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문화현장]'힙합 소년, 청년 예술가'로…서덕구의 무한 도전
힙합 댄서 선생님, 무대예술 학생되다
- 아이돌 꿈꾸던 17살 연습생
- 서울서 2년간 백댄서 활동하다
- 부산 첫 힙합댄스 학원 대표로
- 연예인 8명 배출 등 성공가도
- 부산문화재단 청년예술가 선정
- 영국서 공연예술 교류 경험 계기
- 춤꾼 박연정 작품 '똥' 정식 동참
- 소리꾼 김아름과 창작춤 도전 등
- 춤 예술로의 영역 확장 전략 세워
그때가 열일곱 살이었다.
소년은 서울로 갔다.
연예계에 뛰어들었다.
백댄서로 시작했다.
1998년이었다.
서덕구아트팩토리의 춤꾼들이 리듬을 타며 강렬한 느낌의 춤을 추고 있다. 가운데가 서덕구 대표. |
"처음엔 아이돌 그룹 데뷔를 준비하는 연습생이었어요.
그런데 연습생 생활이 제게는 도저히 맞지가 않는 거예요. 뛰쳐나와 백댄서가 됐죠."
백댄서 활동이 힘든 건 아니었다.
물론, 고달픔은 있었다.
돈을 제대로 못 받기도 했다.
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서덕구아트팩토리 서덕구(35) 대표와 인터뷰 하면서 내내 느낀 게 있다.
그에게는 '조금은 먼 미래'를 미리 생각하는, 본능에 가까운 태도가 있다.
분류하자면, 예술가형이면서 동시에 '전략가형 인간'인 면이 그에게는 있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고 싶더라고요."
왜 고민이 없었을까.
고심 끝에 소년은 2년 백댄서 활동을 과감히 접었다.
그리고 고향 부산으로 돌아왔다.
부산에 오자마자 스트리트 댄스(비보이, 힙합댄스 등 젊은이들이 주로 길에서 추는 춤)팀 XTC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주구장창' 공연만 했죠. 1년에 1000회 이상."
1년이 365일인데, 1000회 넘게 공연을 했다고?
"하루에 2, 3차례씩 거의 매일 공연을 뛰면 1000회를 넘기죠.
중·고·대학교 축제, 댄스대회 게스트 출연, 각종 이벤트…. 그때는 무대가 아주 많았어요."
부산 최초 힙합댄스스쿨 시작
그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홀로 춤추는 서덕구 대표. |
그런 생활을 2년쯤 하고 나니, '힙합 소년'은 21세 청년이 돼 있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이렇게 춤만 추다가 내가 춤을 그만두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껏 우리가 해온 활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
"내가 설 곳도 없어지겠지?"
상념에 빠져 있을 짬도 없었다.
그는 체계를 갖추고 스트리트 댄스를 가르쳐
후진을 길러야 겠다는 결론에 닿는다.
때마침 주위의 도움도 있었다.
준비 기간을 거쳐 부산 도심에서 좀 떨어진 외진 공간을 빌렸다.
그는 스트리트 댄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2003년이었다.
"그때는 부산의 스트리트 댄서들 사이에서 '학원'이나 '교육'이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어요. '댄서가 무대에 올라 공연하면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거지.
학원이라니? 교육?' 이런 분위기 일색이었죠."
딱히 홍보방법도 없던 시절이었다.
'한 스무 명쯤 오겠지? 그러면 이 친구들을 잘 가르쳐서…'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이 왔다.
수강생이 밀려들자,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덕구힙합댄스스쿨'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걸었다.
부산 최초의 힙합댄스 학원이었다.
한발짝 씩 앞서가는 변화 시도
2004년에 접어들자 서덕구힙합댄스스쿨은 자리를 잡았다.
2005년이 되자, 처음엔 '거리에서 춤춰야 할 스트리트 댄서가 왠 학원?' 하면서
이해를 못 하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그러면서 다른 학원들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 뒤로 스트리트 댄스 학원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수강생은 줄곧 300명 선을 유지했다.
2006년 그는 번화가인 서면 쪽에 시설을 잘 갖춘 공간을 마련해 서덕구힙합댄스스쿨을 옮겼다.
한 달 수익은 1500만 원을 쉽게 넘겼다.
2012년에는 남구 대연동과 북구 화명동에도 스쿨을 열어 한동안은 학원 세 곳을 운영했다.
(지금은 서면 한 곳만 남기고 두 곳은 정리한 상태다.)
연예계 진출에 관심이 높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예인 지망반을 운영한 것도
그의 성공에는 꽤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아이돌 그룹 2PM의 구성원 장우영도 서덕구힙합댄스스쿨을 거쳐 갔죠.
연습생을 빼고, 연예인으로 데뷔해 활동하는 사람은 8명 정도 됩니다."
그것 말고도 비결이 있을 것 같아서 물었다.
