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따라 이야기 따라

조선통신사 발길 머물렀던 곳… [일본 오이소~닛코]400년 전으로 시간여행

금산금산 2016. 2. 13. 14:45

조선통신사 발길 머물렀던 곳…

[일본 오이소~닛코]400년 전으로 시간여행







▲ '고에도(小江戶·작은 에도)'라 불리는 가와고에(川越)에 가면 에도 시대 건축물이 즐비하다. 도쿄에서 50분이면 갈 수 있어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붐빈다.






'문화의 힘'을 느낀 여행이었다.

400년 전 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 걷자니 "문화의 위대함이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아무리 억압해도 뿌리 내린 문화의 흔적은 지울 수 없었다.

고구려 멸망 후 일본에 이주한 고구려인의 후손이 선조를 모신 신사를 지키고 있고, 일본 에도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무덤 앞에는 조선의 통신사가 가져온 삼구족(三具足·화병, 향로, 촛대)이 놓여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한·일 양국은 '조선통신사' 기록물 111건 333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물로 공동 등재 신청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느낌이 좋다. 먼 옛날 조선통신사가 그랬던 것처럼 얼어붙은 한·일 관계가 풀리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임란 후 통신사로 소통했던 한-일
400여 명 1년에 걸친 험난했던 여정 
 

닛코 시엔 일행이 머물렀던 숙소 터   
히다카, 발 닿는 곳마다 고구려인 흔적  
삼나무길 지나 도쇼구엔 조선종 눈길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통신사 그들이 걸었던 그 길을 걷다
 




■ 고구려인의 흔적 

가나가와 현 오이소에 있는 다카쿠(高來) 신사. 인근에는 고려(高麗)산이 있고 주소에도 고려라는 지명이 남았는데, 이는 고구려인의 흔적이다.



조선통신사가 목적지인 에도(江戶, 현재의 도쿄)에 가기 위해 거쳐 갔던 조선통신사 동쪽 코스를 살펴보는

여행이었지만, 크게 보면 일본에 남아 있는 한반도인의 흔적을 찾는 여정이었다.

가나가와 현 오이소(大磯)에 가면 고마야마(高麗山·고려산)가 있다.

이름부터 느껴지지 않는가.

고구려인의 흔적이다.

고구려인을 일본에서 고마비토(高麗人·고려인)라고 불렀는데, 이 지역은 고구려의 멸망 전후 일본으로 건너온 고구려인이 초기에 정착했던 지역이다.

오이소 다카쿠신사(高來神社)는 원래 절이었다.

고구려인이 고라이지(高麗寺·고려사)를 세웠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신사로 바뀌면서

이름도 다카쿠(高來)로 변경됐다.



다카쿠신사의 궁사(宮司·절로 따지면 주지 스님 격 우두머리) 와타나베 류지 씨는 "이 지역 사람들은 아직도 일대를 '고라이(고려)'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신사와 주변을 둘러보니 산 이름뿐만 아니라 동네 주소에도 고려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오이소에 정착한 이는 고구려 왕족이었던 약광(若光·일본어로 잣코)이다.

'일본서기'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멸망(668년) 직전인 666년 10월 외교 사절단으로 일본에 왔다가

멸망 이후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선 기술과 지식을 가져온 고구려인은 일본에서 환대 받았다.

이후 716년, 일본 야마토 조정은 7개 지방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인 1천799명을 무사시노 지방으로 이주하도록

하고 '고마군(高麗郡)'을 창설했다.

약광은 군장(郡長)이 됐다.


사이타마 현 히다카(日高)시는 고마군의 중심지다.

지금도 고마역(高麗驛), 고마천(高麗川), 고마신사(高麗神社)까지 고구려인의 흔적이 가득하다.

신사 입구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지키고 서 있다.

이곳의 궁사 고마 후미야스 씨는 고구려인의 후손인 고마 가의 60대 손이다.

26대까지 약 500년 동안은 고구려인끼리만 결혼했다.

