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작소[부산도시철도 2호선 스토리 여행]'금련산 역'을 걷다
산과 바다, 자연과 도시가 빚어낸 콜라주
- 홀수 출구는 바다, 짝수는 산과 닿아
- 자유분방한 분위기 충만한 광안리쪽
- 벚꽃단지·백남준 작품 등 볼거리 가득
- 부산 사방팔방 한눈에 조망 황령산선
- 천문대 별관측 ·봉수대 야경조망 감탄
도시철도 2호선 금련산 역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1, 3, 5번 홀수 출구로 나가면 바다와 만나고 2, 4, 6번 짝수 출구로 나가면 산이다.
산과 바다가 마주하고 있는 한가운데를 도심의 간선도로가 관통하고 있는 셈이다.
아주 옛날에는 물 좋아하기로 유명한 호랑이가 산에서 바닷가까지 내려와 놀고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근처 광안리 해수욕장이야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니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금련산이나 부산의 사방팔방을 파노라마처럼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인 황령산도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꼭 들러봐야 할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 광안리 해변을 거니는 재미
우선 바닷가로 이어지는 홀수 번호 출구로 나가보자.
3번 출구를 나서자마자 유럽식 돌바닥 길 사이로 출렁대는
푸른 바다의 수평선과 마주치게 된다.
바닷가로 향하는 길 양옆에는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는데 푸근한 표정의 어르신들이 느린 동작으로 물건을 다듬거나 손님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광안리 해변은 사시사철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는 곳이다.
호텔을 비롯해 세련된 시설들이 즐비한 해운대가, 말하자면
깔끔하게 다듬어진 정장이 어울리는 곳이라면 광안리는 다소의 불량함과 다듬어지지 않은 젊음, 싸구려인 것 같으면서도 그래서 오히려 멋이
느껴지는 캐주얼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름이면 비키니를 입고 선탠 중인 글래머러스한 외국여자 옆에서 속옷 바람으로 손자와 물놀이하는 동네 할아버지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고,
셀카를 찍어대며 이유 없이 깔깔대는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나 연인들,
아무렇게나 돗자리를 깔고 수박을 깨먹으며 수다를 떠는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그야말로 누구나 주인이 되는 곳이다. 날 것 그대로의 꾸미지 않은 문화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한 편의 콜라주 같은 공간이랄까.
광안리에는 물론 광안대교도 있지만 봄에 열리는 어방축제나 가을에 열리는 불꽃축제도 있다.
회로 대표되는 맛있는 음식과 트렌디한 식당, 개성 있는 술집도 많지만 그런 한편에서는
아직도 광안대교 아래까지 가서 해산물을 따오는 해녀 할머니들도 계시니
그야말로 하나의 풍경 속에 시공을 초월한 세상이 담겨 있다.
■ 가슴 툭 트이는 해안산책로
수영구 남천동 해변산책로. |
바다를 마주보고 오른쪽 해변으로 걸어가면 도보 5분 거리 내에서
갖가지 해양레포츠는 물론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하는 산책, 무료 자전거와 미술작품들까지 즐길 수 있는 방파제가 나온다.
우선 모터보트나 래프팅 등을 즐길 수 있는 광안리해양레포츠센터를
이용해도 좋고 작은 서핑가게들 중 하나에 들러 봐도 좋겠다.
수영을 못해도, 물을 무서워해도, 누구라도 반나절만 첨벙대다보면
래프팅, 웨이크보드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 연인이나 가족끼리 판 위에서 노만 저으면 나아가는 패들보드를 타고
광안대교 바로 밑 교각까지 가서 쉬다 오는 것도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 중 하나다.
해양레포츠센터 옆에는 무료자전거 대여소가 있어서 연인이나 친구끼리 해변을 여유롭게 라이딩 해볼 수도 있다. 익히 알려진 커다란 화분 모양 설치작품을 비롯해 백남준과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들이 군데군데 위치하고 있는 야외 해변미술관도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해질녘 이 부근 해안산책로는 동네주민은 물론 관광객들로 더욱 붐비기 시작하는데
광안대교에서 퍼져 나오는 은은하고도 세련된 조명들로 인해 해변 전체가 하나의 입체 미술관처럼 느껴진다.