"잘 가르치나 봐요?"
이 질문을 받자 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제겐 학력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그는 춤을 추려고 부산의 금정전자공업고교를 중퇴했다.
"그런 제게 춤을 배우는 청소년 수강생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는 게 이상했습니다."
그는 부산여대 부산예술대 등에서도 춤을 가르친다.
물론, 여기서도 그는 "선생님" 또는 "교수님"이다.
"덕구 형 또 이상한 짓 한다"
'선생님'이라는 호칭 앞에 부끄러운 사람이 되기 싫었다.
"제가 아는 걸 상대에게 잘 가르치려니 노력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학력 콤플렉스 앞에서 주춤거리는 대신, 책을 손에 잡았다.
"잘 가르치고 싶어서 심리에 관한 책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독서의 폭은 넓어졌다.
이런 일도 있었다.
청소년 수강생이 책을 끼고 왔기에 봤더니 윤리 교과서였다.
그 책을 쭉 다 읽고는 책을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 안에 답이 다 있더라. 너도 열심히 읽어 보렴."
2003년 서덕구힙합댄스스쿨을 시작할 때 "앞으로 10년은 춤만 열심히 가르쳐 보자"하고
그는 '10년 계획'을 잡았다.
그 일에서 일정하게 성과를 거둔 그는 '새로운 10년 계획'을 세웠다.
변화를 준비하는 전략가형 기질이 그에게는 확실히 있어 보인다.
새로운 계획의 핵심은 힙합댄스와 예술의 만남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부산의 다른 장르 예술인들과 교류해왔다.
고난도 기술과 높은 난도의 춤에 집중하는 스트리트 댄스에 메시지와 새로운 실험을 중시하는
이른바 순수예술을 접맥하자는 시도다.
현재 부산 예술판에서 입지를 확보해가는 다원예술 영역에 뛰어들어 스트리트 댄스에 예술적 메시지를 담아내자는 도전이다.
2013년 그는 자신의 팀 이름을 서덕구힙합댄스스쿨에서 '서덕구아트팩토리'로 바꾸었다.
이런 계획을 말하자 스트리트 댄스 쪽 후배들에게서 이전에 나왔던 말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덕구형 또 이상한 짓 한다."
스트리트 댄스의 영역 확장 꿈꾸다
소리꾼 김아름(오른쪽)과 함께한 창작춤 '화(Anger)'. |
힙합 댄스를 배우는 열기가 예전 같지 않아 조금은 여유가 생긴
그에게 2013년 벽두 결정적인 계기가 왔다.
부산문화재단이 부산의 청년 예술가 15명을 뽑아 영국을 순회하면서
유럽 예술계와 교류를 모색한 '커넥션 인 박스 유럽'에 선발된 것이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공연예술이 이런 거구나, 공연예술가들은 이렇게 활동하는구나' 하면서 배운 게 정말 많았어요."
영국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그때부터 부산의 소극장과 대극장에서 열리는 춤과 연극 공연을 부지런히 보러 다녔다.
스트리트 댄서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는 무대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다.
지난해 부산의 유망한 한국춤꾼 박연정이 부산문화재단의 청년연출가 제작 지원작에 선정돼
'똥'이라는 빼어난 작품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에 서덕구아트팩토리는 정식으로 동참했다.
융복합 공연예술 작품인 '똥'에서 "굉장한 경험"을 한 서덕구아트팩토리는
올해에는 '악, 악'이라는 창작춤 작품을 만들어 청년연출가 제작 지원작 선정사업에 응모했다.
하지만 지난 7월 결선에서 아깝게 탈락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서덕구 대표는 지난달 27일 문화기획단체 재미난복수가 마련한 문화가 있는 날 공연에
소리꾼 김아름과 함께 창작춤을 추는 등 '예술적 도전'에 흔들림 없이 나서고 있다.
"스트리트 댄스와 춤 예술의 만남을 위해 앞으로 10년은 도전해야죠. 그것이 스트리트 댄스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번에 경연에서 떨어진 '악, 악'은 자체 힘으로 제작해 무대에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서덕구의 10년 도전이 새롭게 시작됐다.
조봉권 기자 bgjoe@
'과학·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짝반짝 문화현장]거장은 어떻게 지역을 빛내나- 김해 서예가 범지 박정식 (0) | 2016.09.23 |
---|---|
[당당 부산청년문화당] 21일 '에코 아트 트립' 행사 (0) | 2016.09.16 |
[반짝반짝 문화현장]하동 '박경리문학관'에서 보낸 하룻밤 (0) | 2016.09.09 |
[반짝반짝 문화현장]창녕 우포늪으로 간 가수 우창수 김은희 부부, 그리고 '개똥이들' (0) | 2016.09.03 |
[당당부산청년문화당]청년연출가 쇼케이스 (0) | 2016.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