고마 씨는 "고마소학교, 고마중학교를 나왔다"며 웃더니 "올해가 고마군이 생긴지 1천300년에 해당돼 '고마군 건군 1천300년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약광을 신으로 모시는 고마신사는 이곳에 참배하면 출세한다는 것으로 유명해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 등 역대 총리 중 6명이나 참배를 했다고 한다.

고구려인의 힘이 느껴졌다.




■ 환영 받은 조선통신사 


고마(高麗)신사를 지키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인터넷도 없고 카메라도 비행기도 없던 시절, 바다 건너온 외교사절 조선통신사는 일본인에게

얼마나 신기한 존재였을까.

조선통신사의 목표는 당시 일본 수도인 에도에 가서 국서를 교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에도에 가기 위해 해로와 육로로 6개월~1년에 걸친 긴 시간 일본 국토를 지나가다 보니, '문화 교류'의 성격이 점점 강화됐다.

조선통신사의 글을 받기 위해 일본 서민이 줄을 서는 일은 흔했고, 통신사 행렬을 더 잘 보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가는 이도 있어 이를 금지했다는 기록도 있다.

압권은 400여 명에 달하는 조선통신사의 숙소를 임시로 지었던 일이다.

일본 측 수행원까지 포함하면 때로는 2천 명이나 됐다고 전해진다.




도치기 현 닛코(日光)시 이마이치(今市)에 갔더니 조선통신사가 이틀을 묵은 임시 숙소였던

이마이치 객관 터가 있다.

원래 있던 보리밭을 없애고 에도에서 가져온 목재로 100개가 넘는 숙소를 짓는데 1만 냥(현재 가치로 약 100억 원 이상)이 들었다고 하니, 당시에도 대사건이었을 것이다.


통신사가 지나가고 나서는 숙소를 철거한 뒤 그 목재를 동네 주민에게 나눠줬고, 이후 이 지역에서

목재업이 번성했다.

12차례 조선 통신사의 방문이 일본 사회에 끼친 영향은 실로 상상 이상이었다.




현재 이마이치 객관 터에는 조선통신사 400주년을 기념해 2007년 세운 유적비가 있다.

일본조선통신사연구회 야나기하라 가즈오키 씨는 "조선통신사 스스로도 자신들을 위해 화려하게 만든 이마이치 객관을 보고 놀랐다는 설이 전해진다"며 "숙소 형태에 대한 기록은 없어 아쉽다"고 전했다.


에도까지 가는 것이 목적이었던 통신사가 왜 닛코까지 갔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일본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고 한다.

닛코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신으로 모신 도쇼구(東照宮)가 있다.

통신사가 이곳을 방문하면 일본 백성과 통신사 모두에게 에도 막부의 강력함을 과시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다.

도쇼구는 이에야스의 손자 이에미스가 지었는데, 과연 화려했다.



도쇼구로 가는 삼나무 길



눈이 쌓인 삼나무 길을 지나 도쇼구에 들어가자 조선종이 눈에 띄었다.

통신사가 5번째 방문했을 때인 1643년, 인조가 이에미쓰의 장남 탄생을 축하하며 하사한 선물이다.

맞은편에는 네덜란드 국왕이 보낸 촛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이에야스의 무덤 앞에는 조선종과 함께 보낸 삼구족(三具足)이 놓여있다.

이를 설명하는 표지판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조선통신사 기록이 유네스코에 등재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 닛코의 온천과 '작은 에도' 가와고에 


기누가와 계곡을 따라 줄지어선 온천 호텔


닛코는 도쿄에서 가까운 데다 온천마을이 많아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에도시대에 발견돼 다이묘(영주)들이 즐겨 찾았다는 기누가와(鬼怒川) 온천을 찾았다.

숙소에 도착할 즈음 싸락눈이 사뿐사뿐 내렸다.

차가워진 몸을 뜨거운 온천에 담글 생각을 하니 기대감이 커졌다.



기누가와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숙소는 전형적인 일본식 온천호텔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유카타로 갈아입고 온천으로 직행했다.

