.
교통 요충지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전국의 밀가루가 대전에 모였던
덕분에 칼국수 요리는 대전에서 꽃을 피웠다.
대전에는 골목골목마다 칼국숫집이 있어 쉽게 먹을 수 있다.
오씨칼국수는 칼국수뿐 아니라 물총탕(사진)이 이색 메뉴다.
'물총'이라 불리는 조개를 듬뿍 넣은 조개탕으로 조개를 씹을 때 국물이 물총처럼 입안에서 튄다고 해서
물총이라 이름 붙여졌다.
대전시청 근처 대선칼국수는 1958년 문을 연 전통의 칼국숫집으로, 대전의 명물인 두부 두루치기로도 유명하다. 두루치기 요리에 돼지고기 대신 두부를 넣어 만든 것이다.
두부를 먹고 난 뒤 남은 두루치기 국물에 칼국수 면을 비벼 먹으면 아주 맛있다.
대파만 넣어 만든 파 육개장집도 지나칠 수 없다.
명랑식당은 육개장에 들어가는 채소로 대파만 쓴다.
대파로 육개장을 끓였다는 조선시대 고문헌의 조리법을 응용해 파 육개장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푹 삶긴 대파와 고기는 씹기 부드럽고, 고추장 양념은 특유의 얼큰한 국물맛을 낸다.
대전 성심당은 전국 3대 빵집 중 하나로 불릴 만큼 명성이 높다.
소보루빵을 튀긴 일명 '튀소' 튀김소보루와 부추가 속으로 들어간 '부추빵'은 성심당의 대표 메뉴다.
대전역 내 성심당 분점에서 튀소를 사려면 20분 정도는 줄을 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대전을 찾는 여행자들에게는 그 인기가 대단하다.
글=이선정 기자 sjlee@
사진=백한기 선임기자 baek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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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건물을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재활용한 대전창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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