이 근방이 특히 사람들로 붐비는 계절은 봄이다.
남천동 벚꽃단지가 눈 닿는 곳마다 우윳빛 벚꽃 이파리들로 환해지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인파로 동네 전체가 시끌벅적해진다.
이곳 삼익비치아파트 단지는 바다를 매립해 1980년에 완공한 부산 중산층 집단 주거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4월의 봄에, 이 길은 아마도 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일 것이다.
■ 2000원짜리 동네 목욕탕
남천동 남치이 인문학거리. |
바다를 마주보고 왼쪽에는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회 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으로 향하는 해변 사이사이에는 '써즈데이파티' 나 '퍼지네이블'
같은 트렌디한 바들이 늘어서 있는데 부산 뿐 아니라 서울, 유럽, 아시아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로 상시 북적인다.
우연처럼 만난 젊은이들이 서로 흥겹게 떠들고 웃고 마시다 취하는
풍경도 이국적이다.
굳이 바나 레스토랑에 가지 않더라도 마음이 동하면 편의점 앞에
아무렇게나 앉아 캔 맥주 몇 개만 가지고도 밤을 샌다.
세계 최대의 회 센터인 민락회센터 뒤편에는 오래된 놀이공원인 광안랜드도 있다.
놀이기구도 몇 없고 그나마도 다 오래된 것이지만 이곳은 팍팍한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일탈을 꿈꾸는
귀여운 부산 10대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신나게 놀았다면 잠깐 근처 목욕탕에 들러 봐도 좋겠다.
놀랍게도 광안리 해변 바로 뒷골목엔 싸면서도 구식이라 오히려 근사한 목욕탕들이 꽤 있다.
장수탕처럼 2000원 하는 저렴한 동네 목욕탕부터 수영장, 찜질방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목욕탕까지 그 종류도 광안리답게 다양하고 잡탕이다.
특히 이 목욕탕들의 구석에 가면 자동으로 등을 밀어주는 요상한 기계를 만날 수 있는데
이 기계는 부산에만 있다는 점도 팁이다.
피로를 풀고 나면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욱 상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 편안한 기분을 간직한 채 어둑해지는 광안리를 잠시 걷다보면
호메로스 호텔 맞은편에서 '거리의 화가들' 과 만날 수도 있다.
아주 추운 겨울을 제외하면 매일 저녁 8시부터 새벽까지 광안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그림으로 기록해준다.
광안리에 감도는 예술의 향기는 2014년 여름에 그려진 두 개의 멋진 그래피티 작품으로 인해 한층 진해졌다.
해외 언론까지 뜨거운 관심을 보인 두 작품 중 하나는 독일의 세계적 아티스트 ECB가 민락동 주차타워 외벽에
그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광남초등학교 후문 벽에 있는 한국의 대표적 그래피티 아티스트 구헌주의 것이다.
늦은 밤, 숙소로 돌아가기 전이지만 뭔가 아쉽다면 마지막으로 들러볼 곳이 있다.
수변공원 쪽에 위치한 포장마차 촌이다. 한국에서 테라스 문화가 처음 시작된 광안리 해변의 여러 카페 중
한 곳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 한 잔 마시는 것도 좋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연인과 좀 더 진한 얘기를 나누며 혼곤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이 포장마차 촌에서 조개구이나 장어, 혹은 뜨끈한 국물을 시켜놓고
소주 한 잔 나눠보는 것이 어떨까.
■ 이해인 수녀가 사는 곳
이번엔 금련산 역 짝수 번호 출구로 나가보자.
4번 출구로 나가면 좋은강안병원 옆에 오래된 수녀원이 하나 보이는데
병원과 유치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이곳 성분도병원은 1966년에 세워져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특히, 따스한 위로와 공감의 시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때는 이해인 수녀를 만나려는 문학청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6번 출구로 나가면 산을 향해 쭉 뻗은 길이 나오는데 곤드레밥을 포함해
다양한 음식을 파는 가든형 식당들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문득 순식간에 도심에서 교외로 나온 듯한 착각을 준다.