보통 일본인은 온천에 도착하면 식사 전, 식사 후, 잠들기 전 3번 온천에 몸을 담근다고 한다.

과연 온천을 좋아하는 민족답다.

천장까지 뚫린 노천 온천은 아니었지만, 눈앞에 계곡이 흐르고 찬 바람이 스며드는데 탕에 앉아 있으려니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졌다.

먼 길을 떠나온 통신사도 이렇게 일본 온천에서 여독을 풀지 않았을까. 



손님에게 가이세키 요리를 내놓는 종업원.



다음 날 닛코를 떠나기 전 이 지역 대표 음식인 유바 요리를 먹었다.

유바는 두유를 끓일 때 표면에 생긴 얇은 막을 건져 낸 일본 전통 음식이다.

튀겨도 먹고 끓여도 먹고 그냥도 먹는데, 심심하니 고소한 맛이 났다.

조금 느끼한 감도 있지만 함께 나온 소바와 곁들이니 입안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통신사의 동쪽 여정을 따라가면서 숨을 돌릴 겸 주변 관광지도 들렀다.

일본 젊은이의 데이트 성지이자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인 에노시마(江道)도 좋았지만, '고에도(小江戶·작은 에도)'라 불리는 사이타마 현 가와고에(川越)시가 인상 깊었다.

에도 시절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작은 에도라고 부르는데, 외국인보다 일본 관광객이 더 많았다. 



가와고에 상점가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


거리는 일본 전병인 센베이를 굽는 장인, 주먹밥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선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이곳 가와고에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지역 맥주 'COEDO'는 이제 맥주 애호가라면 이름을 들어 봤을 법한

브랜드가 됐다.

가와고에 거리를 걸으며 코에도 생맥주를 마시고 있노라니, 살짝 오른 취기에 에도 시대 번잡한

저잣거리를 뛰어다니는 에도인이 절로 상상이 됐다.



문화의 힘은 위대했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향을 준다.

사이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것이 이웃 나라의 숙명이라지만 언젠가 다시 좋아질 날이 오지 않을까.

임진왜란이라는 아픔 끝에 통신사로 소통했던 조선과 일본의 관계처럼 말이다. 


가나가와·사이타마·도치기 현/글·사진=조영미 기자 mia3@

 취재 협조=일본정부관광국(JNTO) 


■ 교통편 
 

에노시마에 가면 탈 수 있는 노면 전차

조선통신사의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하려면 도쿄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부산 김해공항에서 도쿄 나리타공항으로 대한항공, 일본항공, 에어부산이 매일 운항한다.
대한항공과 일본항공은 하루 2번 오간다. 가와고에는 도쿄 이케부쿠로(池袋)역에서 도부 도요(東武 東上)선을 타고 가와고에역 하차.
고마신사는 가와고에 역에서 JR 가와고에선으로 갈아 탄다.
마가와(高麗川)역에서 택시로 5분 가량.
닛코는 JR 신주쿠·이케부쿠로역에서 도부 닛코·기누가와역까지 JR선~도부선 직통 전차 개통.

 

■ 숙소 

닛코 기누가와 프라자 호텔은 일본 온천 호텔로 노천 온천이 딸린 방과 공용 온천을 이용할 수 있는 방이 있다. 저녁은 가이세키 요리를 제공한다.

조식은 일본식과 양식이 별도로 차려진다.

뷔페식으로 먹을 수 있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기누가와 계곡의 전경이 좋다.


■ 음식 

가와고에는 고구마로 유명해, 고구마로 만든 음식이 많다.

지역 맥주로 'COEDO'가 유명하고, 필스너, 에일 등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생산해 판다.

닛코에서는 유바 요리가 유명하다.

닛코센히메모노가타리(日光千姬物語)에 가면 정통 유바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유바 요리는 고기를 먹지 못하는 승려들이 즐겨 먹었다.

콩으로 만든 유바와 채소로 만든 건강요리다. 


조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