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천정?(辨天町:벤텐쵸)[최학림의 근현대 부산 엿보기] 8)
최학림 기자
1939년 대구의 한 고아원 앞에 35세 권순이가 3개월 된 여아를 버렸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만주 붐'으로 남편이 만주에 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웃남자와 바람이 나 낳은 아이였다.
권순이는 좀 살았던 모양이다.
거주지는 부산 본정(本町, 본동네라는 뜻)이었다.
이 본정은 어딜까?
현재 백산기념관이 있는 동광동이다.
초량왜관 시절 왜관의 우두머리 관수(館守)가 살던 용두산공원의 동쪽, 동관(東館, 이 동관의 발음에서 동광동이 나왔다) 지역이 개항 이후 본정이 된 것이다.
용두산공원의 서쪽, 서관(西館)은 서정(西町)이 됐다.
본정과 서정을 잇는, 오늘날의 광복로 일대에는 변천정(辨天町)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초량왜관 시절부터 용두산에 재물의 신을 모신 '변재천신사'가 있었는데 거기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용두산 주변은 서정, 변천정, 본정으로 이어졌으며 그야말로 부산의 중심가였다.
이 중심가를 해방 후 '빛을 되찾았다'고 '광복동' '동광동'(광복동의 동쪽)으로 바꾼 것이다.
장수통(長手通) 지금의 광복동에 있었다. 정확한 주소는 변천정 38번지!
용두산 '변재천신사'서 유래 광복동 옛지명
일제강점기 부산 지명도 들여다 볼 때 됐다
본정 아래 북항 일대는 매축해서 새로 생긴 땅이다.
이곳에 8개 동네(町)가 생겼다.
'매립해서 새로 생긴 땅'이란 뜻의 매립신정(埋立新町)과, '경부철도가 있는 동네'란 뜻의
경부정(京釜町)을 빼고 동네 이름들이 기가 찬다.
부산우편국이 있던 대창정(大倉町), 부산세관 자리의 고도정(高島町),
여객터미널 자리의 좌등정(佐藤町) 등은 매축을 했던 일본 자본가, 간부들의 이름을 딴 동네였다.
8개 동네는 1927년 모두 '대창정'으로 통합되는데
북항 매축을 추진한 일본의 대표적 정상(政商)인 대창희팔랑(大倉喜八郞) 이름에서 애초 유래한 지명이다. 이 대창정이 오늘날 중앙동이다.
1934 중앙동.
옛 부산시청을 기준으로 대창정 방향 큰길은 대교통(大橋通, 영도대교에서 유래),
충무동 방향 큰길은 소화통(昭和通, 소화 일왕 이름에서 유래)으로 불렸다.
충무동 쪽 당시 부산 3대 공원(용두산·고관 공원)이던 대정(大正)공원도
대정 일왕 즉위를 기념한 일왕의 공원이었다.
일왕 이름이 붙여진 곳은 해방 후 충무공 이순신의 이름에서 따온 지명 '충무동'으로 바뀌었다.
지명은 언젠가 드러나는 지층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다. 다만 누적될 뿐이다.
이제 일제강점기 부산 지명도,
당시 생활사의 복원과 함께 들여다볼 때가 된 것이다.
광복동, 옛 변천정의 거리는 장수통(長手通)으로 불렸는데 이곳에 '조선 약업계의 패왕'으로 불린 약국 '대흑남해당(大黑南海堂)'도 있었고, 그 끄트머리에는 부산 최초의 극장 '행좌' '송정좌'도 있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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