남천동쪽으로 걷다보면 '전두환 별장'으로 불리던 멋진 저택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곳이 가진 이야기도 재미있다. 한때 현대판 아방궁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전국에서 가장 호화롭다고 알려진 곳이었는데 이 공간이 생기기 전까지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부산에 오면 해운대 웨스턴조선비치호텔의 VIP룸을 사용했다고 한다.
다행히 2012년 1월부터는 시민들의 쉼터로 거듭나 부산시가 관리하는 열린행사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동네 주민들에게는 정갈한 초록잔디를 바라보며 산책하기 좋은 공원 구실도 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나와 긴 내리막길을 걸어내려오면 그 길의 끝에 '남치이 인문학거리'가 나온다.
우거진 나무들이 일상 속 작은 평화를 선사하는 예쁜 길이다.
'남치이'는, 옛사람들이 남천동을 가리켜 부르던 말인데 이 작은 오솔길 군데군데에는 안도현 시인의 '사랑한다는 것'을 비롯해, 김소월의 '초혼', 정호승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 등 유명한 시들이 적힌 팻말들이 숨어 있다.
■ 별, 산, 바다, 꽃의 조화
금련산청소년수련관 표지판을 따라 산 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부산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황령산 봉수대가 나온다.
이곳은 외지인들이 부산에 오면 꼭 소개해주고 싶은 명소 중 하나인데
금련산역 6번 출구에서 약 2.5km의 등산로를 걸어 올라야만 한다.
어른 걸음으로도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니 만만한 거리는 아니지만 자동차로 가면 10분이 채 안 걸린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길 중간 중간에 있는 예쁜 카페나 노점에서 따뜻한 커피나 토스트 등을 곁들여 쉬어가도 좋다.
황령산 봉수대는 원래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보내던 군사시설이었다.
모두 다섯 개의 봉수대가 있어 위급한 정도에 따라 신호를 보내는데
임진왜란 때 부산포에 침입한 왜군을 발견하고 이를 알린 곳도 여기다.
지금은 물론 실용적인 기능을 하고 있진 않지만, 이 봉수대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사방으로 탁 트인 시원한 풍경이다.
광안대교는 물론이고 도시 속 오밀조밀한 건물들과 그 사이를 지나는 자동차들의 빨간 불빛 등을
바라보고 있자면 자연의 거대한 힘에 맞서온 인간의 저력 같은 것도 새삼 느끼게 되고 붉은 노을이 깔리는가
싶다가 이내 수많은 별들이 뿌려진 것처럼 도시 곳곳이 반짝이기 시작하면 아늑한 느낌이 들만큼 신비로운 느낌도 받게 된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 특히 커플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사진을 찍는 등 저마다의 추억을 남기느라 바쁘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학생들을 차례차례 단상 위로 올려 늘 익숙하게만 바라보던 공간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데, 꼭 그처럼 가끔 이곳에 올라 매일 매일 그 속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도시의 풍경을 문득 평소와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자면 호연지기라 해도 좋을 만한 묘한 기운이 솟아난다.
해가 질 때쯤이면 황령산 봉수대에서 내려오는 길 딱 중간쯤에 위치한
부산시민천문대에 가서 별을 보는 것도 좋겠다.
산 속에 위치해있어 보통 때도 환하게 개인 밤하늘 속에서 밝게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볼 수 있다.
1층에서는 쉽고 재미있게 별자리에 대해 알려주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운영 중이고
관측 돔 안에 있는 거대한 천체망원경은 그 모습만으로도 호기심을 느끼게 한다.
2층 야외 천문대에는 천체망원경의 수가 충분해서 별로 기다리지 않고도 다양한 별자리들을 관측할 수 있다.
평소와는 다른 각도에서 우리가 사는 공간들을 바라보고, 평소에는 떠올리지 못했지만 수천억 년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을 우주 공간의 별들을 바라보는 일은 아이들에게는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별, 산, 바다와 꽃, 그 사이로 반짝이는 도심의 불빛들까지….
하나의 풍경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금련산 역에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우리들 하나하나의 다름과 아름다움을 새삼스레 되새겨본다.
장현정 호밀밭 출판사 대표
공동기획: 동서대학교,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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