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신자와 방문객 위해 [쉼터] 마련…“모두의 천국 됐으면”

금산금산 2017. 9. 2. 07:29

신자와 방문객 위해 쉼터 마련…“모두의 천국 됐으면”



아름답게 거듭난 감천문화마을 ‘아미성당’







구호소·학교였던 가난한 성당
- 서정웅 신부·신자들 자금 모아
- 창고건물 ‘천국카페’로 변신
- 공중화장실·도서관도 만들어
- 관광객들에게도 무료로 개방
- 가톨릭 체험공간 역할 톡톡




“부산교구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성당이 자랑하고 싶은 아름다운 성당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미성당 서정웅 주임신부(가운데)와 신자들이 부산 감천마을의 아미성당 내 천국카페 앞에 모여 손가락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입구에서 오른쪽 위를 쳐다보면 흡사 학교 건물 같은 외양의 ‘아미성당’이 있다.

감천마을 바로 곁의 높은 곳에 자리해 성당이 있는지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경사가 아주 급한 진입로 따라 성당에 들어서면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기대하지 않은 넓은 주차장과 마당, 꽃이 만발한 화분, 아기자기한 조각상이 방문객을 반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은 단층의 소박한 ‘천국 카페’다.

흰색 바탕에 녹색 칠을 한 나무로 외관을 장식했다.

내부 벽면에는 하느님과 성당을 담은 그림이 걸려 있고, 책장엔 책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아미성당 서정웅 베드로 주임신부와 신자들을 만났다.

2년 만에 아미성당을 부산교구에서 손꼽히게 가난한 성당에서

자랑하고 싶은 아름다운 성당으로 바꾼 주인공들이다.

1969년 교구청에서 정식 설립 인가를 받은 아미성당은 아미동, 감천동의 주민을 위한 구호소와 학교로 건립됐다. ‘소 신부’로 알려진 소 알로이시오 슈왈츠 신부가 마리아수녀회 명의로 땅을 매입해

1967년 ‘천주교의원’과 아미고등공민학교를 먼저 설립했다.

아미고등공민학교는 가난으로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이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중학교 과정을 교육한 기관이다.

학교는 주중엔 교실로, 주일 미사 때는 칸막이를 걷고 성전으로 사용됐다.

1978년 학교의 기능이 다른 곳으로 이전한 뒤부터 건물이 온전히 본당 역할만 했다.

서 신부가 아미성당에 발령받은 건 2015년 10월.

 “곧 11월이 돼 추워졌습니다. 토요일에 아이들이 성당이라고 왔는데 쉴 데가 없어 밖에 앉아 게임만 했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들과 신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가장 먼저 창고로 쓰던 건물을 ‘천국 카페’로 개조했다.

서 신부가 온 지 2개월 만인, 그해 12월 24일 문을 열었다.

 비용 1억1000만 원 중 본당 예산은 2000만 원뿐이었다.

신자들이 십시일반 4000만 원을 모았고, 서 신부가 ‘평생의 은인들’을 통해 나머지를 마련했다.



올 3월엔 또 하나의 멋진 건물이 완공됐다.

사제관 옥상에 감천마을과 성당을 방문하는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중 화장실과 ‘천국 도서관’을 올렸다. 서 신부는 “감천마을 내 공중 화장실의 줄이 길 땐, 관광객들이 얼굴이 노래져 성당을 찾는다”며

 “기존 화장실이 멀고 시설도 열악해 공중 화장실을 새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천국 도서관’은 부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가톨릭 관련 서적은 물론 소설, 에세이, 사회과학, 다른 종교 서적까지 갖췄다.

서 신부가 서울 청계천 책방을 다니며 아미성당에 들여다 놓은 책만 5000권이다.



아미성당의 천국 카페와 천국 도서관, 공중 화장실은 아미성당 신자가 아니라도,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천국 카페의 커피는 무료고, 천국 도서관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서 신부는 “예부터 성당은 쉼을 제공하고 가톨릭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이었다.

감천마을을 찾는 한 해 수백만 명 방문객에게 조금이나마 진정한 쉼과 문화를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와 교육을 지원하던 아미성당은

이제 신자와 감천마을 방문자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했다.

30년 이상 아미성당을 다닌 신자들의 소회가 남다르다.

이강로(요셉·54) 씨는 “전에는 미사만 드리고 바로 집에 갔지만,

요즘은 천국 카페에서 신자들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눈다.

시간 날 때마다 와서 방문객을 안내하고 아미성당의 역사를 소개한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