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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상동 대감리' 조선시대 '도예촌'이었다

금산금산 2016. 7. 2. 22:04

김해 상동 대감리 '조선시대 도예촌'이었다




분청사기 가마터 발굴조사 결과







-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돼있는
- 집단 도요지 '감물야촌'으로 확인
- 궁중에 납품하던 자기도 발견
- 추가 발굴조사 보존 대책 필요



최근 경남 김해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대감리 분청자기 가마터'

조선 초기 김해지역 집단 도요지 '감물야촌(甘勿也村)'의 일부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가마터 주변에 대한 대대적인 추가 발굴조사와 보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해시는 지난 8일부터 동아세아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해 상동면 대감리 일대 가마터를 발굴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발굴단은 이번 조사에서 김해지역 첫 분청자기 가마터를 발굴하고 깨어진 도자기를 버리는

투기장 3곳도 조사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곳에서는 1450년 전후의 잔과 그릇 등 분청자기 3306점이 조사됐다.

발굴단은 '김해 상동 분청자기 가마터 문화재'라는 보고서를 통해 "출토된 유물 등을 종합해 보면 이곳이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기재된 김해지역 대단위 집단 요업지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김해도호부 동쪽에 하품(낮은 품질)을 생산하던 감물야촌에 1개의 자기소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가마터가 발굴된 '대감리(大甘里)'라는 지명은 과거 '대감물야리'에서 나온 것이고, 이곳이 1424~1469년 김해도호부 자리에서 북동쪽에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발굴단은 가마터 주변이 조선 초·중기 집단 도자기 생산지였던

것으로 결론을 냈다.

조선 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조달·관리하던 관청인 '장흥고(長興庫)'가 새겨진 자기도 발견돼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했다.

생산된 자기 표면에 납품될 정부 기관명을 적어 공납용임을 밝혔던 것이다.

가마터 부근에는 낙동강이 있어 당시 생산된 자기를 배에 싣고 수로를 통해 한양까지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 분청자기 가마터 조사단의 성현주 부산박물관 임시수도기념관장은 "김해지역에서 오랜 기간 도자기 공납이 이뤄졌다는 사료가 이번 발굴 조사를 통해 입증됐다. 이에 따라 가마터 발굴 지역 주변에 대한 대대적인 학술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 김미경 문화관광사업소장은 "과거 김해가 전국에서 손꼽히는 도요지였음이 확인됐다. 도 문화재 지정을

신청하고 예산을 확보해 추가 발굴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가마터 일대를 보존해 분청자기 본고장으로서 도요지 산업화와 관광지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감리 분청자기 가마터는 흙층 분석을 통해 모두 15차례 조업을 한 것으로 나타났고, 가마터 아래에서는

특이하게 삼국시대 분묘도 확인됐다.

박동필 기자 fe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