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코너

신앙은 '복불복'이 아니다!

금산금산 2015. 7. 18. 12:23

신앙은 '복불복'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무엇이냐고 물어 본다면 수많은 대답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인생은 여정이다", "인생은 나그네 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인생의 여정과 나그네의 삶은 항상 동일한 삶의 정서가 주어지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 속에서 주어지는 어려움, 기쁨, 슬픔, 즐거움, 아픔 등이 수도 없이 많이 교차된다.

이것으로 볼 때 인간의 삶은 하나의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다할 때까지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사람들의 감정에 복잡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세상에서 말을 할 때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전자가 주장을 하는 것은 인간이 부자가 되려고, 성공을 하려고 수많은 노력을 해도 불가항력적인 삶이 주어지기에 하늘의 섭리(攝理)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후자는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한 인간의 선택(選擇)에 의해 바꿀 수 있다고 말을 한다.

전자의 경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염세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이와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선천적인 환경과는 무관하게 노력과 적극적인 사고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여기는 긍정적인 사고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삶에 있어서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주어진 말들을 본다면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라고 말을 한다.

삶의 동반자와 중대한 인생의 결정을 할 때에 순간의 감정에 좌우 되는 일들이 많이 주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한번 선택을 하면 쉽게 번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만일 선택한 것이 잘못 되어질 때에는 수많은 후회와 갈등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죠지무어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선택이라고"말을 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선택이 운명을 바꾸어 놓을 뿐 아니라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지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볼 때 인생은 마치 '복불복'(福不福)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복불복의 뜻을 사전에서 정의하기를 '사람의 운수', '복분'(福分), '복을 누리는 분수'라고 한다.

이 말은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 유복으로 주어질 수도 있고 무복으로 주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복이 주어지든 주어지지 아니하든 주어진 것에 의해 사람들의 감정이 변할 뿐 아니라 그 결과를 바라보는 태도에가 확연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것을 잘 묘사한 TV 프로그램을 본다면 그것은 단연 1박 2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그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가을 밥상"이라는 주제로 요즘 한국에서 인기가 넘치는 젊은 두 남자 요리사를 초대한 적이 있었다.

그중에 한 사람 요리사는 셰프 레이먼 킴이었다.

그가 같이 팀을 이룬 구성원들과 함께 요리를 하기 위해서 음식물 재료를 획득하는데 정해진 코스에서 복불복을 경기를 해야 한다.

거기에서 승리를 하면 음식물을 획득하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그날 1박2일에서 본 복불복은 상당히 다른 식견을 가지고 레이먼 킴이 승리를 얻어 중요한 음식 재료를 획득했다. 그것은 자신이 요리를 하면서 수많은 경험과 과학적인 지식을 이용하여 복불복에서 고도의 선택을 하여 좋은 결과를 갖게 된 것이다.

일반적인 복불복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이고 그 선택이 사람에게 기쁨과 공허함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신앙은 복불복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며 이것은 단순한 '사람의 직관이나 경험'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한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 신앙은 세상이 말하는 복불복이 아니다.

이에 대한 예를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모압 여인 룻이 예수님의 선조가 되어 믿음의 계보를 이루게 된다.

룻은 이스라엘에 기근이 주어졌을 때 엘리멜렉이 그의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모압 지역에 이민 와서 살고 있을 때 엘리멜렉 두번째 아들 기룐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10년 동안 모압 지방에서 살아갈 때 나오미에게 큰 고통의 시련이 주어진다.

그것은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게 된다.

그리고 한 동안 나오미가 두 자부 오르바와 룻과 함께 살다가 모압 지방에 기근이 심하게 주어져 나오미가 풍작을 이룬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한다.

그리하여 여정을 떠나는데 도중에 시어머니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너희들은 아직도 젊으니 모압으로 돌아가 재혼을 하여 너희 나라에서 편안하게 살라고 간곡히 부탁을 한다.

그 말을 들은 룻의 큰 동서 오르바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인사를 나누고 가던 길에서 돌아서 자신의 고향 모압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나오미와 함께 여정을 하게 된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지라"(룻1:16-17)

룻이 미래를 알 수 없는 세상을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하려고 한 것은 나오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시집살이를 하면서 배웠고 시어머니의 신앙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시어머니가 베들레헴으로 떠날려고 한 것이 단순한 시어머니의 마음의 감정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룻기1:6절의 말씀에 나온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나오미가 모압지방을 떠나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When she heard in Moab) 결정한 것이다.

여기서 '듣다'는 단순 과거 동사이다.

이 말은 나오미가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결정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다음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 나오미의 선택은 환경에서 주어지는 단순한 고민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나오미와 룻의 결정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것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하기에 신앙은 복불복이 아니다.

믿음을 가지고 간 이방 여인 룻은 베들레헴에서 보아스를 만나게 되고 그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게 되고 종국에는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된다.

룻의 믿음의 선택은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의지를 따랐기에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크릭사이드 한인 교회 김칠곤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